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 교문리에서 내리다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2026-08-04     김경훈 영화칼럼니스트
영화 ‘호프’의 한 장면.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호프>에서는 모든 것이 리얼(the Real, 실재계)에서 시작되고 단절된 시간과 공간은 기어이 연속성을 찾아내 역사를 만든다. 이것을 진화(evolution)라고 부른다 한들 달리 무어라고 할 수 없다. 혹은 혁명(revolution)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사변이든 외계와의 조우든 리얼이 상징체계 혹은 체제에 균열을 만들고 시간의 흐름에 일시적인 진공상태를 만든다. 피할 수도 없고 억겁의 인연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지만 어떻든 벌어진 사태이다.

이때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 희망을 따라서, 각자의 입장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조인성이 연기한 ‘성기’다. 이자는 전사(戰士)다. 죽을 것이 뻔히 보이는 싸움 앞에서도 불굴이다. 전사의 자세는 이것이다. 무릎 꿇지 않는 것이다.

조선시대 역모를 저지른 죄인들에게 의금부에서 가해진 고문 중에는 무릎을 꿇리고 무릎 위에 돌을 쌓는 압슬(壓膝)이 있었다. 북미 인디언들이 기병대와 마지막 전투를 벌인 곳이 운디드 니(Wounded Knee)라고 불리는 것은 그 이유가 이러하기 때문이다. 성기는 무릎을 꿇지 않고 끝내 반격을 가한다.

다음으로 매력적인 역할은 정호연이 연기한 인류 멸절의 시기에 반드시 나타나는 메시아적 여성 전사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인류를 생식할 아이를 품고 있다. 물론 <호프>에서 ‘성애’는 M16 소총을 갈기고 순찰차로 수많은 U턴을 반복하며 리얼에 현실적인 타격을 입히지만, 그녀가 사랑한다고 외쳤던 성기는 코너 길에서 무언가에 부딪혀 죽고 만다.

자, 이제 우리는 누구의 아이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 이미 ‘양배’의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보이는 외계인의 아이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인류의 기원을 묻는 여러 가설 중에 외계 유래설은 언제나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다음은 사실 제일 흥미로워 보이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의 첫 접촉을 증오와 폭력의 향연으로 만들어 버린, 양배의 출현이다. 폭력의 방향과 개시 시점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공감과 동조가 의사소통행위 속에 녹아있지 않고 오직 게임의 수순으로만 기능하는 이들은 사실 자연계 혹은 우주 전체의 리얼이다.

경제 특히, 자본시장에서의 리얼은 공황(panic)이나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 같은 것이 있다. 시장의 구조적·관성적 문제 외에 시장의 참가자 혹은 금융상품 자체가 리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미 널리 퍼져있는, ▲연초에 국민연금 기금이 국내주식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14%가 아닌 30%로 늘려 리밸런싱(국내주식·해외주식·채권 등 자산별 투자 비중을 정해진 목표에 맞게 다시 조정하는 과정) 시기를 놓침으로써 외국인 투자자가 오히려 리밸런싱하게 함으로써 국부를 유출했다거나, ▲국내 주식시장이 전년 대비 300% 이상 폭등한 시점에 레버리지 ETF(선물과 스와프 같은 파생상품을 활용해 기초지수의 일간 등락률을 2배 또는 그 이상으로 추종하도록 설계된 상장지수 펀드)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시장의 변동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켰다는, 의심은 이제 씻어버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신뢰가 사라진 시장에서 자본시장의 메커니즘은 위험과 수익률의 연결고리인 금리와도 무관하게 단지 탐욕과 풍문, 그리고 공포에 따라 움직이는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 과도한 부채로 경기 호황이 끝나는 상황)가 작동하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 ‘호프’의 한 장면.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아직도 외부 위험, 즉 이란·이스라엘 전쟁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유럽과 미국의 업보인 아프리카 난민이나 중·남미 난민의 유입과 그 배경인 남반구 인구의 폭증과 북반구 인구의 감소는, 장차 지구에 타노스적 비극이 예정되어 있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와중에 우리에게 닥친 자본시장의 몰락적 징후는 느긋하게 생산성과 자본의 효율성에 대한 AI의 환상만을 누빔점으로 삼을 수 없게 한다. 여전히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자본시장의 청산적 기능보다는 대의 민주주의의 공화적 기능에 의지하고 있겠지만, 환상을 횡단할 시간은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 보인다.

<호프>의 매력 중 하나는 충분히 5·18항쟁을 연상시키는 마을 사람들의 고군분투(孤軍奮鬪)가 어느새 우주전쟁으로 팽창해 버리는 도약에 있다.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연쇄살인마의 폐색(閉塞)된 심리 안에 갇혀버리는 수축이 있다. 이 과정에서 영화적 쾌감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미숙한 것이다.

오래전 가평에서 강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교문리에서 내린 적이 있다. 롯O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새로 나온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은 여름날 여자 친구와 여관방에서 누워 마시는 콜라 한잔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숨 가쁜 기다림의 끝이었다.

제일 가까운 주말 상영시간에 맞춰 영화관이 있는 낯선 도시의 정거장마다 들여다보던 영화 티켓의 시간표와 영화 제목, 그리고 차창 밖으로 부딪혀 오는 가로수가 퍼트리던 녹색의 냄새가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었다. 일체감은 애욕 넘어 존재의 시원이었고, 모두 그 안에서 부처가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날 지인이 교문동 근처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쓰러져 말을 못 하게 되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어눌한 말소리, 문득 소양강댐에 던져놓은 방울이 생각났다. 다시 강 밑에서 건져 올릴 수 없겠지만 댐에 올라가서 하염없이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폭우가 내리는 날에는 그려본다. 수문이 열리고 방울 소리가 강물로 떠내려가는 것을.

정부의 입김이 강해지면 불필요하게 댐이나 보 등이 많아져 강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정책을 필요 이상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효율성을 갉아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