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OO’을 보라 [김범준의 세상물정]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

2026-06-22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난 글에서 마크 뷰캐넌의 <우발과 패턴>을 소개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같은 저자가 2007년 출판한 <사회적 원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흥미로운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사회적 원자’의 관점을 소개한다. 사람은 물리학의 원자와는 다른 존재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사람을 마치 물리학의 원자처럼 단순한 규칙을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가정하면 전체 집단이 보여주는 거시적인 패턴과 통계적인 규칙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마스 셸링의 인종 분리 연구를 소개하며 책이 시작한다. 셸링의 모형은 정말 단순하다. 바둑판같은 사각 격자 위에 흑인과 백인 여럿을 아무 곳에나 마구 흩뿌린 상태가 셸링 모형의 출발점이다. 격자점에 놓인 사람은 이웃의 70% 이상이 자신과 다른 인종이면 불편함을 느껴 다른 위치로 이주한다고 가정한다. 이 단순한 규칙을 반복해 적용하면 흑백의 거주지가 명확히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백인이 집주변 이웃 중 30% 정도만 같은 백인일 때 심리적인 불편함을 느낀다고 해서 이 백인이 인종차별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웃집 인종에 대해 약간의 편향만 있어도 거주지가 자연스럽게 인종에 따라 나뉜다는 것을 보여 큰 주목을 받은 연구다. 책의 저자 마크 뷰캐넌은 사회현상의 이해에 셸링의 거주지 분리 모형의 관점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바로, 겉보기에 복잡한 사회현상도 얼마든지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구성원 각자가 자유의지를 따라 다르게 행동해도 전체는 명확한 패턴을 보여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인종차별 의식이 거의 없는 다수가 각자의 거주지를 자유의지로 선택해도 결국은 인종에 따른 명확한 거주지 분리가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책 1장의 제목은 “사람이 아니라 패턴을 보라”다. 우리말 속담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가 떠오르는 제목이다. 멀리서 본 커다란 숲을 화폭에 담는 화가가 있다. 화폭에 돋보기를 들이대고는 나무 하나가 가지고 있는 모든 나뭇가지와 모든 나뭇잎을 빠짐없이 일일이 그려 넣는 방식으로 힘들게 그림을 완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전체 숲은 고사하고 나무 한 그루 그림도 완성하기 어렵다. 게다가 돋보기 들이대고 나뭇잎 하나하나 살피는 감상자도 없다. 여럿이 많이 모이면 우리의 관심은 하나하나의 세밀한 모습이 아니라 전체의 큰 패턴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기 때문이다. 숲은 물론 여러 나무가 모인 것이지만 나무가 아닌 숲이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이 된다. 멀리서 본 숲을 아름답게 표현해 제대로 보여주려면 나무 하나하나는 대충 그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사회적 원자’의 관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나무 하나하나는 대충 그리되 이렇게 괴발개발 그린 나무가 다른 나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사회적 원자의 방법론이다. 20세기 나치 독일의 집단적 광기, 평범한 이들이 주어진 역할에 따라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짐바르도의 죄수-간수 실험, 딱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형성되는 자발적인 보행자 흐름의 패턴 등이 사회적 원자의 관점을 적용해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이유는 탄소 원자가 빛나서가 아니다. 이들이 특정한 패턴으로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원자인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온갖 사회현상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사회적 원자의 관점을 적용해 이해할 수 있는 재밌는 현상이 많다. 마크 뷰캐넌이 들려주는 부다페스트 버스 얘기도 그런 현상이다. 만원 버스 뒤에는 텅 빈 버스가 곧바로 올 때가 많고 차고지에서 버스가 일정한 배차간격으로 출발해도 여러 버스가 몰려서 연이어 도착하는 정류장이 생긴다. 데라다 도라히코의 수필집 <어느 물리학자의 일상>의 단편 <전차 혼잡에 대하여>에서도 소개된 익숙한 현상이다. 어쩌다 시간이 지체된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곳에서는 더 많은 승객을 태우게 되어서 다음 정류장 도착 시간은 더 지체된다. 어쩌다 늦어진 버스는 점점 늦어지면서 만원 버스가 된다. 지체된 버스 뒤에 오는 버스는 거꾸로다. 앞 차가 많은 승객을 태우고 갔으니 기다리는 승객이 적어서 정차 시간이 짧아지고 그래서 또 그다음 정류장에 더 일찍 도착해 더 적은 수의 승객을 태운다. 결국 만원 버스 뒤에는 텅 빈 버스가 곧이어 도착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뒤차가 앞차를 앞질러 가는 것을 허락하면 된다. 만원 버스가 멈춰 선 정류장의 다음 정류장에는 만원 버스를 앞지른 텅 빈 버스가 먼저 도착해 혼잡한 버스가 더 혼잡해지는 늘어나는 되먹임 효과를 없앤다. 부다페스트의 만원 버스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뿐 아니라 그 해결 방법도 사회적 원자의 관점으로 쉽게 답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무한한 지성을 가진 인간이 이 세상 모든 정보를 아무런 제한 없이 활용해서 매 순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고전 경제학의 제한 없는 합리성(unbounded rationality) 가정이다. 말하자면 인간을 아이큐 무한대인 ‘무한 똑똑이’로 가정하는 셈이다. 이렇게 가정해야 수학적으로 엄밀한 답을 구할 수 있어서 경제학 분야에서 널리 이용하는 표준적인 가정이다. 물론 현실의 우리는 무한 똑똑이가 아니다. 경제학의 제한 없는 합리성 가정을 저자가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가정이 현실의 인간을 결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정보만을 이용할 수 있을 뿐이며 간혹 비합리적인 선택도 하는 현실의 우리는 무한 똑똑이가 아니다. 내 생각도 저자와 같다. 기존의 연구 방법으로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현실이 아니라 연구 방법을 바꿀 일이다. 새로운 이론과 연구 방법의 아이디어가 우후죽순처럼 연이어 등장하고, 이들 중 다수가 반증의 체에 걸러져 폐기되어 사라지는 과정이 이어지는 것이 과학의 모습이다. 연구 방법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실만 바라보겠다는 과학자가 있다면 스스로에게도 손해다. 자신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세상이 저 앞에 펼쳐져 있는데, 눈 질끈 감고 자신이 서 있는 좁은 장소에 계속 머물겠다고 우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당신 눈에 세상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면 망치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손에 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사를 돌리려면 망치가 아닌 드라이버를 잡을 일이다. 제한 없는 합리성 가정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포기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릴 이유가 없다. 연구의 가정이 세상과 괴리되면 가정을 바꿀 일이다.

사회적 원자의 관점을 택해 사회현상의 이해에 다가서는 학문 분야인 사회물리학에서 묘사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경제학의 무한 똑똑이 가정에 비하면 사회적 원자로서의 인간은 무척이나 단순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이다. 제한된 정보에 기반해서 단순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인간, 하지만 자신이 택한 행위의 결과를 학습해서 다음에는 변화하고 적응하는 인간이 사회적 원자로서의 인간이다. 저자는 “사람은 이성적인 계산기도, 교활한 도박사도 아니다. 우리는 적응적인 기회주의자”라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무한한 지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 헛똑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재밌는 실험 결과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야구공과 야구방망이 가격의 합이 11만 원인데, 야구방망이가 야구공보다 10만 원 더 비싸다면 각각의 가격은 얼마일까? 야구방망이가 10만 원, 야구공이 1만 원이라고 답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기를. 10만 원과 1만 원의 차이는 9만 원이어서 문제에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다. 정답은 10만 5천 원과 5천 원이다. 당신뿐 아니다. 똑똑한 미국 명문대 학생 절반이 틀리는 문제다. 우리는 크고 작은 것이 함께 있을 때 직관적으로 빠르게 둘로 나누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때 꼼꼼하게 연립방정식을 풀어 계산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별로 똑똑하지 않다. 아니, 우리는 더 똑똑하게 행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도 똑똑함을 포기하고 빠른 직관을 택하는 어리숙한 존재다.

당신뿐 아니라 모두가 헛똑똑이라는 것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면 이를 이용해 작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시장에서 2만 원어치 과일을 사면서 1만 원을 깎기는 쉽지 않다. 다른 가게 가서 알아보라고 과일 가게 주인이 벌컥 화를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전셋집 잔금 1억 원을 치르면서 1만 원을 교통비로 깎아달라고 하면 상대방이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내 손안 1만 원은 과일값을 깎든 전세금을 깎든 똑같은 액수인데 우리는 같은 액수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다음에 큰돈 낼 때는 마지막에 꼭 1만 원 깎아보시길. 만 원 깎고는 껌 한 통 값 천 원도 또 깎아보시길. 물론, 쪼잔한 사람으로 여겨져 발생하는 사회적 평판의 감소분은 잊지 마시고.

일단 해보고, 그 결과를 반영해 다음의 선택을 적응적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익숙한 모습이다. 적응하는 인간을 보여주는 재밌는 문제가 책에 소개되어 있다. 바로 브라이언 아서가 제안하고 분석한 ‘엘 파롤 문제’다. 엘 파롤 바에 갔는데 사람이 많으면 시끄럽고 번잡해서 단골손님 모두는 방문자가 적을 때 이곳에 오고 싶어 한다. 어떤 특정 전략 A가 있어서 A 전략을 택하면 엘 파롤 바에 사람이 적을 때 갈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A 전략이 성공적이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A 전략을 택하고 엘 파롤 바는 A 전략을 택한 많은 방문자로 북적이게 된다. 전략의 성공이 곧이어 그 전략의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문제가 흥미로운 이유다. 엘 파롤 문제에는 최적 전략이 불가능하다. 새로운 전략이 등장하고, 성공하고, 쇠락하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매일 매일의 엘 파롤 방문자 숫자는 큰 폭의 변동성을 보여준다. 브라이언 아서는 마찬가지로 적응하는 사회적 원자의 관점을 적용한 주식시장 모형도 연구했다. 이 모형에서 참가자 숫자가 적을 때 주식시장은 안정적이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수익을 내려는 이들이 예측이 가능한 주식시장에 참여하면 늘어난 참가자로 말미암아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이 커진다.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시장을 떠나는 참가자로 다시 주식시장은 예측 가능성을 회복하게 된다. 결국 이 모형의 주식시장은 예측 가능과 예측 불가능의 경계로 끊임없이 다가서면서 큰 폭의 변동성을 보여주게 된다. 간혹 폭등과 폭락이 일어나며 큰 변동성을 보여주는 현실 주식시장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모형이다.

/사이언스북스

사회적 원자로서의 인간은 또 흉내쟁이다. 처음 방문한 도시의 식당가에서 밥 먹을 식당을 고를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떠올려보라. 아무런 맛집 정보가 없을 때 우리는 텅 빈 식당이 아닌 북적이는 식당을 고른다. 다른 이를 따라 하는 흉내쟁이 인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명 사례가 168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 사건이다. 많은 사람이 튤립에 투자해서 가격이 폭등하고 큰 이익을 얻은 사람이 늘자 더 많은 사람이 튤립 투자에 뛰어들게 된다. 결국 튤립 시장의 거품이 터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큰 고통을 겪었다. 거품이 터지기 전 튤립 한 송이의 가격이 무려 버터 2톤, 돼지 8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가격까지 치솟은 튤립 투자에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은 우리가 다른 이를 쉽게 따라 하는 흉내쟁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지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누가 봐도 명백히 길이가 다른 두 선을 보여주면서 둘 중 더 긴 선을 고르도록 하는 실험이다. 이 실험을 진행할 때 미리 섭외한 몇 참가자에게 짧은 선을 더 긴 선이라고 강하게 우기라고 부탁하면 일반 참가자도 이들의 오답을 따라서 엉뚱한 답을 얘기하게 된다. 명백한 진실에 눈을 질끈 감고는 다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이후 실험 참가자의 뇌 MRI 영상을 살펴본 다른 연구는 엉뚱한 선을 고른 이들이 오답인 줄 알면서 따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속마음을 감추고 다수를 따라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들의 뇌는 짧은 선을 긴 선으로 인식했다는 얘기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지 보여주는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다.

사회적 원자인 우리는 협력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2004년 쓰나미로 수십만의 사람이 사망하고 엄청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전 세계 많은 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만날 리 없는 피해 지역 사람을 위해 130억 달러를 모금했다. 이런 대규모의 협력은 우리 인간의 독특한 특성이다. 협력하는 인간인 우리는 또 배신자 색출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를 보여주는 재밌는 실험이 있다. 종이 카드의 앞면에 만약 홀수가 적혀있으면 뒷면에는 반드시 알파벳 자음이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을 어긴 카드가 있는지 알아내려면 (1), (2), (B), (A)라고 적힌 면이 보이는 네 장의 카드 중 어떤 카드를 뒤집어 봐야 할까? 이 질문에 잘못된 오답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정답은 첫 번째와 네 번째 카드). 자, 두 번째 문제다. 청소한 사람만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규칙을 어긴 사람이 있는지 알아내려면 (과자 먹음), (과자 안 먹음), (청소 함), (청소 안 함)이라고 적힌 네 장의 카드 중 어떤 것을 뒤집어 봐야 할까? 두 번째 문제의 정답을 맞힌 이가 훨씬 더 많다(정답은 첫 번째와 네 번째 카드로 처음 문제와 같다). 두 상황의 논리 구조가 정확히 같은데도 우리는 홀수/짝수와 자음/모음 얘기는 어려워하고 규칙 어긴 사람을 찾는 일은 너무나도 쉽게 해낸다. 규칙을 어긴 사람을 찾아내 적절히 처벌하는 행위가 집단 내 협력의 정도를 높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구성원 사이의 협력이 잘 이루어진 집단이 다른 집단과의 경쟁을 이기고 더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숫자에는 약해도 배신자 색출에는 강한 이유다.

사회적 원자인 인간이 얼마나 쉽게 집단주의에 빠지는지 보여주는 무자페르 셰리프의 연구가 있다. 12세 정도의 소년 22명을 임의로 두 팀으로 나눈 다음 단체 활동을 통해 팀 내의 소속감을 늘려가면 각 팀은 상대 팀이 자신보다 열등하며 비열하다고 확신해 적개심을 갖게 된다는 것을 보인 연구다. 처음 팀을 구성할 때 대동소이한 동년배 집단을 마구잡이로 두 팀으로 나눴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 악셀로드와 해먼드는 간단한 모형을 이용해 같은 표지의 사람하고만 협력하는 전략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표지는 임의적이어서 우리를 저들과 구별할 수만 있다며 어떤 것도 두 집단을 가르는 표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현실도 그렇다. 피부색, 출신 지역, 종교 등의 차이가 표지로 작동해 편견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형성된 편견은 집단 내부를 단결시켜 생명력을 이어간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편견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이런 편견을 바꾸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이유다. 편견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진실을 반영해서가 아니다. 같은 편견을 가진 이들의 결속력이 편견이 강고하게 자리 잡는 이유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 황당한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도 사회도 자연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저자는 사회적 원자의 관점을 적용해 현실을 이해하자고 우리를 설득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 소통하며 협력하고 경쟁하는 존재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로부터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한 똑똑이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다. 괴발개발 그린 나무를 모아 숲을 그리는 방법이 바로 사회적 원자의 관점이다. 개인이 아니라 전체 패턴으로 관심을 옮기자.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이어질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복잡한 세상을 사회적 원자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다른 설명 방식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2. ‘예측’은 무슨 뜻인가요? 예측의 여러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3. 사회적 원자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현상과 설명할 수 없는 사회현상의 경계는 어떤 것일까요?

4. 책에서 소개한 인간 비합리성의 다른 예를 들려주세요.

5.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항상 작동할까요?

6. 패턴의 결정론적 성격과 개인의 자유의지는 양립 가능할까요?

7. 과학의 발전사는 인간이 특별하지 않다는 깨달음의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미래에 결국 오류로 밝혀질 인간의 특별함이 아직 남아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8. 사회과학에도 뉴턴이 등장할까요? 사회현상을 기술하는 F=ma와 같은 간단한 방정식이 미래에 밝혀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