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9~10등급… 대출절벽에 갈 곳 잃은 ‘저신용자’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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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9~10등급… 대출절벽에 갈 곳 잃은 ‘저신용자’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12.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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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조이기에 2금융권 ‘풍선효과’… 고신용자에겐 이자 깎아주는 카드사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2018년 10월 25일 인공지능이 그린 에드워드 벨라미의 초상화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벨라미는 1887년 그의 소설에서 ‘신용카드’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인물이다. /사진=크리스티
2018년 10월 25일 인공지능이 그린 에드워드 벨라미의 초상화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벨라미는 1887년 그의 소설에서 ‘신용카드’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인물이다. /사진=크리스티

“이상하게 생긴 물건으로 값을 치르다니….”

113년 뒤 잠에서 깨어난 줄리안은 낯선 광경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벨라미는 1887년 내놓은 <돌이켜보면(Looking Backward)>에서 ‘신용카드(credit card)’라는 낱말을 처음 사용합니다. 그로부터 63년 뒤, 뉴욕에서 세워진 ‘다이너스클럽’은 세계 최초로 여러 지역에서 두루 사용이 가능한 ‘종이’ 신용카드를 내놓습니다.

196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직영 백화점 체제를 선보인 신세계는 같은 해 신용카드도 최초로 출시했다. /사진=신세계
196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직영 백화점 체제를 선보인 신세계는 같은 해 신용카드도 최초로 출시했다. /사진=신세계

“바다 건너 손님이 왔으니 이곳으로 모셔야지.”

196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직영 백화점은 외국인들이 꼭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됩니다. 같은 해 이 백화점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대적인 바겐세일 행사를 엽니다. 그리고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신세계’를 함께 선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인 신용카드를 내놓은 것입니다.

‘신용카드’. 특정 회원에게 상품·서비스 대금의 회수를 일정기간 유예하는 증명으로 발행되는 카드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쉽게 말해 현금 없이도 물건 사기가 가능한 소비자 신용의 일종입니다.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신용카드 장기 대출인 ‘카드론’을 이용하는 고신용자의 비중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의원이 지난 16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 등 7개 전업 카드사에서 신규 취급된 카드론 가운데 금리가 연 5% 이하인 금액의 비중은 0.8%로 집계됐습니다. 이 비중은 지난해 0.1~0.2%, 올해 들어서도 7월까지 0.1~0.3% 수준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지난 8월 0.4%로 크게 오르더니 한 달 만에 다시 2배가 되었습니다. 이들 카드사의 카드론 평균 금리가 연 12~13% 안팎임을 고려할 때, 연 5% 이하의 낮은 금리로 카드론을 이용한 비중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신용도가 높은 고객이 많이 늘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기간 금리 연 10% 이하로 취급된 카드론 비중도 20.1%에 달했습니다.

/그래픽=뉴스웰
/그래픽=뉴스웰

은행권이 9월 앞뒤로 대출금리를 높이고 고신용·고소득자를 중심으로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등 가계 대출 조이기를 본격화하자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같은 풍선효과에 중·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9~10등급 회원의 카드론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 반면 고신용자에게는 금리 우대 혜택까지 주는 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오늘(24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7개 전업 카드사의 지난달 말 표준등급 기준 카드론 평균금리(운영가격)는 13.25%로 전월보다 0.0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카드론의 주요 고객층인 4~6등급 회원에 대한 대출 금리가 올랐기 때문입니다. 3~4등급의 평균금리는 0.12, 5~6등급은 0.06%포인트 상향 조정됐습니다.

9~10등급 회원의 경우 아예 신규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카드사가 4곳으로 늘었습니다. 10월 이들에 대해 평균 21.67%의 카드론을 판매했던 하나카드도 지난달부터 신규 대출을 취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1~2등급 대상 평균금리는 또 내렸습니다. 10월 말 10%였던 이들의 평균금리는 9.87%를 기록했습니다. 5개월째 깎아주고 있는 셈입니다.

역시 제2금융권인 중대형 저축은행들도 신용대출 금리를 상향했습니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의 지난달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16.84%로 전월보다 0.04%포인트 올랐습니다. 한투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도 각각 0.37, 1.47%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중·저신용자의 ‘대출절벽’이 현실화한 것입니다.

신용카드 전문사이트 카드고릴라가 지난 22일 발표한 '2020년 인기 신용카드 TOP 10'.
신용카드 전문사이트 카드고릴라가 지난 22일 발표한 '2020년 인기 신용카드 TOP 10'.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금융권의 ‘서민 홀대’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1금융권 한도 줄이고, 이율 높이고 1.7% 이자가 2.6%로 올랐어. 1%p 상승이지만 50% 이상 상승. 서민을 못 잡아서 안달 난 것 같다” “반대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대출금리 낮춰주고 대출 폭넓게 지원해주고...;;” “코로나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든데 생활비로 대출받아서 살아가야하는데 ㅠ 상황에 맞는 대출은 해주면 안되나?” “나라는 잘사는데 국민은 가난한 나라” “이제 곧 애기 태어나는데 대출 다 막아놔서 월세 들어갑니다. 있는 사람만 잘 살게 해주는 나라”.

“은행은 더 이상 국민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있는 사람만 돈 빌려주는 곳!” “2금융권의 무서움을 모르는구만ㅋ 자~ 이제 1금융권 은행들 할 일 없으니 밥만 축내지 말고 해체하셈” “먹고살기 힘든데 대출은 다 죄어서 저신용자들은 고금리 대출로 몰아가는 듯” “은행대출 막아봐라 대부업체들 돈벌겠네” “2013년에 바젤3 도입했을 때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다” “이건 뭐 그냥 폭탄 돌리기 같은데. 빚 갚다 끝날 듯”.

2002년 1월 16일 익스페디션4호에서 촬영한 키리티마티 섬. /사진=미국 항공우주국
2002년 1월 16일 익스페디션4호에서 촬영한 키리티마티 섬. /사진=미국 항공우주국
붉은게의 집단 서식지인 키리마티에는 붉은게 전용 육교가 있을 정도다. /사진=Christmas Island Tourism
붉은게의 집단 서식지인 키리마티에는 붉은게 전용 육교가 있을 정도다. /사진=Christmas Island Tourism

신용카드 전문사이트 카드고릴라가 지난 22일 발표한 <2020년 신용카드 TOP 10>을 보면, 전월 실적이나 한도 조건이 없는 ‘무(無)조건’ 카드가 대세였습니다. 지난해 20위권에 4종이던 항공 마일리지 카드는 1종만 살아남았습니다. 상반기 20위권 안에 들었던 카드 중 6종은 사라졌습니다. 1금융권에 치인 2금융권, 카드사에 홀대 받는 서민, ‘먹이사슬’을 보는 듯합니다.

“붉은게 전용 육교가 있다고?”. 1777년 크리스마스 이브, 제임스 쿡 선장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산호섬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라 부릅니다. 현지인들에겐 ‘키리티마티’로 통합니다. 아름다운 섬 키리티마티에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1957년과 1962년, 영국과 미국의 수소폭탄과 핵실험 장소였습니다. 언제 빚폭탄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신용카드는 남의 돈입니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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