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대 안 나온 육군총장, KB국민은행의 ‘채용 갑질’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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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 안 나온 육군총장, KB국민은행의 ‘채용 갑질’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9.24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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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왼쪽)와 영화에서 개츠비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진=위키피디아, 영화 스틸컷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왼쪽)와 영화에서 개츠비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진=위키피디아, 영화 스틸컷

“하느님께 맹세코 진실을 말씀 드리지요.”

1925년 4월 10일 태어난 소설의 주인공은 거짓말을 능청스레 이어갑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교육 받았어요. 집안 전통이죠”. 이름은 물론 완전히 갈아엎은 얼굴과 신분세탁이 이뤄진 뒤입니다. 1896년 오늘(9월 24일)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태어난 날입니다.

'비육사' 출신으로 육군 참모총장에 오른 남영신 대장(오른쪽)과 화랑대에서 열린 육군사관학교 80기 입학식. /사진=육군, 국방뉴스
'비육사' 출신으로 육군 참모총장에 오른 남영신 대장(오른쪽)과 화랑대에서 열린 육군사관학교 80기 입학식. /사진=육군, 국방뉴스

“51년 만에 육군사관학교의 장벽을 깼다.”

사흘 전(21일) 국방부는 1948년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인사를 단행합니다. 마흔아홉번째 육군 참모총장 남영신 대장. 그는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지방 대학교를 나온 학군 출신입니다. “오로지 우수인재 등용에 중점을 뒀다”. 국방부가 남 대장을 발탁한 이유입니다. 1966년 오늘은 육군사관학교의 상징 ‘화랑대’가 세워진 날입니다.

‘인사만사(人事萬事)’.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으로,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모든 일이 잘 풀림을 이르는 네 글자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며 기업들이 너도나도 인재 발탁에 힘쓰는 가운데 대형 시중은행이 ‘채용 갑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해당 은행은 부랴부랴 채용과정을 일부 변경했지만 취업준비생들의 비난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KB국민은행이 오늘 신입 행원 채용공고를 하루 만에 다시 고쳤습니다. 1단계 서류전형 때부터 ‘24시간 교육과 은행 서비스 평가 과제 제출’로 채용 갑질 비난이 거세자 공고를 바꾼 것입니다. 이날부터 은행 신입채용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채용프로세스 일부 변경 안내’라는 팝업창이 뜹니다. ‘1차면접 대상자’로 과제제출 대상을 바꿨다는 내용입니다.

신입 행원 채용에서 ‘디지털 사전과제’ 제출(왼쪽)로 논란이 일자 채용절차를 일부 변경한 KB국민은행 홈페이지.
신입 행원 채용에서 ‘디지털 사전과제’ 제출(왼쪽)로 논란이 일자 채용절차를 일부 변경한 KB국민은행 홈페이지.

이번 KB국민은행 신입채용의 논란은 예전에 없던 ‘디지털 사전과제 제출과 디지털 사전연수 의무 이수’ 요건이 서류전형에 앞서 추가됐기 때문입니다. 과제는 지원자가 입사 1년이 된 행원이라는 가정 아래 은행 서비스 중 1개를 선정해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또 서류전형에 합격할지도 모르는데 ‘사전연수’를 모두 24시간이나 들어야 합니다.

KB국민은행이 이처럼 채용 공고를 수정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 시기, 취업에 힘겨워하는 취준생을 두 번 죽이는 국민은행의 채용의혹을 조사해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취업준비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갑작스런 채용 전형 변경은 갑질로 받아들여졌다”라며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졌습니다.

청원인은 특히 외국어 관련 점수 기재란에 영어·국어·일본어 외에 독일어 점수를 기재하는 항목에 주목했습니다. “취준생들 사이에서 독일어 능력을 갖춘 유력 집안의 자제를 뽑기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닐까란 얘기가 돈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1시 7분 현재 1518명의 동의를 얻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국민은행 채용의혹 조사' 청원. 첫날 오후 1시 7분 현재 1500여명의 서명을 얻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국민은행 채용의혹 조사' 청원. 첫날 오후 1시 7분 현재 1500여명의 서명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달린 댓글에는 ‘비공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심지어는 관련 기사마다 똑같은 댓글들을 나르고 있습니다.

“문제점이 한두개가 아님 1. 사전과제 받아서 아이디어만 뽑아먹는 거 아니냐 + 어플 강제가입. 2. 독일과 국민은행이 무슨 연관이 있어 갑자기 독일어 우대 생김?(채용비리?) 3. 무리한 디지털 연수 시간 30시간이면 하루 8시간씩 3일 이상 연수만 보고 있어야 됨. 취준생에게 이는 엄청난 부담 4. 일반직군에서 이처럼 전문적인 디지털역량과 경험을 한 사람은 극소수” “은근슬쩍 독일어 우대 속보이고 웃겨요. 굳이 토스오픽 없애고 심지어 코로나로 해외 갈 일도 없는데 웬 독일어요? 내정자가 ‘독일어’ 관련되어 있나 봐요?”.

“젊은 애들 아이디어 빼먹을 심산이네” “삼성도 저 정도는 아닌데. 월클인 척 오지네” “국민은행 임원부터 직원까지 그 과제 시켜봐라 얼마나 잘 수행하나. 못 하면 자르고 그 기준으로 다시 뽑아라. 지원자가 봉이냐?” “행원을 뽑는 거냐 임원을 뽑는 거냐” “국민은행 다들 해지하세요 진짜 못 돼 먹음” “그리고 어플 제대로 만들던가. 통합 못시켜서 쓰잘데기 없이 몇십 개나 싸질러놓고 뭐 이제 와서 우리한테 혁신적 방안을 내놓으라고?”.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오늘의 베댓’입니다.

“세상은 광속으로 바뀌는데 아직도 노인네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은행의 경직된 행정처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네요. IT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행동해본 적도 없는데 중요성만 알고 있으니 이런 기괴한 채용절차가 탄생하죠. 실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맨날 빅데이터, 인공지능 타령하면서 젊은 직원들이 아이디어 뱉어주길 바라는 참담한 내부사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료=통계청
/자료=통계청

통계청이 지난 4월 27일 발표한 ‘2019년 통계’에 따르면 13~24세 청소년 22.2%는 정부 부처와 같은 국가기관을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았습니다. 이어 공기업 19.9, 대기업 18.8, 자영업 10.2% 순이었습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32.8%가 응답한 ‘수입’이었습니다. 반면 ‘적성과 흥미’라고 답한 청소년은 28.1%로 이보다 적었습니다.

‘개츠비’를 미국의 위대한 작품으로 그려낸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육군 장교였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죽을 각오로 쓴 <낭만적 에고이스트(The Romantic Egoist)>였습니다. 지금 취업준비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피츠제럴드의 밤’은 그의 책 속에서 잠들기를 바라봅니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밤은 후회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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