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한진그룹… 택배없는날, ‘공짜노동’의 역사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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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와 한진그룹… 택배없는날, ‘공짜노동’의 역사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8.14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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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열다섯에 군복 만드는 공장에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생전의 김복동 할머니. /사진=김복동의희망
열다섯에 군복 만드는 공장에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생전의 김복동 할머니. /사진=김복동의희망

“국민학생들은 솔뿌리까지 캐어 와라.”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1월, 조선총독부의 강제 징용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12~15세의 소년과 소녀들까지 탄광으로, 군수공장으로 동원합니다. 이보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까지 조달을 강요합니다. 총독부가 앞서 1940년 9월 조사한 동원 가능 노동력은 남성 92만7536, 여성 23만2641명이었습니다.

1967년 월남전 당시 제2해병여단인 청룡부대의 작전 모습. /사진=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경북지부
1967년 월남전 당시 제2해병여단인 청룡부대의 작전 모습. /사진=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경북지부

“한진상사는 피와 땀의 대가를 지불하라.”

1971년 9월 15일, 베트남 파견 노동자 수백명은 대한항공(KAL) 빌딩을 점거합니다. ‘한진상사’ 소속인 이들은 급기야 불까지 지릅니다. “한달 야간근무만 97시간30분에 달했는데 149억원의 임금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12건의 관련 소송 중 단 1건만 노동자의 손을 들어줍니다. 한진이 월남전에서 벌어들인 돈은 당시 우리나라 1년 수출액의 14%였습니다.

‘공짜노동’. 임금 등의 대가 없이 일을 하는 행위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오늘은 일부 업체를 제외한 전국의 택배 노동자들이 하루를 쉬는 ‘택배없는날’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배달 물량이 급증한 이들에게 하루의 휴식은 너무나 짧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실제 배달업무를 능가하는 분류작업 등 ‘공짜노동’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출처=흥국생명 SNS, 픽사베이
/출처=흥국생명 SNS, 픽사베이

CJ대한통운 등 대형 택배업체 4곳과 우체국 물량을 위탁받는 노동자들은 오늘부터 사흘간 쉴 수 있습니다. 전체 택배 노동자의 약 95%, 5만명 정도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들 대부분은 광복절 임시공휴일인 17일부터 업무에 복귀합니다. 이에 따라 최근 주문한 택배 상품은 17일 이후 순차적으로 받게 됩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 증가율이 20%로 뛰어오르면서 택배업체들의 실적은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J대한통운 택배사업 부문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 476억원을 올리며, 전체 영업비중의 57%를 차지했습니다. 지난 1분기(60%)에 이어 분기 연속 50%를 넘었습니다. 상반기 영업이익 중 절반 이상이 택배 사업에서 나온 셈입니다.

한진 역시 택배 사업이 실적을 이끌었습니다. 2분기 매출은 5271억, 영업이익은 273억원이었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1, 24.7% 늘었습니다. 택배 사업의 매출은 2435억원으로 같은 기간 23%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86.5% 늘어 11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한진은 이 같은 택배 사업에 힘입어 지난 2017년부터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료=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자료=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이처럼 택배업체들의 실적은 좋아졌지만, 노동조건은 되레 열악해졌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 5명이 숨지고,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택배 노동 사망자도 9명에 달합니다. 특히 매일 5~6시간 걸리는 분류 작업은 사실상 공짜노동인데 대체 인력 투입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이들 인력 상당수가 특수고용노동자여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산재보험은 임의 가입이라 적용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택배 노동자들은 자동분류기 도입이나 분류 인력 확충과 함께 산재보험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 고용노동부와 택배업체가 맺은 공동선언에는 “심야시간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라는 추상적인 내용뿐입니다.

김세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심각한 과로 문제를 풀려면 정부가 심야배송을 금지해야 하는데, 휴식시간 ‘보장 노력’을 하라며 오히려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말았다”라며 “관리·감독 후속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과로사 대책을 외면한 택배사들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택배 노동자. /사진=픽사베이
택배 노동자. /사진=픽사베이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택배기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 걱정 두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건당 본인한테 떨어지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네요. 택배기사님들 바쁘게 일하는 모습 볼 때마다 안쓰럽더라고요. 몸으로 하는 일이라 많이 힘들어 보여요” “나도 배송일인데 밥못먹는건 기본이고 밤12시에 집에 도착하는데 ㅠ” “택배 기사님처럼 당신은 자기 일에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택배업에 종사하는 분들 모두들 건강하시고 파이팅하세요 당신의 희생 덕분에 많은 혜택을 보고 삽니다”.

'아베 사죄상' 논란을 불러 일으킨 강원도 평창의 식물원에 설치한 조형물. /사진=한국자생식물원
'아베 사죄상' 논란을 불러 일으킨 강원도 평창의 식물원에 설치한 조형물. /사진=한국자생식물원

“이거는 알아야 하기에 나오게 되었소”.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집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6년이 지나서야 이날을 ‘기림의날’로 공식 지정합니다. 지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17명입니다. 지난해 1월 28일, 열다섯 나이에 위안부가 되었던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말입니다.

“아베한테 진심어린 사죄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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