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금리인하’ 요구했더니… 절반은 ‘무시’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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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금리인하’ 요구했더니… 절반은 ‘무시’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03.1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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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하 요구권 수용률 ‘국민은행 46.7%, 신한은행 43.2%’… 금융당국 제도 손질
일부 은행들의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픽사베이
일부 은행들의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픽사베이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지난해 12월 케이뱅크가 내놓은 수신금리 연 8.5% 적금상품의 우대금리 조건. /자료=케이뱅크
지난해 12월 케이뱅크가 내놓은 수신금리 연 8.5% 적금상품의 우대금리 조건. /자료=케이뱅크

“꼴랑 9만원 벌겠다고 1년간 240만원을 묶어야 되나.”

지난해 12월 8일, 한 인터넷 전문은행이 수신금리 연 8.5%의 적금을 내놓자 소비자들이 코웃음을 칩니다. 한 달에 20만원까지만 부을 수 있는 1년짜리인데, 최고 우대금리를 받으려면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신규 고객에, 자동이체에, 신용카드도 달마다 15만원씩 써야합니다. 라면 5개들이 1000원에 파는 마트의 미끼와 다를 바 없다는 반응이 쏟아진 이유입니다.

‘금리인하’. 돈을 빌리거나 맡길 때 원금에 지급되는 기간의 이자 비율을 내리는 것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은행들은 ‘돈을 빌려줄 때 금리는 찔끔 내리고, 맡길 때 금리는 왕창 내려’ 뒷말이 많습니다. 거꾸로 기준금리를 올리면 은행들은 예금 금리는 조금, 늦게 올리고 대출금리는 많이, 빨리 올립니다.

은행들의 이러한 고객의 기대를 거스르는 행태는 ‘금리인하 요구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금리인하 요구권은 대출을 받은 사람이 취업이나 승진, 재산 증가 등으로 신용도가 나아졌을 때 금융회사에 대출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2019년 6월 12일 처음 법제화됐지만 은행마다 고객의 요구로 금리를 내려준 비율은 하늘과 땅이었습니다.

2020년 1∼10월 5대 시중은행 금리인하요구권 실적. /자료=금융감독원(윤두현 의원실 제공)
2020년 1∼10월 5대 시중은행 금리인하요구권 실적. /자료=금융감독원(윤두현 의원실 제공)

17일 윤두현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에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금리인하 요구권을 신청해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은 고객은 모두 2만9118명이었습니다. 이들 고객이 금리인하 요구권을 통해 아낀 이자만 모두 256억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행별로 금리인하 혜택을 받은 고객 숫자와 수용률은 차이가 컸습니다. 금리인하 수혜 고객은 ▲NH농협은행 9334명 ▲신한은행 7063명 ▲KB국민은행 5912명 ▲우리은행 4877명 ▲하나은행 1932명이었습니다. 반면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률로 보면 ▲NH농협은행 96.4% ▲우리은행 72.7% ▲하나은행 53.2% ▲KB국민은행 46.7% ▲신한은행 43.2% 순이었습니다.

이들 은행 가운데 특히 하나·KB국민·신한은행은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률이 절반을 조금 넘거나 절반도 안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객 2명 중 1명의 요구는 무시했다는 얘기입니다. 이와 함께 시중은행들은 금리인하 요구권 안내에도 소극적이었습니다. 고객이 대출을 약정하거나 연장, 또는 조건 변경을 할 때 설명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는 2019년 9월부터 분기마다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이 변경된 고객을 대상으로 금리인하 요구권 신청 알림을 모바일 앱으로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카카오뱅크 고객 가운데 금리인하 요구권을 통해 이자를 깎은 고객은 지난해 9만명이었습니다, 5대 시중은행을 합친 인원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대출을 받은 사람이 신용도가 나아졌을 때 금융회사에 대출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금리인하 요구권은 2019년 6월 12일 처음 법제화됐다. /자료=금융위원회
대출을 받은 사람이 신용도가 나아졌을 때 금융회사에 대출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금리인하 요구권은 2019년 6월 12일 처음 법제화됐다. /자료=금융위원회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은행들의 이기적인 행태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금리인하 대상이 되면 은행이 알아서 금리를 내려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OO은행은 저거 말하니 모르는 척하던데 대출만 권유하고” “이런 것도 있었어요? 요구하면 깎아 줍니까?” “그렇지 신용점수가 오르면 이자도 깎아줘야지 역시 앞서가는 카카오” “인하권 써보니 각종 서류 내고 찔끔 내려주고 도로 다시 오름” “앞으론 은행 부도나면 절대로 공적자금 투입하지마라”.

“꼭 신청을 해야 하나? 자기은행 거래내역을 보면 알 수 있는 건데 자동으로 해줘야 하는 거지? 금리 올릴 때는 니들 맘대로 하잖아?” “대출금리를 본인의 신용등급과 매일매일 연계시켜서 굳이 저런 금리인하 요구를 안 해도 금리가 자동으로 인하되게 만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금융당국은 이달 초 은행들과 금리인하 요구권의 제도 손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사진=픽사베이
금융당국은 이달 초 은행들과 금리인하 요구권의 제도 손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사진=픽사베이

금리인하 요구권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알아챈 금융당국은 이달 초 은행들과 제도 손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습니다. TF는 신용 상태가 개선됐다면 별다른 제한 없이 금리인하 요구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은행마다 다른 금리인하 요구권 운영 요건을 통일하는 것도 목표로 잡았습니다.

“대출은 집주인이 내고 이자는 세입자가 갚는다”. 부동산 투자 관련 SNS에서 곧잘 내거는 구호입니다. 이를 본 서민들은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로 상대적 박탈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지난해 12조3000억원의 순이익을 챙긴 대한민국 은행들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쉬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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