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의 ‘형태의 미학’ [강태운의 빛과 그림자]

2026-05-29     강태운 미술칼럼니스트
'자화상' 1998년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2023)는 파블로 피카소가 되고 싶었다. 아니, 피카소의 구성, 앙리 마티스의 색채, 빈센트 반 고흐의 붓질을 동시에 마음에 품었다. 젊은 시절의 보테로는 모든 것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싶어 했다. 마음은 당장 파리로 달려가 아방가르드 예술가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예술의 중심지 유럽에 비하면 콜롬비아는 변방 그 자체였다. 우선 고국을 떠나야 했다.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행상인이었는데, 보테로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집안은 급격히 기울었고, 어머니는 재봉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삼촌 호아킨은 어린 보테로를 투우 학교에 보냈다. 남자다운 직업, 돈벌이가 되는 삶을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보테로는 투우 자체보다 “투우의 이미지”에 더 매혹되었다. 피투성이 경기장보다 망토의 색, 황소의 몸집, 군중의 과장된 몸짓에 시선이 갔다. 결국 보테로는 투우사의 검이 아니라 붓을 택했다.

메데인 같은 도시에서 화가를 꿈꾸는 건 안정된 삶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보테로 자신도 “예술가”라는 직업이 당시 콜롬비아 사회에서는 거의 이해받지 못했다고 여러 번 회고했다. 오늘날과 달리 당시 메데인은 매우 보수적이고 가톨릭적인 지방 도시였고, 예술은 삶의 중심과 거리가 멀었다. 그 시기의 콜롬비아에는 보테로가 갈망하던 “회화의 역사” 자체가 거의 없었다.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한 젊은 보테로는 다른 어떤 화가의 작품도 원작으로 본 적이 없었다. 오직 책과 복제화에서 회화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피카소의 <거울 앞의 여인> 복제품을 본 뒤 보테로는 그 감동을 떨쳐낼 수 없었다. 목표가 뚜렷해질수록, 거장들의 그림을 단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채 혼자 그림을 익혀야 했던 변방의 젊은 화가에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었다. 앞서간 선배 예술가들처럼 보테로 역시 고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1952년 보테로는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제9회 콜롬비아 살롱에서 2등상을 수상했다.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젊은 화가는 하룻밤 사이 보고타의 예술가와 지식인 사회에 이름을 알렸고, 대양 여객선의 운임을 치르고도 남을 만큼의 상금을 손에 넣었다. 그해, 보테로는 유럽행 배에 몸을 실었다.

보테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거쳐 마드리드로 갔다.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산페르난도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이 고집스러운 학생은 학교 수업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는 평생 존경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모사했고, 무엇보다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을 발견했다.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년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시녀들'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파리에는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미술 거장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수많은 현대미술 컬렉션이 존재했다. 하지만 보테로는 화가들의 작업실이나 최신 미술 경향보다, 루브르 박물관과 파리의 오래된 서점에서 마주한 과거 거장들의 작품에 자신이 더 깊이 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경로를 바꿔 피렌체로 향했고, 그곳에서 거의 3년 동안 머물렀다.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그의 부인의 초상'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473~1475년
'산 로마노의 전투' 파올로 우첼로, 1436~1440년

거의 4년간 유럽에 머문 보테로는 미술관을 떠돌며 옛 거장들의 기법과 회화의 구조를 익혔다. 당시 유럽 현대미술은 추상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보테로는 오히려 15세기 르네상스 회화 속 “볼륨”과 “육체의 존재감”에 사로잡혔다. 특히 미술사가 버나드 베런슨이 말한 “촉각적 가치(tactile values)” 개념은 보테로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보테로가 본보기로 삼은 화가는 누구보다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우첼로였다. 그는 그림 속 인물이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회화를 원했다.

보테로는 유럽에 가서 현대미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의 오래된 회화 안에서 자기 언어를 발견한 셈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가 그렇게까지 유럽을 동경했으면서도 결국 만들어낸 세계는 아주 콜롬비아적이라는 사실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필두로 한 르네상스 회화의 구조감, 벨라스케스의 기념비적 공간, 파올로 우첼로의 볼륨 감각 위에 그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육체성과 물질감이 살아 숨 쉬는 세계를 구축했다.

보테로의 그림 속 세계는 단순히 “뚱뚱한 사람들”의 세계가 아니다. 그 안에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감각이 살아 있다. 그 지역 축제의 화려함, 과장된 몸짓의 군중, 과일이 넘쳐나는 시장, 음악과 동물이 어우러진 거리의 생동감이 화면 전체를 채운다. 가난과 폭력의 현실 속에서도 생生의 희열과 물질적 존재감이 강렬하게 살아 있던 그 세계의 풍경이었다.

'만돌린이 있는 정물', 1957년

<만돌린이 있는 정물>을 제작하면서 보테로는 크고 육중한 악기의 구멍을 극도로 작게 묘사하는 식으로 형태를 변형시켰다. 이 '불균형'은 대상의 감각적 현존을 부각시킬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제시해 준 비법이라는 점에서 보테로에게 계시와도 같았다. 이 단순한 기법은 갑자기 평범한 악기에 독특한 카리스마와 풍부한 물질성을 부여했다. 이런 일련의 발견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뿌리에서 자라난 것이었다.

보테로는 콜롬비아를 버리고 유럽을 받아들인 화가가 아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파리에서 성장했다면, 추상미술의 흐름 속으로 강하게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유럽 미술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가늘고 쇠약한 인간 형상이 상징하듯, 불안과 실존적 고독 속에서 인간의 취약함과 결핍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테로가 직접 살아낸 경험이 아니었다. 보테로는 콜롬비아라는 토양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었던 감각을 찾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고, 역설적으로 그 유럽 체험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자기 고향에서 경험한 육체의 충만함과 삶의 감각을 독창적인 회화 언어로 구현할 수 있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기원전 2만5000년~2만8000년경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선사 시대 조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이후로 서양미술은 그리스의 이상적 비례와 근대의 사실성이 지배적이었다. 몸의 부피를 비현실적으로 증폭시키는 전통은 사실상 미술사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현대 사회는 몸을 끊임없이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지나치게 커진 몸은 건강하지 못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

현대미술은 불안과 고독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해체하거나 왜곡해 왔지만, 몸의 부피 자체를 긍정적으로 확장한 경우는 드물다. 근거도 없는 정상성에 대한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사실 사람의 판단력에 끝까지 집요하게 끼어드는 것이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는 합리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사람은 끝내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특히 중심부를 향한 콤플렉스는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그런 시대에 보테로는 오히려 부피 자체를 긍정했다.

'얀 반 에이크를 따라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 2006년

보테로는 예술의 중심부였던 유럽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보테로 자신이 개척한 것이기도 하지만, 라틴아메리카는 이미 오랜 식민지 시기 동안 유럽인들의 문화와 뒤섞이며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민속예술을 가지고 있었다. 사표가 되는 선배 화가들의 노력도 한몫했다. 특히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모방하는 대신 멕시코적인 기법의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보테로는 ‘내게 리베라 같은 인물은 늘 최고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보테로에게 유럽 여행은 고향을 버리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과 고향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는 변방을 떠나 중심으로 향했지만, 결국 그 긴 여정 끝에서 발견한 것은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라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감각이었다. 떠남은 단순히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만남을 통과한 뒤, 변화된 자신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다.

《페르난도 보테로: 형태의 미학》 전시가 오는 8월 30일(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콜롬비아 출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는 형태와 양감을 강조하여 미술사에서 유례없는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로 이번 전시는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한다. 과장된 듯하면서도 균형 잡힌 풍만한 형태, 유머와 아이러니가 어우러진 화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정서가 깃든 색채는 보테로만의 확고한 조형 언어를 형성하며, 관람객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 본 글은 『보테로』(마리아나 한슈타인), 전시 보도자료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