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계급과 신분의 어디쯤에 있는 공정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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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계급과 신분의 어디쯤에 있는 공정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11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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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경계를 만들고 경계를 허물고
성을 더 높이 쌓겠지만 너무 쉽게 허물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젠 그들도 성을 쌓지 않는다.
환상에 포획당한 자는 이윽고 망상의 집에 문을 잠그지만
빈약한 환상은 가로지를 필요가 없다.’

그가 오스카의 위너가 되기를 응원했지만 영화 ‘기생충’이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만큼 섹시하지는 않았다.

계급의 문제를 간단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지만 왕조시대 신분제를 대체하는, 획득 신분인 계급에 내재한 역동성과 차별이 범주화하지 않음으로써, 계급이 마치 신분의 수준에서 받아들여지는 듯한 환각에 빠지게 된다.

신분과 계급을 아우르는 강력한 기제가 관료제이다. 왕과 사대부 사이의 ‘길항관계’ 속에서 왕이 신분제의 잔혹성을 봉인 해제하듯이 드러내는 역린 혹은 사화나,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간 모순이 의사결정기구인 다수결이 감추고 있는 폭력성을 가면 벗듯이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집단 따돌림이나 전체주의는 모두 관료제가 붕괴될 때 벌어진다.

‘공정’을 신분과 획득 신분인 계급 사이의 어디쯤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공정의 핵심은 관료제의 온전한 작동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척도는 선발의 공정함이다.

고려시대 광종 이래 왕조의 흥망성쇠는 과거제도와 음서제도의 충돌과 조화에 달려 있었다. 현대판 음서제는 대학입시에서 수시전형과 내신의 기만적인 팽창과 현대판 좌주문생제도인 입학사정관제 등에 있다.

단순하게 내신을 폐지하고 수시전형을 축소하고 입학사정관을 없애면 되겠지만, 내신은 수많은 보습학원과 학교 측의 저항을 받을 것이고 수시전형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 도사린 기득권자들의 총체적이고 은밀한 저항에 시달릴 것이다.

해결은 대학입시를 둘러싼 학생, 학부모, 교사 등 당사자들 모두가 스스로 이기적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마찬가지로 족벌경영을 기업지배구조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재벌기업들, 지역패권이 살아 숨 쉬는 선거의 전리품인 공기업의 구성원 채용과정에서 벌어진 특혜시비를 주기적으로 되풀이할 가능성은 크다.

이 현상을 완화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도감이나 태스크포스가 필요한 영역 외에는 특별채용을 축소하고 노동시장에서는 노조가 적극적으로 헤드헌터(알바몬 혹은 보라스 같은)가 되어야 하지만, 기대난감이다.

장기적으로 취업 전에는 스펙쌓기 식의 비생산적인 일에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고 취업 후에는 스톡옵션 등의 보상체계가 보편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채용과정을 단순 명확하게 하고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의 구별을 좀 더 엄격하게 해서 법인사업자에게는 사회적 책무(기업의 성장이 주가의 상승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삶의 질도 향상시키도록 스톡옵션제도의 의무화)를 지우면, ▲노동자들은 기초적인 임금 외에는 기업의 수익과 위험을 공유할 준비를 해야 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노동자들과 이익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본가는 개인사업자에 머물 것이고 기업과 위험을 공유할 뜻이 없는 노동자는 족벌기업에 들어가 머슴처럼 살면 된다.

물론 이 순진무구한 모델 사이에는 은하수의 별처럼 많은 다른 길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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