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다는 한국인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2022-02-17     조수연 편집위원(뉴스웰경제연구소장)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이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일까? 인간의 행복과 존재가치와 관련한 이 질문은 동서고금의 수많은 철학자가 해답을 갈구해왔으나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세계 경제 이념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근간에는 ‘효용 극대화’(Utility maximization)라는 가치관이 있다. 사람들은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더욱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때 행복하고 효용이 커진다’라는 이 같은 가치관이 부정된다면 세계 경제 질서는 무너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지난해 11월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이런 의문에 답을 찾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퓨리서치는 한국을 포함한 17개 선진국의 1만6254명(한국 응답자 1006명)을 대상으로 다음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분석했다. ‘당신 인생에 의미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What makes life meaningful?). 이 조사는 다양한 정치, 경제, 문화 스펙트럼을 가진 선진국 국민의 삶의 가치를 비교하고 공통의 가치관을 확인하는 중요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일 것이다.

자료1. /출처=Pew Research Center

먼저 17개 선진국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를 주는 것으로 3순위 가운데 가장 많이 응답한 것은 ‘가족’이었다. 삶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부모, 형제, 자녀, 손자와의 관계를 17개국 중 14개국의 응답자가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세계인은 가족, 친지와의 좋은 시간, 가족이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 자식을 위해 좋은 세상을 남기려는 희망 등에 의미를 둔다고 응답했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스, 미국인은 응답자 절반 이상이 가족이 인생을 충만하게 한다고 응답해 가족에 대한 가치를 높게 두고 있다.

자료2. /출처=Pew Research Center

자료 2에서 보는 것처럼 17개 국가의 응답 중 중위값(median)을 기준으로 한 주요한 삶의 가치는 ▲가족과 자녀 ▲직업과 경력 ▲물질적 풍요 ▲친구와 공동체 ▲건강 ▲사회와 제도 ▲자유와 독립 ▲취미와 여가 순이었다. 이 표에 등장하는 응답은 이들 나라의 국민을 이해하거나 비즈니스 또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주제들이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은 가장 큰 경제 공동체인 중국이 없다는 점이다. 아마 퓨리서치가 미국 여론조사기관이어서 중국 혐오가 극심한 현실을 조사 구조 설계에 반영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자료3. /출처=Pew Research Center

세계인의 가치관 2위인 직업과 경력은 국가별로 이탈리아가 43%로 응답률이 가장 높았고, 가장 낮은 국가는 예상 밖으로 한국이었다. 미국은 3분의 1이 일과 관련한 ‘경력’에 의미를 둔다고 응답했는데 일을 통한 기여, 근로를 통한 즐거움, 동료애, 도전 의식 등이 이유였다. 세 번째는 17개국 중 9개국이 응답한 ‘물질적 풍요’였는데, 특이한 점은 이것이 한국인 가치관 1순위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삶의 가치에 대한 조사결과는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 ▲건강(health) ▲가족(family) ▲일반적인 긍정(general positive) ▲사회와 자유(society and freedom) 순이었다. ‘일반적인 긍정’이란 행복해지는 것, 목표 달성 같은 다소 모호한 긍정적 신념을 응답한 것이며, ‘사회’라는 응답은 현재 살아가는 사회의 편리성, 제공이익, 안전성 등의 가치를 의미하며, ‘자유’는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 경제적 자유 등등의 응답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삶의 가치 1위로 가족을 꼽고 있는데 한국민은 물질적 풍요를 1위로 응답한 것이 대조적이어서 팍팍한 현실 생활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주택, 주식 가격 폭등하는 가운데 중산층 이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죽어 나가는 극한적인 불평등, 불공정이 조사 결과에 반영된 것은 아닐지도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한편 최근 중국과 긴장 관계가 높아지고 있는 대만은 삶의 가치를 ‘사회’와 ‘물리적 풍요’로 가장 많이 꼽았는데, 지정학적 어려움을 겪는 섬나라 경제부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 대만인은 섬나라이지만 의식주와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이 안전·안정적이며, 공공보험체계가 좋고 의료서비스가 편리하다고 했다. “대만에 사는 것은 행운”이라는 한 대만인의 표현을 들으니, 뉴스로 전해지는 전쟁 공포와는 달리 국가에 대한 신뢰가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 한국 국민도 ‘사회’를 다섯 번째로 꼽았다.

또한 눈에 띄는 조사 결과는 미국인의 ‘종교’에 대한 가치관이다. 미국인은 15%가 삶의 가치를 종교와 신에 둔다고 응답했으며,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조사 결과라고 퓨 리서치는 보고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복음주의자는 ‘종교와 신’이라는 응답률이 34%로 높았다. 대조적으로 영국, 호주, 프랑스, 뉴질랜드, 스웨덴은 ‘자연’에 대한 응답률이 높았고, 영국은 ‘취미’가 3순위에 자리한 점이 이채롭다.

자료4. /출처=Pew Research Center

대체로 선진국 젊은이는 인생의 가치에 친구와 교육, 취미를 중요시했다. 65세 이상 고령층은 역시 건강과 은퇴를 중요한 것으로 판단했으며, 젊은이보다 삶의 가치 추구에 장애를 가져오는 도전적 문제와 부정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었다. 남자와 여자는 삶의 가치관에서 기대와는 달리 큰 차이가 없었다. 고학력, 고소득자일수록 가족과 경력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우가 많았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공공서비스 시민 활동에 관심이 컸다.

자료5. /출처=Pew Research Center

한편 이념적으로 좌익일 때 자연, 친구와 취미에 가치를 둔다는 응답률이 높았고, 우익은 종교에 가치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고서는 분석한다.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일수록 자유, 독립을 삶의 가치로 응답할 확률이 높고, 이러한 경향은 2017년 이후 (공화당 지지자일수록) 더욱 강해졌다는 추세적 변화가 조사 결과 나타났다.

선진국 국민의 삶의 가치관이 나라에 따라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지만 불평등과 배금주의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세계인의 공통 관심사는 ‘가족’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가족 파괴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삶의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조사 결과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