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나이롱 감기’와 보험금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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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나이롱 감기’와 보험금 소송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2.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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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고의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타낸 배달업체 대표 등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자료사진=부산경찰청 제공
고의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타낸 배달업체 대표 등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자료사진=부산경찰청 제공

“나일론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돼지털로 이를 닦고 있을 것이다.”

1932년 미국의 화학자 월리스 흄 캐러더스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을 낚아챕니다. 동료와 함께 실험을 하던 그는 끈끈한 폴리에스테르 덩어리에 유리막대를 집어넣었다 빼던 중 실이 만들어지는 걸 알았습니다.

폴리에스테르에서 뽑은 실은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았고 캐러더스와 동료들은 누가 가장 길게 만들 수 있는지 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발명된 새로운 실은 훗날 나일론이라 불렸으며 이를 이용한 첫 제품은 칫솔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돼지털 칫솔’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명된 나일론이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여성용 스타킹입니다. 나일론 스타킹은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나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일론은 섬유 시장의 점유율을 빠르게 장악하면서 인조섬유 시대를 열었습니다.

‘나일론’이 정식으로 탄생했던 1938년 2월, 미국의 한 신문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거미줄보다 가늘고 실크보다 아름다우며 철사보다 질긴 실이 나왔다. 기적이다.’

기적 같은 발명이 있은 지 25년 후, 1963년 10월 25일자 한국의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등장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주로 일본 발음을 따라 ‘나이롱’이라 한다. ‘나일론봉’(화투놀이의 하나인 ‘나이롱뽕’을 가리킴)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일론 환자’ ‘나일론 목사’ ‘나일론 신사’ 등을 생각하면 ‘나일론’이 원래 인조실이므로 ‘가짜’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겠으나 영어에는 이런 뜻이 없다.’

‘사시이비(似是而非)’.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는 네 글자로 진짜 같은 가짜를 말할 때 씁니다. 흔히들 줄여서 ‘사이비’와 함께 속칭 ‘나이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총 30억원 규모의 보험사기 조직원 200여명을 적발했습니다. 금감원은 이 사례를 포함해 지난해 상반기 적발한 손해보험 사기금액만 3732억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속칭 ‘나이롱 환자’로 불리는 보험사기로 민영보험금 누수액이 연간 4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국민 1인당 9만원 꼴입니다. 보험금 누수는 곧 보험료 인상을 불러 선량한 보험계약자에게 피해를 줍니다.

배달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20대 배달 대행 라이더의 경우 몇몇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료를 사전 측정해본 결과 18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 책정되었고, 기본 보장만 되는 책임보험도 400만∼500만원 수준입니다. 보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사고율이 높고 보험사기에 악용되다 보니 보험료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9일) 대법원은 A씨가 한 보험회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보험사가 보험약관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면 계약자가 ‘고지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2016년 3월 아들이 오토바이 운전 중 사망하자 두 종류의 보험 계약이 맺어져 있던 손해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지급해 달라고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A씨의 아들이 보험 계약 시 오토바이를 주기적으로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이는 계약자의 고지 의무를 어긴 것’이라는 이유로 보험 해지 및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A씨는 ‘오토바이 운전으로 인한 사고 시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보험사로부터 전혀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사망 보험금 5억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고 최종심은 “설명의무 등과 관련해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례를 위반한 잘못이 없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평소 보험금 미지급에 대한 민원이 많은 만큼 판결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컵라면에도 물 뜨거우니까 잡을 때 조심하라고 쓰는 판에 매달 십몇만원 받아먹는 보험이 유의사항을 설명도 안 해준다?” “올바른 판단이네요. 가입시킬 땐 다 줄 거처럼 괜찮다 괜찮다했을 거 안 봐도 뻔한데” “영맨들도 1회에 모든 내용을 정확히 읽고 모든 내용을 숙지할 수 있는지? 영업을 하려면 적어도 ‘상도’라는 걸 알아야” “가입할 때는 온갖 좋은 점만 강조하지~ 막상 고객이 혜택 좀 보려면 안 주려고 발악하고”.

그러나 일각에선 보험료 인상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이러니 보험료만 오르지. 안타깝지만 뭔가 기준은 있어야지” “이건 악용사례가 분명히 나오겠네요” “고지의무 위반인데...” “보험사는 담당 설계사에게 구상권 청구할 테니... 보험사는 손해 볼 것 없고... 담당 설계사만 죽었네”.

/사진=금융감독원 보험사기방지센터
/사진=금융감독원 보험사기방지센터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7년 6월 7일자 한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옵니다.

‘거의 악성(惡性)이라고 볼 수 있으며 소위 ‘나이롱감기’인데 의학적으로는 아직 구명이 되지 않고 있읍(습)니다.’

일반 감기와 다른 신종 유행성 감기를 ‘나이롱감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창궐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나이롱감기’와 함께 ‘나이롱환자’도 빨리 사라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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