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사벽 아닌 ‘인공지능’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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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 아닌 ‘인공지능’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0.12.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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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요즘 인공지능교육이 대학가에 널리 확산되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코딩이 전공교육의 필수적인 부분을 이루는 일부 공학계열뿐 아니라, 여러 다른 전공의 학생에게도 인공지능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필자가 일하는 대학교에서도 개론 성격의 인공지능 교과목이 자연과학대학에 개설되었고, 필자가 2020년 2학기 강의를 맡았다.

요즘 물리학계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필자의 연구그룹도 상전이 온도와 그 유형을 알아내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연구논문을 출판하기도 했다. 또, 물리계의 동역학적 데이터를 모아서, 계의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 구조를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관심은 많아도 인공지능의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는 필자가 덜컥 강의를 맡은 이유다.

필자가 강의한 <자연과학과 인공지능> 과목은, 자연대 학부 1학년 정도의 수학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자평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의 최첨단의 모습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기반한 기존 신경과학의 성과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수학적 기반 위에서 인공지능이 작동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고자 했다.

초보적인 수준의 인공지능은 미적분·행렬·벡터에 대한 지식만으로도 그 얼개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학습 방법과 정보처리에 대한 수학적 이해에 바탕 해서, 간단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직접 코딩으로 구현해보는 경험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자 했다.

누구나 내려 받을 수 있는, 0부터 9까지의 손글씨 이미지 데이터가 있다. 손글씨 숫자 이미지를 학습하고 판별하는 인공신경망을 모든 학생이 차근차근 구현해보도록 했다. 간단한 인공신경망이지만, 실제로 구현해본 성공의 경험은 학생들에게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인공지능의 작동방식을 속속들이 이해해 한 줄 한 줄 직접 코딩으로 구현해본 학생이라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한 학기 강의가 끝날 때쯤에는 “나도 해봤어요. 막상 해보니 인공지능, 사실 그 근본 원리는 별것 아니던데요”라고 모든 학생이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1980년대 홉필드(Hopfield) 모형이라 불리는 인공신경망에 대한 연구가 물리학계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다. 패턴인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구현방법으로 실제 현실 문제에 적용되기도 했다. 홉필드 모형에 얼마나 많은 패턴을 학습시킬 수 있는지, 그 이론적 상한은 통계물리학 연구로 밝혀졌다.

물리학뿐 아니다. 인공지능은 수학의 최적화 이론과 큰 관련이 있고,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은 신경과학의 성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인공신경망의 학습은 노드를 서로 연결하는 가중치의 값을 조절하는 과정으로 구현되는데, 이는 실제 뇌 안에서 일어나는 시냅스 연결의 강도 변화를 통한 학습에 대응한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발전에 여러 기초학문 분야가 큰 도움을 주어왔다.

자연과학계열의 학생에게 바람직한 인공지능 교육은, 널리 사용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패키지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인공지능의 근간이 되는 과학적·수학적인 지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패키지 사용법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에서 우리가 분명히 다시 맞닥뜨리게 될 장벽을 넘어서려면 신경과학·수학·물리학과 같은 기초과학 분야의 도움도 필요하다.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 “에이, 막상 배워보니 신기하긴 해도 넘사벽은 아니네”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면 필자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미래에 마주할 높은 장벽을 넘기 위해 도전하려면, 낮은 장벽을 넘어서본 경험을 교육이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장벽을 구성하는 벽돌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자연과학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은 자연과학이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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