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증시 몸통 뒤흔든’ 삼전닉스 레버리지는 홍명보? [오인경의 그·말·이]
서킷브레이커 또 발동에도 ‘아무런 이유 없다’?… 국민연금이나 당국, 제대로 된 방향 잡아야
대한민국 증시가 극단적인 투기 양상을 보이며 카지노보다 더한 도박장으로 변질되는 분위기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전 세계 5, 6위권을 넘보는 주식시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어지러운 널뛰기 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때 당연시 여겨지던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지수 편입을 위한 '관찰대상국' 지정에서도 또 제외되면서 증시 참여자들은 하루하루가 뒤숭숭하기만 하다.
증시를 둘러싼 제반 환경은 추가 상승보다는 조정 요인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당장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자금은 극심한 변동장세 속에서도 여전히 사상 최고치 수준에서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주식을 3000조원 가까이 보유 중인 외국인들은 투자 한도를 초과하는 종목들을 처분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이 30%를 초과한 상태로 보유 중인 국민연금은 유예했던 리밸런싱을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주식투자 비중 조절을 미루는 동안 리밸런싱에 충실했던 외국인들만 배불리는 꼴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민연금에서 규정된 투자 한도(개정 전 14.9, 개정 후 20.8%)를 무려 두 배 이상 초과했음에도, 오랫동안 지켜왔던 국내주식 투자 한도 규정조차 바꿔가며 주식 처분을 미뤄 온 무리수가 뒤늦게 후폭풍을 일으키는 양상이다.
국민연금이 지나치게 국내 주식을 움켜쥐고만 있을 게 아니라 미리 적당한 시기에 조금씩 투자 비중을 낮췄더라면, 지금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이 고가에 엄청난 주식을 처분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그랬더라면 지난해 11월 이후로 외국인이 순매도한 자금 규모(원화 기준 179조원, 현재 환율 기준으로 1166억달러)도 크게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려 8개월 동안에만 1000억달러가 넘는 주식 순매도(원화 매도 / 달러 매수 수요)가 이어지는데도 원화 절하의 원인을 자꾸만 다른 데서 찾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우리 증시가 올해 들어 시간이 갈수록 반도체 업종으로만 자금이 급격하게 쏠린 영향도 변동성을 크게 확대시킨 요인으로 보인다. 시가총액 상위권 종목들이 사실상 반도체 투톱 연관 종목들로 꽉꽉 채워진 까닭에 이들 두 종목으로 쏠리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으로 볼 수도 있다.
시가총액 최상위 종목으로만 집중 거래되는 증시 흐름은 '삼전닉스'로 불리는 반도체 4사(삼성전자, 삼성전자 우선주, SK하이닉스, SK스퀘어)의 거래대금을 극단적인 수준까지 확대시켰다.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 4분의 3에 가까운 자금이 단 네 종목에만 쏠렸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도체 4사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들의 거래대금은 꾸준히 80∼90% 수준으로 거래된 바 있다. 이런 흐름은 올해 4월 초·중순까지도 이어지는 듯하다가 지난달 이후로 급격하게 무너지는 양상이다. 마치 대한민국 증시에서 '삼전닉스'가 아니면 주식 취급도 못 받을 만큼 이들 종목들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한 때문이다. 주가지수는 4, 5%씩 오르지만, 상승종목의 숫자는 수십 종목에 불과한 날도 자주 나타났다.
이런 극단적인 쏠림 양상에 기름을 끼얹은 정부 정책이 바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 허용'이었다. 증시 호황을 틈타 뒤늦게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긴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가 상승분의 두 배씩 수익을 안겨주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몰리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빚투로 조달한 자금마저 단일 종목 레버리지로 흘러들었을 테니, 레버리지에 또다시 레버리지를 더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쏠린 자금은 불과 한 달 만에 하루 거래대금만 20조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과열 양상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하루 거래대금이 해당 종목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경우도 매우 잦았다. 레버리지에 레버리지를 더한 자금이 자그마한 가격 변동에도 원금 대비 몇십 퍼센트씩 수익과 손실을 왔다 갔다 하는 형편이니 장기 보유는 언감생심 생각할 겨를조차 없게 된 형국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집중된 거래대금은 어느새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36.6%에 이를 만큼 급팽창했고, ETF의 기초자산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거래대금의 65.3%까지 급팽창하는 중이다. 이런 양상이야말로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웩더독의 끝판왕으로 불릴 만하다.
이토록 무리에 무리를 더한 투자자들이 하루 종일 시세가 출렁일 때마다 이리저리 레밍스처럼 몰려다니다 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에도 '아무런 이슈도 없이' 서킷브레이커가 두 번씩이나 발동되는 기이한 급변동 장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토록 극심한 롤러코스터장세는 전 세계 그 어떤 증시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극단적이다. 미국의 변동성 지수(VIX)를 모방한 국내 증시의 변동성 지수(KSVKOSPI)는 연일 90포인트를 넘나들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나 코로나19 팬데믹보다 훨씬 더 극심한 변동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매일처럼 반복되는 양상이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반도체 업종 등 일부 산업분야에 국한된 호황 덕분에 코스피 지수만 아득한 고공행진을 달릴 뿐, 외국인 주식 대량 매도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 압박뿐 아니라 ▲고물가에 따른 금리 상승 ▲K자형 경기회복에 따른 경기 양극화 ▲청년 실업 등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증시 대호황이 연기금이나 금융당국의 잘못된 방향 설정으로 인해 혼란만 가중되지 않도록 한시바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