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피 증시에서 자주 들리는 ‘3박자’, 탄광 속 카나리아? [오인경의 그·말·이]
코스피 지수와 함께 신용 및 공매도 잔액도 사상 최고치 경신… ‘버블 종목’ 잘 살펴야
주식시장이 과열되면 어김없이 불어나는 수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신용 잔액과 공매도 잔액이다. 이 둘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양면성을 지닌다. 신용 잔액은 증시 상승에 베팅한 사람들의 베팅 금액으로 볼 수 있고, 공매도 잔액은 증시 하락에 베팅한 사람들의 베팅 금액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베팅한 금액이 동시에 늘어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증시는 일정한 박스권에 머무르기보다는 위든 아래든 늘 과격하게 움직이고 싶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증시가 출렁일수록 탐욕과 공포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증시가 급등할수록 신용잔액이 급증하는 경향은 단 한차례도 예외가 없었다. 불장일 때 레버리지를 일으키더라도 더 많이 벌고 싶은 탐욕을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증시가 급등할수록 공매도 잔액도 함께 늘어나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증시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흐름이라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에 보유한 주식을 최대한 늦춰 파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승장일수록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 잔액이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시세가 급등할수록 기업의 가치에 비해 주가가 비싸지기 때문이고, 버블이 낀 주식은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라는 경험칙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증시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3박자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코스피 사상 최고치, 신용잔액 사상 최고치, 공매도 잔액 사상 최고치 경신 소식이 그것이다. 먼저, 무섭게 불어나는 증시 전체 시가총액과 공매도 잔액의 흐름부터 살펴보자.
무차입 공매도를 방지할 목적으로 장장 1년 5개월 동안 시행됐던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지난해 3월 31일에 재개된 바 있다. 그 당시 증시 전체 공매도 잔액은 5조7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토록 쪼그라든 공매도 잔액이 이번 달 17일 기준으로 마침내 30조원을 돌파했다. 1년 3개월 전에 비해 무려 5.3배나 불어난 수준이다.
개별 종목별로 살펴보더라도 공매도 잔액이 500억원 이상인 종목만 무려 94종목에 이른다. 이들 종목에 쌓인 공매도 잔액은 23조7311억원에 이른다. 시장 전체 공매도 잔액의 81.6%가 이들 94개 종목에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공매도 잔액 상위 20개사를 살펴보면 한국 증시를 주도하다시피 이끌고 있는 종목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규모 공매도 잔액이 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종목에 대한 추가적인 주가 상승보다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자금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종목에 쌓인 공매도 잔액과 주가 흐름을 함께 살펴보면 좀 더 뚜렷한 그림이 나타난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주가가 급증한 종목일수록 공매도 잔액도 덩달아 증가하는 모습이 여러 종목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종목으로 현대차와 HD현대중공업을 꼽을 수 있다.
공매도 평가손실 상위 종목들을 살펴보면 예상 밖으로 많은 종목이 공매도 잔액에 비해 엄청난 평가손실을 떠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케이스는 이번 폭등장을 너무 과소평가한 나머지 너무 낮은 가격에 공매도에 나섰다가 여태까지 청산하지 못한 경우다. 두 번째 케이스는 뒤늦게 단기 고점으로 판단하고 대거 공매도에 나섰다가 주가가 계속 내달리는 바람에 공매도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경우다.
공매도가 급팽창해 온 과정에서 또 하나 살펴볼 대목은 기업의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공매도 잔액을 터무니없이 과도하게 쌓아 올린 경우다. 대표적인 종목이 한미반도체와 삼양식품이다. 이 두 종목은 상장주식수 대비로도 각각 7.45%와 4.61%에 이를만큼 공매도 잔액 포지션이 극단적으로 부풀어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 공매도 잔액이 3000억원을 초과하는 종목들도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두 카테고리에 모두 포함된 종목은 한미반도체, 삼양식품, 포스코퓨처엠이다.
향후로도 증시가 꾸준히 상승한다면 공매도 잔액과 신용잔액은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현재의 공매도 수준만 하더라도 이미 지난해 3월 저점에 비해 5배 이상 급팽창한 점을 고려하면 급등주에 대한 공격적인 매수는 점점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시세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노련한 공매도 세력들에 맞서 싸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매도만큼 주가 급락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위험 요소는 신용융자 잔액이다. 주가 상승 속도가 가파를수록 더 비싼 값에 주식을 매수하지 못해 안달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기 마련이고, 남의 돈을 빌려서라도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투자자들 역시 늘어나기 마련이다. 2024년 12월 중순만 하더라도 신용융자 규모는 15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1년 6개월 동안 신용융자가 22조원 이상 불어난 점도 눈여겨볼 대목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