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묵은 ‘금소법’, 소 떠난 외양간은 아니겠지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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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묵은 ‘금소법’, 소 떠난 외양간은 아니겠지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03.18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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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오는 25일 시행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과 관련, 앞으로 6개월간은 고의나 중대한 법령위반 또는 당국의 시정요구 불이행이 아니면 별도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오는 25일 시행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과 관련, 앞으로 6개월간은 고의나 중대한 법령위반 또는 당국의 시정요구 불이행이 아니면 별도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금융권은 돈으로만 사회공헌 하지 말고 몸으로 보여줘라.”

2011년 7월 23일, 이명박정부의 금융위원장은 ‘피지컬리’(physically)라는 영어까지 써가며 금융회사의 사회공헌을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금융소비자보호법’ 법제화를 하반기 숙제로 내세웁니다. 흩어진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을 한데 모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숙제가 풀리기까지 꼬박 8년 7개월이 넘게 걸립니다. 정권이 두 번 바뀐 뒤입니다.

오는 25일부터 금소법 시행으로 파생상품 청약 이후 9일 안에 청약철회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진=픽사베이
오는 25일부터 금소법 시행으로 파생상품 청약 이후 9일 안에 청약철회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진=픽사베이

‘청약철회’. 소비자가 물품을 구입한 뒤 단순히 마음이 변하거나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구입을 취소하는 것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방문·전자상거래·전화권유·다단계를 통한 판매 등 소비자 보호가 필요한 거래는 제도적으로 청약철회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철회 기간은 방문·전화권유·다단계 판매는 계약일로부터 14일, 할부 및 전자상거래판매는 7일 이내입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12가지 주요 내용. /자료=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보호법 12가지 주요 내용. /자료=금융위원회

◆ 파생상품 권유받은 고령자 청약 후 최대 9일까지 철회권 행사 가능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25일 시행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에 ‘소비자는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청약 후 최대 9일까지 청약철회권 행사가 가능하다’라는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이 같은 감독규정을 의결하면서 “보장된 권리를 몰라 행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의결한 금소법 시행령 주요 내용을 보면 만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는 파생상품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할 경우, 청약 후 최대 9일까지 청약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은 최대 손실가능 금액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파생결합증권이나 파생상품, 투자자가 손익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운 집합투자기구(펀드) 등이 해당합니다.

◆ 중도 환매 못하는 사모펀드도 소비자가 요구하면 해지 가능

청약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고령 소비자 여부는 청약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폐쇄형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위법계약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법계약해지권은 판매업자가 설명 의무, 부당 권유 금지 등 주요 영업 행위 규제를 위반하고 금융 상품을 판매한 경우, 소비자가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위법계약해지권은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행사할 수 있는데,

폐쇄형 사모펀드도 권리행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빚은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나 옵티머스·라임펀드도 모두 폐쇄형 사모펀드입니다. 지금까지는 원칙적으로 펀드가 환매나 청산으로 손실이 확정돼야 소비자가 배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달 25일 시행하는 금소법 관련 문답. /자료=금융위원회
이달 25일 시행하는 금소법 관련 문답. /자료=금융위원회

◆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통해 금융상품 중개행위 차단

금융위는 비대면 금융 거래에서의 영업 행위 유형에 대해서도 규정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이 배너 광고처럼 특정 금융 상품에 대한 추천이나 설명이 없는 광고를 통해 금융사를 단순 연결해주는 행위는 금소법 규제 대상인 ‘중개'가 아닌 단순 광고로 판단했습니다. 적극적인 유인 행위가 없다는 근거에서입니다.

다만 광고에서 더 나아가 청약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기능까지 플랫폼 안에서 지원하면 ‘중개’가 됩니다. 고객에게 대가를 받고 특정 상품을 추천하는 경우는 규제 대상인 ‘자문 서비스’입니다. 금융위는 이 같은 잣대에 따라 PC나 휴대폰 등 비대면 채널의 배너를 통해 금융상품 가입이 직접 연결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

◆ 내부통제 의무 등 일부 규정 적용은 6개월 유예

금융위는 금소법이 금융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일부 규정 적용을 최대 6개월간 유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예된 규정은 ▲내부통제 및 금융소비자보호 기준 ▲금융상품판매업 등 업무 관련 자료 기록·유지·관리·열람 ▲핵심설명서 마련 ▲금융상품직접판매업자의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설정 ▲자문업자 및 판매 대리 중개업자 등록 의무 등입니다.

은 위원장은 이날 “새로 도입되거나 강화된 제도에 대해 향후 6개월간 컨설팅 중심으로 감독할 것”이라며 “소비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금융위는 금소법이 적용되지 않는 상호금융(농협·수협·산림조합·새마을금고)에 대해서도 금소법 수준의 소비자 보호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할 계획입니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존 기구 활용, 새로운 기구 설치 등 종합적인 법률이 필요하다’. 2011년 7월 ‘키코와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지자 야당 의원 등 22명은 금소법 기본법안을 발의합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금소법과 충돌하면서 무산됩니다. 라임과 옵티머스펀드 투자자들이 땅을 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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