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항쟁으로 태어난 ‘최저임금’… 이의 있습니다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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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항쟁으로 태어난 ‘최저임금’… 이의 있습니다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7.14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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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사진=픽사베이
돈. /사진=픽사베이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 박종철기념관에 걸려 있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직선개헌 선언' 신문. /사진='온누리TR' SNS
서울 용산구 갈월동 박종철기념관에 걸려 있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직선개헌 선언' 신문. /사진='온누리TR' SNS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아홉번째로 바뀐 헌법이 확정됩니다. 근로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32조 1항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덧달립니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6·29선언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과 함께, ‘최저임금제’가 유월항쟁의 결과물로 태어난 날입니다.

/자료=최저임금위원회
/자료=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 국가가 노사 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하여 법으로 정한 최저수준의 임금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30원(1.5%) 오른 시급 872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오늘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이 같은 공익위원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9, 반대 7, 기권 2로 의결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대비 인상률 1.5%는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1988년 이래 가장 낮은 인상률입니다. 인상률로만 따지면 역대 세번째로 낮았던 올해의 2.9%는 물론, 금융위기 직후였던 2.75%(2010년 적용), 외환위기 때의 2.7%(1998년 9월~1999년 8월 적용)보다도 낮습니다.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코로나19 파급을 감안해 보수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의결에 앞서 9000~1만원 수준의 최저임금을 주장한 노동자 위원 9명은 모두 불참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심의 참여를 거부한 민주노총 위원 4명에 이어 한국노총 위원 5명도 공익위원안을 확인한 이후 퇴장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최저임금 삭감 또는 동결을 강하게 주장했던 소상공인연합회 사용자위원 2명도 기권을 선언하고 회의장을 나섰습니다.

지난 2018년 5월 30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최저임금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있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 /자료사진=민주노총
지난 2018년 5월 30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최저임금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있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 /자료사진=민주노총

노동계는 이번 최저임금 의결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오늘부로 최저임금 노동자위원 사퇴를 포함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저임금 제도개혁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노총도 “공익위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책임을 방기하고 사용자의 편을 듦으로써 스스로 편파성을 만천하에 보여줬다”라며 노동자위원 전원 사퇴를 결정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수용하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에서 “아쉬움을 표한다”라며 “향후 기업들의 지불 능력과 경제상황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 역시 입장문을 내고 “이번 결정에 대해 아쉬운 감은 있으나 수용의 입장을 밝히는바”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의 의결은 노동계 불참으로 인한 ‘반쪽짜리’ 비판에 더해, 소상공인 등 사용자 세부 구성원을 포용하지 못한 결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또한 노사와 시민사회 간 사회적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구성도.
최저임금위원회 구성도.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칫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월급이 오르는 건 아니죠. 알바들은 자리를 잃고.. 월급 높은 경력자들은 자리를 잃고.. 자영업자들은 혼자 근무하는 이들이 늘고.. 사람의 자리를 잃는 느낌입니다” “하나 둘씩 망해가며 없는 일자리. 시급이 오르면 뭐하나? 밑바닥 일터의 현주소가 어떤지 보고들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해야. 정말 없는 사람들이 최저시급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일까? 매년 시급 결정시 생각하게 되는 의문입니다”.

경제 형편에 빗대 안타까운 입장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물가나 집값에 비해선 최저임금이랑 받는 월급이 작아서 올리긴 올려야 되는데 올린 만큼 물가가 더 껑충 뛰어버리니 노답이네” “경제가 성장하면 올려도 된다. 근데 올해 마이너스 성장인데 올리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3년 경력자나 신입직원이나 임금이 같아서 문제네요.ㅠ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도 여력이 안되니 ㅠㅠ”.

얼마 전 ‘걸그룹 춤판’ 논란이 일었던 소상공인연합회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소상공인연합회 며칠 전에 걸그룹 데려다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로 리조트 빌려서 수억 쓰면서 잔치하고 했다고 뉴스에 보도된 단체 아닌가요? 그 돈은 소상공인 도우라고 준 세금 아닌가요?” “소상공인연합회 니들이 소상공회 맞냐 이구 이것도 감당 못하면 때려쳐... 당신들의 부담은 배달앱 수수료, 가게 월세야. 이정도도 아쉽다고.. 을의 갑질 표본이다”.

백기완 선생(작은 사진)과 성공회 서울대성당 사제관 앞의 '유월민주항쟁진원지' 표지석. 1987년 6월 10일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사진=서울특별시,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작은 사진)과 성공회 서울대성당 사제관 앞의 '유월민주항쟁진원지' 표지석. 1987년 6월 10일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사진=서울특별시, 통일문제연구소

“최저임금 1만원 시급하다”. 2017년 7월 12일 세종문화회관 옆 ‘광화문1번가’. 각계 인사와 시민 5967명이 노동계와 연대 선언을 합니다. 선언문에는 통일문제연구소장인 백기완 선생도 이름을 올립니다. 문익환 목사와 유월항쟁 선봉에 섰던 백 선생은 30년 뒤에도 현장과 함께였습니다. 지난달 10일 여든여덟의 운동가는 병상에서 이렇게 글을 써보였습니다.

‘유월항쟁은 이 참도 내 가슴 속에 불타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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