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 버전의 ‘아메리카 퍼스트’?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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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준 버전의 ‘아메리카 퍼스트’?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0.09.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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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칼럼에서는 지난달 27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있었던 기념비적인 통화정책 조정 내용 중 ‘완전고용’의 목표 수정에 관해서 설명했다. 이번에는 두번째 통화정책 조정에 대하여 해설하려 한다.

제롬 파월 의장은 잭슨 홀 미팅 기조연설, ‘새로운 경제적 도전과 Fed의 통화정책 검토(New Economic Challenges and the Fed’s Monetary Policy Review)’에서 미국 의회가 Fed에 부여한 정책 목표인 완전고용 달성과 안정적 물가 관리에 관한 전략을 40년 만에 수정했다.

Fed가 통화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던 미국 경제의 도전적 과제는 지난 콘텐츠에서 해설한 것처럼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저성장 현상이었다. 즉, 미국 경제의 자원을 모두 사용해서 도달 가능한 완전고용 상태의 이상적인 잠재 성장률, 실질 이자율, 자연 실업률 모두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 40년간 이어온 공식 ‘폴 볼커식 관리’

이러한 배경 아래 Fed는 약 40년 만에 경제학적 세계관 변화를 시도했는데 통화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소득 불평등 해소에 맞추고 경제적 균형 달성에 관한 집착을 탈피한 것이 그 것이다. 소득 불평등은 경제성장 장애 요인이며 이를 해소해야 저성장을 탈피한다는 논리이지만 결과적으로 통화정책에 사회정책 문제를 끌어들인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Fed는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 완전 고용 개념과 그 달성 방법을 변경하는 것과 함께 1980년 이후 지속해 온 인플레이션 타기팅, 즉 2% 물가 목표 관리라는 방법론도 조정했다. 물가 타기팅을 2% 수준으로 한 것은 2012년 도입한 것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한편 연준이 물가 목표를 관리한 배경 설명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설적 인물을 소환해야 한다. 미국 연준 역사상 폴 볼커는 연준의 책무와 중립성을 상기시키는 대표적 의장으로 기억된다.

미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 등으로 1979년 물가가 11%까지 치솟는다. 이때 지미 카터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폴 볼커가 연준의장으로 취임했고, 그는 고물가를 최우선으로 잡기 위해 사정없이 고금리 정책을 사용했다.

고물가 상태의 고금리는 경제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준다. 한국도 1998년 IMF 긴급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고금리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를 양산한 불편한 추억이 있다.

이러한 고금리로 미국 전역의 농부, 주택 건설업자들은 워싱턴 Fed 앞에서 시위로 압박했다. 당시 한 주택건설업자가 폴 볼커에게 제발 금리를 내려 달라고 호소한 편지를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위와 정치적인 압력에도 폴 볼커는 19%까지 금리를 올리며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버텼고 그는 가장 악명 높은 연준 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미국 경제는 물가가 안정되면서 고용과 물가가 큰 변동 없이 경제가 성장하는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를 구가할 수 있었다.

이때의 교훈으로 신중한 인플레이션 목표 관리는 Fed의 가장 최우선 통화정책이 되었다. Fed는 2%로 물가를 유지하는 것을 항상 점검했고 물가가 2%를 넘으면 금리를 올려 자금공급과 투자, 소비 수요를 줄이고 물가를 억제한다. 이것이 물가 목표관리(inflation targeting)이며 이후 폴 볼커식 경제 관리 공식은 40년간 미 연준의 절대적 통화정책 규칙이 된다.

그러나 저성장과 저물가 구조가 이러한 폴 볼커식 물가 목표관리를 어렵게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폴 볼커의 경제관리 공식은 필립스 곡선이란 경제이론에 근거한다. 필립스 곡선이란 영국경제를 조사해서 정립한 것으로 1958년 발표된 물가와 실업률의 역관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은 저금리와 저 실업률이 장기화되었다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보고서에서 지적한다.

코로나19 직전 2월까지 미국은 역사상 50년 만의 최저 실업률 수준을 기록했고 인플레이션도 Fed 목표인 2%보다 많이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렀다. 경제학자는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계속 예측했으나 물가는 요지부동이다. 제롬 파월은 이를 두고 저물가, 저 실업률 유지로 필립스 곡선이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었고 전통적인 경제 처방이 불가한 상황임을 암시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일시적 물가 상승에서 금리를 올리면 저물가와 저성장의 디플레이션형 경기후퇴를 만들 위험이 있다. 미국은 1929년 대공황 경험으로 디플레는 미국 경제학자에게 인플레이션보다 더 큰 트라우마를 일으킨다.

◆ ‘파월 풋’의 국제 충격파는?

제롬 파월은 1년 반에 걸친 Fed의 경제 조사와 관찰 결과, 소득 불평등으로 저소득층이 아주 취약하며 강한 노동 시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금리의 인상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특히 저 소득층에게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만들며 고금리가 생존에 필요한 경제활동 비용을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

Fed는 이 위험에 주목하며 과거 2% 수준을 고집하던 물가 목표관리를 ‘평균’ 2% 관리로 변경했다. 이것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을 유지해오던 물가수준이 일시적으로 2%를 넘어서더라도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 정책을 즉각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0~0.25% 초저금리 상태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학자의 신념인 균형 달성을 포기하는 놀라운 조치이기도 하다. 이 신축적 평균 물가 목표관리(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ing)는 잘못된 금리 인상에서 저소득층을 보호하려는 효과가 있다. 보다 인간적인 경제학이 등장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이 저소득층, 실업자이므로 Fed의 새로운 정책 목적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이번 Fed의 정책 변경은 완전고용의 질을 높여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이를 위하여 인플레이션을 일부 용인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통화정책 변경은 2021년에 적용하고 세부적인 지침은 미정이어서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초저금리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것을 제도적으로 확인한 것이어서 위험자산과 증시에는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이것을 금융시장에서는 제롬 파월 의장이 금융시장 가격 하락을 방어해주는 풋옵션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파월 풋’이라 한다. 파월 풋으로 시장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글로벌 투자은행의 연말 S&P500 3700포인트설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보인다. Fed는 2022년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을 Fed는 지난 통화정책 의사록에 명시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도 증시에 유리한 환경이다.

세계 증시도 유동성 장세가 동반 진행될 수 있고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조기 개발된다면 증시의 버블은 점도와 크기를 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급격히 상승해 고평가 상태인 시장의 버블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통화정책 전략 조정은 세계 경제에도 영향이 클 것이다. 초저금리에 2% 이상의 인플레이션 용인까지 가세하면서 달러는 구조적인 약세가 진행될 수 있다. 이러한 달러 약세 기조는 독일, 프랑스, 일본은 물론 중국, 한국까지 수출 주도형 경제의 통화 강세로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미국의 무역 분쟁과 함께 부담은 가중된다.

최근 유럽중앙은행 통화정책 회의에 즈음해서 미국 통화정책 조정에 의한 달러 강세가 유로존의 0.2~0.4% 성장 감축을 전문가의 입을 빌려 예상하는 외신도 있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 용인은 마이너스 금리 상태인 EU, 일본의 대응에 큰 부담을 줄 것인데 특히 일본은 1985년 달러 약세를 유도한 플라자 합의로 20년 장기 불황에 빠진 경험이 있어 달러 약세에 민감하다. 장기적인 달러 약세는 침체 상태의 일본 경제에 큰 부담될 것이 명백하다.

한편 달러 가치 하락은 달러 표시 상품의 명목 가치를 높인다. 대표적으로 국제 금값, 국제 유가가 고점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일부 용인되면서 장기 국채금리는 상승이 예상되고 금리의 기간 구조, 즉 일드 커브는 장기가 단기의 차이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다만 인플레이션 용인에 의한 금융시장의 가격 상승은 대부분 저소득층과는 무관하고 금융자산에 투자한 부자에게 유리할 뿐이다.

인플레이션은 저소득층의 생활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어서 만약 저소득층에게 고용과 임금 상승 등이 담보되지 않으면 오히려 인플레이션 용인은 저소득층 경제 상황만 악화하는 코브라 효과가 올 우려도 있다.

40년 만에 통화정책에 사회정책 개념을 도입하는 Fed의 통화정책 실험 결과에 세계 중앙은행이 주목하고 있다. Fed 통화정책 조정 결과로 결국 달러 약세 장기화가 나타나면, 코로나19 경제 충격에 설상가상 유럽, 일본 등 제3국이 희생을 치르고 미국만 먼저 살아나는 트럼프 이후 미 연준 버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이 될 가능성도 있다. Fed의 통화정책 조정이 일파만파 영향을 줄 것이므로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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