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산불·멸종?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마크 뷰캐넌의 ‘우발과 패턴’
복잡계 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이 2000년 영어로 출판한 책의 제목은 <Ubiquity>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2014년 <우발과 패턴>의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지진, 산불, 멸종, 증시 폭락, 과학 혁명 등, 세상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격변을 설명하는 통계물리학의 관점을 소개한 좋은 책이다. 마크 뷰캐넌은 모두 네 권의 책을 냈다. 큰 활자로 적힌 제목에 이어서 책의 주제를 잘 요약한 부제가 책마다 딸려 있다. 오늘 소개하는 저자의 첫 책 <우발과 패턴>의 전체 제목은 <Ubiquity: The Science of History… or Why the World is Simpler Than We Think>(2000)이고, 21세기 초 빠르게 부상한 연결망 과학을 소개한 <넥서스>의 전체 제목은 <Nexus: Small Worlds and the New Science of Networks>(2002)이다. 물리학의 원자처럼 단순한 시각으로 묘사한 인간의 행동 방식에서 출발해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거시적인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분야인 사회 물리학을 소개한 <사회적 원자>는 <The Social Atom: Why the rich get richer, cheaters get caught, and your neighbor usually looks like you>(2007)이고, 제한 없는 합리성의 관점에 기반한 주류 고전 경제학을 비판하며 복잡계 경제학의 시각을 제안하는 <내일의 경제>는 <Forecast: What Physics, Meteorology, and the Natural Sciences Can Teach Us About Economics>(2013)이다. 조금은 긴 부제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발과 패턴>의 원제목 <Ubiquity>는 ‘모든 곳에 존재’, ‘어디서나 적용되는 보편성’ 정도의 의미여서 한자어로는 ‘편재(遍在)’에 해당한다. 영어 제목 <Ubiquity>를 우리말로 짧게 직역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렇다고 한자어인 <편재>나 <보편>을 제목으로 하면 철학이나 종교 서적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직역과 다른 우리말 제목을 고른 출판사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번역 책의 첫 제목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영어책의 부제 일부를 직역한 것이지만, 2014년의 책 제목 <우발과 패턴>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잘 담은 좋은 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모순되는 듯 보이는 두 글자의 두 개념 ‘우발’과 ‘패턴’을 나란히 배치해 독자로 하여금 둘 사이 충돌의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좋은 제목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와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도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독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제목을 가진 멋진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온갖 사건이 연이어 우발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사건 발생의 우발성이 세상이 보여주는 거시적 패턴의 이해 가능성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통계물리학에는 ‘보편성(universa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거시적인 패턴을 만들어낼 때 세부적인 요소의 차이는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며, 얼핏 정말 달라 보이는 여러 현상이 정확히 같은 보편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것을 일컫는 개념이다. 영어 제목 <Ubiquity>는 지진, 산불, 멸종, 폭락 등 제각각의 격변 현상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통계물리학의 ‘보편성’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통계물리학이 알려주는 보편성의 관점이 세상의 수많은 현상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 즉 ‘보편성의 편재’의 뜻마저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세상은 정말 복잡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이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단순할 수 있다.
1914년 6월 28일 맑은 여름날, 한 자동차가 길을 잃고 큰길에서 벗어나 어쩌다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 자동차를 우연히 마주친 한 청년이 차에 탄 사람을 권총으로 살해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간혹 일어날 법한 안타깝지만 아주 드물지는 않은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청년은 세르비아 테러조직 ‘검은 손’의 단원이었고 총격으로 사망한 이들이 바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였다. 곧이어 오스트리아는 이 암살 사건을 빌미로 세르비아를 침공하고 세르비아 보호를 명목으로 러시아가 참전한다. 여러 국가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이어져 사건 발생 후 단 30일 만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해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저자는 황태자 부부의 우연한 암살이 끔찍한 세계 대전이 일어난 ‘제일 원인’이라고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어쩌면 대공 부부가 탄 자동차 운전사의 실수가 세계 대전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날 운전사가 실수한 이유가 그 전날 오랜 친구와 우연히 만나 과음해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운전사가 친구를 만난 것이 원인일까? 아니면 둘이 만난 술집에서 알코올 함량이 적은 맥주가 마침 딱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독한 위스키를 마실 수밖에 없었으니 미리 맥주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술집 주인이 세계 대전을 일으킨 원흉일까? 저자는 세계 대전과 같은 커다란 격변을 일으킨 가장 시초가 된 ‘제일 원인’을 딱 하나 지목하는 것은 그리 타당한 설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운전사의 실수나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우연한 사망은 진정한 제일 원인이 아닐 수 있다.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갈등과 분쟁으로 유럽 전체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고 운전사의 실수와 황태자의 암살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던 세계 대전을 촉발한 우발적 사건이라는 입장이다.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 다음 되짚어보면 우리는 항상 그 사건을 촉발한 어떤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그렇게 찾아낸 원인이 격변을 일으킨 진정한 원인이라 할 수는 없다. A가 B를 촉발했다고 해서 B의 제일 원인으로 A를 단정해 지목할 수는 없다.
책의 1장은 위에서 소개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지진, 산불, 주가 폭락, 대규모 멸종 등 여러 격변 현상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러한 격변 현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고의 틀로서 1987년 물리학자 페르 박, 차오 탕, 커트 위젠펠트가 제안한 모래 더미 게임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속한 통계물리학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이 모형(세 사람의 이름 앞 자를 따서 BTW 모형이라고도 부른다)은 정말 너무나도 단순하다.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책상 위에서 손으로 움켜쥔 모래알을 조금씩 계속 떨어뜨리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모래알을 떨어뜨리다 보면 책상 위에 작은 모래 언덕이 만들어진다. 모래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계속 이어가면 모래 언덕은 점점 높아지며 경사가 가팔라진다. 결국 아슬아슬한 가파른 경사를 가진 모래 언덕에 작은 모래알 하나가 톡 떨어진다. 경사가 급한 곳에 떨어진 이 모래알은 아래로 미끄러져 움직이면서 다른 모래알 하나를 밀어내고 이렇게 밀려난 모래알도 이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한다. 모래알 둘이 함께 아래로 움직이며 다음에는 더 많은 모래알을 연이어 움직인다. 결국 점점 굴러 내려오는 모래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늘어나면서 현실의 산사태를 닮은 모래 사태가 모래 더미 게임 모형에서 발생한다. 한번 커다란 모래 사태가 모래 더미의 세상을 휩쓸고 지나가면 모래 언덕의 경사는 다시 완만해져서 다음의 격변적인 모래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또다시 모래 언덕의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눈감고 모래알만 계속 떨어뜨리기만 했는데도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모래 언덕의 경사각이 어떤 임계값보다 작으면 경사각은 저절로 커지고, 경사각이 임계값보다 커지면 모래 사태가 일어나 자연스럽게 경사각이 줄어든다. 크면 줄고 작으면 늘어 모래 더미 게임의 모래 언덕의 경사각은 어떤 특정 임계값을 향해 끊임없이 계속 저절로 다가서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모래 더미가 도달하게 된 최종 상태가 통계물리학의 임계상태에 해당한다. 임계상태에 있는 모래 더미에는 곧이어 떨어진 작은 모래알 하나로 대규모의 모래 사태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듯이 물질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것을 상전이라고 한다. 상전이가 일어나고 있는 물질은 임계상태에 있다고 하며 임계상태에서 관찰되는 여러 현상을 통틀어 임계현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막대자석 안에는 여러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들 원자는 하나하나 스핀이라는 양자역학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스핀은 아주 작은 원자 크기의 막대자석처럼 자기장을 만들어낸다. 아주 온도가 낮을 때에는 막대자석 안 원자가 제각각 가지고 있는 스핀은 하나같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따라서 여러 원자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이 더해져서 막대자석 전체는 큰 자성을 가진 자석이 된다. 온도가 아주 높아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막대자석 안 원자의 스핀 방향이 뒤죽박죽 제각각이 된다. 이때는 스핀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의 방향이 제각각이어서 서로 상쇄되어 막대자석 전체의 자성이 사라지게 된다. 막대자석을 두고 온도를 충분히 높이면 자성이 0이 되고 온도를 충분히 낮추면 0이 아닌 자성을 갖게 된다. 결국 막대자석에는 특정 임계온도가 있어서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자석이 되고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자성이 0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임계온도에 있는 막대자석은 특징적인 임계현상을 보여주게 된다.
막대자석에서 관찰되는 것과 비슷한 임계현상이 모래 더미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가장 중요한 임계현상이 바로 임계점에서는 소위 ‘척도’가 없다는 것이다. 막대자석이나 모래 더미나, 임계점에서는 척도가 없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막대자석 안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여러 스핀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부분의 면적을 생각해 보자. 임계온도보다 충분히 낮은 온도에서는 이 면적은 상당히 커서 전체 자석의 면적과 비슷한 정도가 되어서 잘 정의된 큰 크기가 있다. 임계온도보다 충분히 높은 온도에서는 어떨까? 온도가 아주 높은 상황에서는 스핀 방향이 제각각이다. 따라서 인접 스핀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가 어려워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스핀이 모인 부분의 면적이 아주 작아진다. 온도가 아주 높을 때도 이 부분의 면적은 잘 정의된 작은 크기가 있다. 하지만 임계상태에서는 다르다. 크기의 척도가 없어서 같은 방향의 스핀이 모여있는 부분의 면적은 얼마든지 작을 수도 클 수도 있게 된다. 임계상태에 있는 모래 더미에서 일어나는 모래 사태의 규모도 이와 같다. 척도가 없어서 아주 작은 모래 사태도 가능하지만 얼마든지 커다란 모래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다음에 일어날 모래 사태의 규모가 어느 정도라고 미리 말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막대자석과 모래 더미의 임계현상에는 이처럼 척도가 없다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막대자석이 자성을 잃는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외부에서 누군가가 온도를 정확히 상전이가 일어나는 임계온도에 딱 맞추어야 한다. 즉 막대자석의 임계성은 외부의 누군가가 조절해야 가능하다. 모래 더미의 임계성은 다르다. 그냥 눈감고 모래알만 계속 떨어뜨려도 모래 더미 전체가 저절로 임계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모래 더미가 저절로 도달한 임계성을 ‘자기조직화 임계성(self-organized criticality, SOC)’이라고 한다. ‘자기조직화’는 ‘저절로 짜이는’의 뜻이어서, SOC를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으로 옮기기도 한다.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은 외부의 개입과 누군가의 조정이 없어도 시스템이 저절로 도달하는 임계성이다. 이처럼 막대자석과 모래 더미는 임계성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모래 더미가 보여주는 임계성은 저절로 다가서는 임계성이지만, 막대 자석의 임계성은 누군가가 외부에서 개입해서 미세하기 조절해야 도달할 수 있는 임계성이다. 이 책 <우발과 패턴>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을 딱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을 고르겠다.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이라는 보편적이고 일관적인 관점을 적용해 지진, 산불, 주가 폭락, 멸종 등의 현상을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앞에서 모래 더미 모형을 이용해서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을 설명했다. 산불을 설명하는 복잡계 물리학의 모형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빈 벌판에서 시작하는 산불 모형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A)가끔 나무 씨앗이 날아와 아무 곳에나 떨어져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다. (B)가끔은 번개가 쳐서 나무에 불이 붙고 주변에 불이 번질 나무가 있으면 산불이 퍼져간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A)와 (B)가 산불 모형의 전부다. (A)와 (B)만을 이용해 상상의 벌판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사고 실험을 펼쳐보자. 먼저, 나무가 별로 없는 벌판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까? 어쩌다 친 번개로 나무에 불이 붙어도 주변에 나무가 별로 없으니 금방 불이 꺼진다. 하지만 여전히 씨앗이 날아와서 여기저기 나무가 자라난다. 결국 벌판의 나무 밀도가 충분히 작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나무 밀도가 커진다. 다음에는 나무가 울창한 벌판을 떠올려보자. 번개로 한 나무에 불이 붙으면 주변에 나무가 많으니 불은 널리 번져가게 된다. 많은 나무를 태운 다음에야 산불이 꺼지게 된다. 결국 나무 밀도가 충분히 크면 저절로 나무 밀도가 줄어든다. 결국 나무 밀도가 낮으면 밀도가 저절로 커지고, 나무 밀도가 높으면 밀도가 저절로 줄어든다. 이처럼 나무 밀도는 오르고 내리며 특정한 값을 향해 저절로 끊임없이 다가서게 된다. 산불 모형의 사고 실험 결과에서 ‘나무의 밀도’를 모래 더미의 ‘언덕의 경사’로 바꿔서 다시 읽어보라. 앞에서 소개한 모래 더미 게임과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산불 모형이 저절로 도달한 상태는 모래 더미 모형과 같은 임계상태다. 산불 모형도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을 마찬가지로 보여주며 따라서 산불의 규모도 척도가 없다. 머릿속에서 간단한 사고 실험을 이어갔을 뿐이지만, 단순한 산불 모형은 실제 현실에서 관찰되는 산불이 보여주는 패턴도 잘 설명한다. 현실의 산불 규모도 척도가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컸던 산불보다 몇 배 더 규모가 큰 산불이 당장 내년에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일어날 확률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은 것도 아니다. 역사상 가장 컸던 규모보다 10배 더 큰 규모의 산불이 미래에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근거는 전혀 없다.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결론이다.
<우발과 패턴>에서 소개하는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의 관점이 성립하는 격변의 예는 다양하다. 산불, 지진, 멸종, 주가 폭락과 같은 대규모의 격변 현상이 가진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 모래 더미에서 처음 굴러 내려오기 시작한 작은 모래알 한 알이 대규모 모래 사태를 만들어내고, 처음 불붙은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한 산불이 주변 나무와의 연결을 타고 숲 전체에 파급될 수 있는 것을 떠올려보라. 처음의 작은 변화가 구성 요소 사이의 연결로 얼마든지 멀리 대규모로 전파되어 엄청난 크기의 격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격변 현상이 가진 공통점이다. 그리 대단치 않아 보였던 작은 회사의 금융 위기가 여러 회사 사이의 연결로 파급되어 주식 시장 전체의 폭락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였던 한 생명종의 멸종은 이 종과 연결된 다른 종의 멸종으로 파급되면서 멸종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최종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대멸종이 일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모든 대규모 격변에서 제일 원인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큰 산불이 발생한 다음 되짚어보면 당연히 처음 불붙은 나무 한 그루를 찾을 수 있고, 대규모 모래 사태가 일어난 다음 꼼꼼히 그 과정을 되돌아보면 처음 모래 언덕에 떨어져 모래 사태를 촉발한 모래 한 알을 당연히 지목할 수 있다. 마찬가지다. 제 1차 대전이 발발한 다음에 되짚어보면 세계 대전을 촉발한 한 사건을 찾아 지목할 수도 있다. 처음 불붙은 나무와 처음 떨어진 모래알 하나를 아무리 눈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딱히 특별한 무언가를 찾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제 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제일 원인을 지목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처럼 대규모 격변의 제일 원인으로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딱 하나의 구성 요소를 지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책의 중요한 결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가끔 대규모의 격변이 일어난다.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일어나고, 대규모 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대규모 주가 폭락이 갑자기 일어나 많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고, 송전 용량이 크지 않은 딱히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송전선이 우연히 끊어져 그 결과로 대규모의 정전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규모의 격변 현상을 책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이라는 통계물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먼저, 구성 요소의 특성이 아니라 연결의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범인은 처음 떨어진 평범한 모래알이나 처음 불붙은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임계성 그 자체다. 하지만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이 가지고 있는 ‘저절로 짜이는’이라는 특성은 우리로 하여금 대규모의 재난을 미리 예측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예측은 어려워도 대비는 할 수 있다. 지진 현상이 보여주는 척도 없는 지진 규모 패턴에 대한 이해는 건물의 내진 설계 기준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대규모의 금융 위기의 발생도 예측은 어려워도 미리미리 적절한 규제와 기업 사이 연결의 변화로 대비할 수 있다. 우발을 막기는 어렵지만 패턴은 이해해 이용할 수 있다. 이 복잡한 세상에는 우발과 패턴이 동시에 존재한다. 세상은 복잡해도 이해가 가능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책의 영어 원제목은 <Ubiquity>입니다. <우발과 패턴>이 아닌 다른 우리말 책 제목을 제안해 보세요.
2. <우발과 패턴>에서 소개하는 새로운 분야의 과학과 기존의 과학은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
3. 저자는 지진 하나의 규모와 발생시기는 예측하지 못하지만, 지진 발생의 통계적인 패턴은 놀랍도록 단순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동의하시나요? '예측'의 의미도 함께 이야기 나눠보죠.
4. 모래 더미 게임이라는 아주 단순한 모형으로도 어떻게 현실의 지진 현상의 패턴을 이해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5.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중요한 개념으로는 평형과 비평형, 임계상태, 자기조직화, 얼어붙은 우연, 척도 없음, 역사의 물리학 등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설명해 보세요.
6. 책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질적으로도 다른 현상들이 가진 놀라운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저자가 산불, 지진, 주가 폭락, 세계 대전, 생물의 멸종 등이 가진 공통점으로 강조하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