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첫 출근길 약속 ‘노조추천 이사제’ 지켜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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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첫 출근길 약속 ‘노조추천 이사제’ 지켜질까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02.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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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사외이사 4명 가운데 2명, 다음 달 임기 만료… 금융업계 “1명은 나올 것”
‘노동자대표 추천 사외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사진=청와대
‘노동자대표 추천 사외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사진=청와대

“이 제도를 도입해 노동자의 경영 참여라는 길을 트겠다.”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2017년 1월 10일, 야당의 유력 후보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관련한 개혁정책을 발표합니다. 금융과 산업자본의 결합을 제한한 ‘금산분리’가 가장 눈에 띄는 가운데,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공약도 내놓습니다. ‘노동자대표 추천 사외이사제’. 넉 달 뒤 유력 후보는 경선을 거치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우리사주조합이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낮은 찬성률로 부결됐다. /사진=KB금융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우리사주조합이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낮은 찬성률로 부결됐다. /사진=KB금융

“찬성률 4.62%와 3.8%로 이 안건은 부결됐음을 알립니다.”

KB금융지주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해 11월 20일, 우리사주조합의 주주 제안 안건이 올라옵니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의 KB금융 사외이사 후보 선임에 관한 건입니다. 앞서 KB금융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 표명으로 부결이 예상됐지만, 안건 찬성률은 5%도 넘기지 못합니다. 금융권 최초가 될 안건이 네 번이나 물을 먹은 것입니다.

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최근 사외이사 추천 후보군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권 최초로 ‘노조추천 이사제’가 도입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노조추천 이사제는 이사회에 근로자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제도입니다. 지난해 11월 정부와 노동계는 공공기관에 먼저 도입할 수 있도록 합의한 바 있습니다.

IBK기업은행이 국내 금융권 최초로 노조추천 이사제를 도입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기업은행
IBK기업은행이 국내 금융권 최초로 노조추천 이사제를 도입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기업은행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사외이사 4명 가운데 김정훈 이사의 임기가 지난 12일 끝났습니다. 이승재 사외이사의 임기는 다음달 25일 만료됩니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 노사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노조는 최근 후보군을 회사 쪽에 전달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다만 “몇 명을 추천했는지 자세한 사항은 비공개”라고 밝혔습니다.

기업은행의 사외이사는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은행장 제청으로 금융위원회가 임명 또는 해임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다음 달 안으로 금융위에 사외이사 후보군을 제청할 계획입니다. 앞서 윤 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 당시, 노조추천 이사제를 유관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하기로 노조와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 윤 행장은 최근 서면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이 수반돼야 (노조추천 이사제 도입) 추진이 가능하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 행장은 “은행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역량을 갖춘 전문가를 금융위에 제청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직원(노조)을 포함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듣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3월 중 복수 후보를 제청할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업은행에서 노조추천 사외이사가 1명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이 노조 추천으로 사외이사 선임에 성공할 경우 금융권에서는 최초의 사례가 됩니다. 그동안 기업은행을 비롯해 KB금융·한국수출입은행 등 개별 금융사 노조에서 노조추천 이사 선임을 시도했으나 모두 무산됐기에 은행 안팎의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지난해 6월 8일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그는 이 자리에서 ‘노동이사제’를 강조했다. /사진=문학동네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지난해 6월 8일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그는 이 자리에서 ‘노동이사제’를 강조했다. /사진=문학동네

“노동자들이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 결정구조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달라질 것이다”. 지난해 6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출간 기자회견에서 ‘노동 이사제’를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노동 이사제가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전문가 사이에도 온도차가 있습니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경제개혁연구소 소장)는 “이사회 이사라면 일단 주주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상충한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은 형식적이고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제에 비해 노동이사제가 재벌개혁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단기적 이익을 주로 보는 주주보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이사회에서 더 중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도 획기적인 조치가 된다”라고 강조합니다.

지난해 1월 3일 첫 출근에 나선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노동조합의 출근저지 투쟁에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사진=JTBC 뉴스영상 갈무리
지난해 1월 3일 첫 출근에 나선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노동조합의 출근저지 투쟁에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사진=JTBC 뉴스영상 갈무리

“낙하산 행장 저지하자”. 지난해 1월 3일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앞. 첫 출근길에 나선 은행장은 오도가도 못 합니다.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에 막힌 것입니다. 당시 윤종원 행장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한다’라는 노사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서야 출근 도장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금융권 최초의 제도 도입이 이뤄질지 윤 행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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