지금부터 ‘자기 책임’을 잊은 금융소비자는 망한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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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자기 책임’을 잊은 금융소비자는 망한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1.04.29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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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금소법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정작 보호 대상인 금융소비자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방대한 내용을 국민이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금융소비자는 어리둥절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대접도 받아 본 사람이 그 가치를 안다.

필자가 약 30년 금융 현장 경험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이전 금융거래에서 대접을 받았다는 금융소비자는 아마 금융회사 이익에 기여도가 큰 고액 자산가나, 영향력이 큰 권력가일 것으로 추측한다. 모든 국민이 잠재적 금융소비자임을 고려하면 그 대상자는 0.01%나 될 수 있을까?

금소법 시행 이후 바쁜 것은 언론과 금융당국, 금융산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은 금융회사의 불편과 민원에 섬세한 주의를 기울이며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필자는 10여년 금융회사 홍보실에서도 근무했는데, 언론의 경영구조 상 금융 산업의 민원을 무시하기 힘들다고 이해한다. 이런 환경에서 금융 당국은 언론이 지적하는 민원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연이은 금융산업의 모럴 해저드, 공매도에 대한 반발 등으로 금융당국이 언론에 노출된 익스포저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소비자가 무관심한 금소법을 정착해야 하는 금융당국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무관심은 과거 수십 년 간 금융산업과 정부가 만들어 온 자업자득의 업보(業報)이기도 하다. 한국 금융은 경제 개발 지원을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되면서 금융소비자라는 개념은 너무 낯설기만 하다

한편 지난달 25일 이후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를 달래느라 금융 분야 별로 연석 간담회를 실시했고, 금소법 시행 한 달 시점을 맞아서는 현장 점검 보고서를 발표했다. 점검 내용을 살펴보면 금융 당국의 금융회사에게서 겪는 반발과 고충이 읽힌다. 사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금소법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금융소비자와의 관계에서 누려오던 기득권을 내놓아야 하고, 이는 곧 금융소비자 관계의 관리 비용 증가와 소송 불이익에서 발생하는 우발채무의 급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회사CEO 입장에서는 금융회사 경영 수지의 악화로 재임용 등 자리보전에 문제가 될 것이고, 과거 무리한 판매를 종용하던 성과급 문화에 젖은 일부 판매 직원들은 금소법을 반기지 않을 수 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금융회사는 오랜 금융 관행을 함께 만들고 방관하던 금융당국의 입장 변화가 원망스러울 수 있다. 한편 금융소비자는 금융소비자대로 어제까지 대충 설명하며 자기를 믿고 거래하라던 김 대리, 이 과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깐깐히 금융상품 위험을 설명하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갑자기 재산이 어떠니 나이가 어떠니 묻기도 하고, 그들이 열심히 설명하려 드는 투자설명서는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고는 이제 서명하고 다 책임지라고 한다. 협박 같기도 할 것이다. 금융산업, 금융소비자 모두 뜬금없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장 점검 보고에 담긴 가장 중요한 내용은 ‘거래 편의 중심 영업 관행의 개선’으로 보인다. 설명 내용이 많아져 시간이 길어지니 판매직원 소비자 모두 불편하다는 것이 골자다. 또한 계약서류가 많아져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 금융회사 민원의 주요 내용이다.

한편 어떤 금융회사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처구니없는 것은 금소법 때문에 판매직원이 ‘영혼 없는 설명’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 한다는 민원 내용이다. 지난해 일부 의사들의 국민을 볼모로 한 파업 협박에서 느꼈던 거리감이 금융산업에서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의 이러한 태도에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기로 입장을 정한 듯하다. 조목조목 과거의 금융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며 협조를 현장 점검 보고서에서 당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영업 현장 애로사항의 주요 원인 및 대응 방향’이라는 제목 아래 최종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금융소비자도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에 대해 정보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책임 제거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설득하면서, 금융소비자에게도 설명시간이 부담스러워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판매 절차를 생략하게 하면 ‘투자 손실에 대해 주장을 할 수 없고, 배상 책임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했다. 거듭 필자가 강조하지만 금소법이 제시하는 금융소비자의 권리는 ‘자기 책임’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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