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2026-03-09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오늘 소개할 책 <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의 저자 조앤 베이커는 영국 서쪽 끝 바닷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몰 때 잠깐 해 위로 녹색 빛이 드러나는 드문 현상인 녹색 광선을 가슴 설레며 기다렸고, 당시 막 시작한 영국 컬러 TV 방송으로 바이킹호가 보내준 화성 표면의 모습을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직접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자연 현상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고, TV 방송을 보며 과학자의 꿈을 키운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 묘하게 나와 겹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와 나는 거의 동년배다. 직접 눈으로 본 밤하늘의 별과 달의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한 아름다움에 경탄했던 어린 나는 당시 막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컬러 TV 방송으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곧, 과학에 코가 꿰었다.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

대학에 진학한 저자는 딱딱한 수식 기호와 차가운 전문 용어로 점철된 수업에서 해소하기 어려운 갈증을 느낀다. 고백하자면 물리학과 수업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가르치고 배워야 할 내용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렇다. 칠판 위를 질주하며 빠르게 이어지는 수식의 나열을 보면서 젊은 물리학도는 고개를 갸웃한다. 저 수식으로 표현되는 물리학이 눈으로 직접 본 자연과 정말 같은 것인지, 도대체 나의 삶과 저 수식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 광막한 우주에서 티끌처럼 작은 우리 인간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리 눈 부릅떠 칠판을 노려봐도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한다.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후 연구의 최전선에서 물러나 과학 학술지의 편집자로 일하며 자신이 느꼈던 갈증을 해소하고자 했다. 이 책 <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가 그 성과다.

지웅배 교수는 천문학자는 불멍도, 별멍도 아닌, 숫자멍을 한다고 말한다. 천문학 연구자 중 직접 눈을 천체 망원경에 대고 연구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숫자로 표현된 정량적인 데이터가 연구의 주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천체가 숫자로 바뀌고 나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어려서 작은 천체 망원경으로 달과 행성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이 지금도 또렷하다. 엄청난 해상도로 세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컬러 화보의 목성은, 허접한 망원경으로 직접 눈으로 본 작은 목성의 아름다움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꼭 직접 눈으로 천체 망원경을 보기를 권한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천체의 빛은 도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롭다.

이 책 <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는 과학의 객관성에서 한발 거리를 두고, 우리 선조가 직접 본 밤하늘을 보여준다. 우주 어디서나 원자는 같아서 내몸을 구성하는 탄소 원자는 지금 내 앞에 놓인 나무 탁자의 탄소 원자와 정확히 같다. 둘의 위치를 싹 맞교환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래도 내 몸속 원자가 소중하고 특별한 이유는 내몸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아무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이 광막한 우주가 내게 티끌만큼이라도 관심 있을 리 없지만 이 우주가 내게 소중한 이유는 내 우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담긴 우주의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도 그 일부이기 때문이다.

묘한 책이다. 과학책인 것은 분명한데 독특한 과학책이다. 대부분의 과학책에는 인간의 자리가 없다. 내가 있든 없든 아무 상관 없이 존재하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이 책은 다르다. 이 책의 우주는 우리 인간이 직접 본 우주다. 책은 우리 선조가 본 우주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시간의 순서로 보여준다. 책의 구성도 재밌다. 각 장은 우리에게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 먼 곳으로 대상을 옮겨간다. 그나마 우리 지구와 가까운 해와 달에서 시작해, 태양계의 행성을 거치고, 저자의 눈은 그 너머 먼 우주를 향한다.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공간 여행과 시간 여행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말이다.

책의 1부에서 주로 다뤄지는 것이 달이다. 한 달 정도 되는 인간 여성의 생리 주기를 월경, 달거리, 영어로는 menstruation이라고 한다. 모두 달(moon)에서 비롯한 단어라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여러 문화에서 달은 여성성과 관계가 깊다. 중국 신화의 달도 여성을 상징한다. 먼 옛날 하늘에 떠 있던 10개의 해 중 9개를 하늘의 궁수인 후예가 활로 쏘아 떨어뜨려 옥황상제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 벌로 후예는 아내 창어(우리말로는 항아)와 함께 땅으로 보내져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아간다. 고된 삶에서 벗어나 하늘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후예는 곤륜산의 서왕모에게서 묘약을 얻는다. 둘이 함께 마시면 영생을 얻게 되지만 혼자서 마시면 마신 사람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약이다. 혼자 약을 마신 창어는 하늘로 도망갔다. 달에 비친 그림자가 바로 후예의 아내 창어의 모습이다. 후예는 달을 보며 아내를 그리워한다. 중국과 동아시아의 문화에는 달에 관련된 이야기가 정말 많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술에 취해 양쯔강에 비친 달빛을 향해 손을 뻗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전해지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단연 달의 시인이라 할 사람이다. 깊은 달밤의 정취를 그린 그의 시 靜夜思(정야사)를 아래에 옮겨 본다.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 침상 앞의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땅 위에 내린 서리인가 했네

擧頭望明月(거두망명월): 고개 들어 밝은 달 보고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머리 숙여 고향 그리네

영어단어로 광기를 뜻하는 lunacy의 어원은 달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luna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 정신 이상적 행동을 보여준다는 믿음은 오래전 등장했다. 심지어, 달밤에 사람이 늑대로 변한다는 늑대 인간 이야기도 로마 시대 소설 <시티리콘>에 나온다. 현대인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1985년 조사에서는 응답자 절반 정도가 보름달이 뜨면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답했고, 1995년 조사에서 정신 건강 전문가 80%도 달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2007년 영국에서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 경찰을 더 많이 배치하기도 했다.

달이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던 서기 1세기 무렵 로마의 대 플리니우스는 그 이유를 재밌는 아이디어로 설명했다. 밀물과 썰물이 달의 영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미 당대에 잘 알려져 있었다. 대 플리니우스는 보름달이 뜬 달밤의 이슬이 뇌를 적시고 달의 영향으로 뇌 안의 물과 습기가 ―달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움직여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내듯이― 움직이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적인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생각이다.

내가 어려서 어린이를 위한 축약판 도서로 재밌게 읽은 <영운전>의 저자가 플루타르코스다. 그가 남긴 달에 관련된 재밌는 얘기가 <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에 수록되어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이 땅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달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돌을 매단 줄을 손으로 잡고 수직 방향의 원 궤적을 따라 빙빙 빠르게 돌리면 돌은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돌이 충분히 느려지면 돌은 아래로 떨어진다. 돌은 빨리 움직여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착안해서 플루타르코스는 달도 같은 이유로 지구를 향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육체, 영혼, 그리고 정신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은 플루타르코스는 지구는 육체에, 달은 영혼에, 그리고 태양은 정신에 대응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달로 가고, 이후 영혼으로부터 해방된 정신이 태양으로 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땅에서 달로 영혼이 올라가는 것이 바로 월식이 일어날 때다. 달이 지구를 향해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달이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이라는 그의 설명은 현대 물리학의 이해와 같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또, 월식 때 영혼이 지구에서 달로 간다는 주장으로부터 월식이 지구와 달, 두 천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달과 지구가 함께 찍힌 유명한 사진이 있다. 아폴로 8호 우주인 윌리엄 앤더스가 달에 근접한 궤도로 달 주위를 공전하는 우주선에서 찍은 ‘지구돋이(earthrise)’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이다. 황량하고 척박해 보이는 회색빛의 월면 위에 아름다운 푸른 지구가 보인다. 마치 누가 월면 흑백사진과 지구 컬러 사진을 억지로 합성한 것처럼, 달과 지구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다. 앤더스가 남긴 말이다. “달을 보기 위해 39만 킬로미터를 달려왔지만, 정작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지구였다.” 앤더스 뿐 아니라 많은 우주 비행사가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정말 특별하고 아름답다.

지구돋이 사진을 설명한
저자 조앤 베이커는 이어서 산업과 개발 현장이 될지도 모를 달의 미래를 걱정한다.
달을 보며 토끼를 떠올렸고, 죽고 나서 영혼이 갈 장소가 달이라고 상상했던 이들이 우리 선조다. 이처럼 과거의 달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리 인류의 상상을 보여준다. 저자는 “미래의 달은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우울한 표본이 될 수도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달을 보며 토끼와 선녀를 상상하는 대신, 그곳에 실제로 설치된 굴착기와 공장을 떠올리게 될 미래를 아쉬워한다.

책 1부의 주연이 달이라면 2부의 주인공은 화성이다. 지구에서 맨눈으로 본 화성은 다른 행성과 달리 붉은색을 띤다. 불의 색을 닮아서 한자로는 불의 별, 화성이라고 한다. 화성의 붉은색으로 불과 피를 떠올린 여러 지역의 선조들은 전쟁, 죽음, 폭력을 대표하는 신의 이름을 화성에 붙였다. 화성을 뜻하는 영어단어 Mars는 로마신화에서 전쟁의 신이다.

1877년 밀라노 천문대의 스키아펠리는 화성 표면의 어두운 선들을 보고 이를 협곡, 강 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단어 ‘카날리’라고 불렀다.
이 단어가 영어로 옮겨지면서 canal로 표기되었고, 사람들은 영어단어 canal에서 자연스러운 협곡이나 강이 아니라 누군가가 인공적인 방법으로 건설한 운하를 떠올렸다. 퍼시벌 로웰이 대표적이다. 그는 화성을 장기간 끈기 있게 관측하면서 여러 운하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여러 운하가 그물처럼 화성 표면 전체를 덮고 있는 세밀한 화성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천문학계 주류는 그의 주장을 외면했는데 로웰이 주장하는 운하가 다른 천문학자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화성의 운하는 로웰의 상상의 산물이었음이 밝혀졌다.

로웰의 운하는 우리 모든 과학자에게 중요한 경고를 들려준다고 나는 믿는다. 바로 과도한 자기 확신은 과학의 적이라는 경고다. 과학자도 사람이다. 과도한 확신은 얼마든지 과학자 스스로를 속여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 한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이용해서 특정 결과를 예측했는데 많은 실험 결과가 자신의 이론 예측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상황을 상상해 보자.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자신의 예측에 부합하는 실험 결과가 딱 한 번 발표되면 이 연구자는 드디어 자신의 예측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는 기쁨에 후다닥 논문을 작성할 수도 있다. 부합하지 않은 다른 모든 실험 결과는 아마도 실험의 오류였다고 애써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논문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로웰의 화성 운하는 과학자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아무리 자신의 이론이 멋져 보여도 이론에 대한 최종 판관은 실험과 관측이다. 어떤 것도 믿지 않는 것이 과학이라고 자주 말하는 과학자도 자신의 결과는 의심하지 않으려는 자연스러운 속성을 보여줄 때가 많다. 만약 지금 자신이 바로 그런 상태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드는 과학자라면 로웰의 운하를 떠올릴 일이다. 로웰의 운하를 가슴 깊이 간직해 아무리 내 눈에 운하로 보여도 운하가 아닐 수 있다고, 늘 스스로 경계할 일이다.

/북플레저

화성 운하는 로웰의 흑역사지만 명왕성 예측은 로웰의 성공을 보여준다.
천왕성의 궤도 이상에서 이론적인 예측을 거쳐 실제로 그 위치에서 해왕성이 발견된 것은 뉴턴 고전역학의 놀라운 성취였다. 로웰은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이상으로부터 명왕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치를 예측했다. 로웰이 예측한 위치 주변에서 클라이드 톰보가 오랜 노력 끝에 결국 명왕성을 발견하게 된다. 명왕성 발견으로 이어진 로웰의 기여가 인정되어서 퍼시벌 로웰의 앞 철자 P와 L을 결합한 기호로 명왕성을 표기하게 되었다. 이 얘기가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이었는데, 책에서 재밌는 뒷얘기를 추가로 들었다. 사실 명왕성의 질량은 너무 작아서 천왕성과 해왕성 궤도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결국 명왕성의 위치를 예측하려 한 로웰의 시도 자체는 아무런 근거가 없고, 따라서 로웰이 예측한 위치에서 톰보가 명왕성을 실제 발견한 것은 우연이다. 나는 로웰과 톰보의 얘기를 듣고 버드나무 가지로 우물 팔 위치를 알려주는 유사 과학을 떠올렸다. 버드나무 가지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뿐이다. 아주 매마른 땅이 아니라면, 물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우물을 깊게 파면 결국 지하에서 물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가뭄 들었을 때의 기우제도 비슷하다.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면 결국 비가 내릴 수밖에. 로웰의 명왕성 위치 예측은 버드나무 가지로 우물 팔 위치를 알려준 셈이지만, 로웰의 얘기를 확신한 톰보는 마치 깊은 우물을 계속 파듯이 지치지 않고 오랜 노력을 계속해 결국 명왕성을 우연히 찾아낸 것이다. 명왕성 발견에 얽힌 얘기와 우물 찾기 얘기에는 물론 차이도 있다. 로웰이 지목한 위치 근방에 명왕성이 실제 있었던 것은 순수한 우연이다. 근방에 명왕성이 없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로웰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다. 운이 좋아서다.

스키아펠리와 로웰은 둘 모두 화성에 지적 문명이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둘이 상상한 화성 문명의 성격은 크게 달랐다. 스키아펠리는 화성인이 집단 사회주의 체제를 이루어서 놀라운 과학과 공학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믿었다. 한편, 로웰은 화성인이 자본주의에 기반한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어 성공했다고 믿었다. 미국인 로웰은 실제로도 이민, 노동조합, 연금, 여성 참정권에 반대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스키아펠리와 로웰은 완전히 다른 이유로 화성이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선조가 없는 토끼를 달에서 본 것처럼, 스키아펠리와 로웰은 화성에서도 없는 토끼를 떠올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자연과 우주에는 우리의 생각과 상상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과거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3부에서 다룬 방대한 주제 중, 1823년 독일 천문학자 하인리히 빌헬름 올베르스가 이야기한 역설을 아래에 소개해 본다. 나무의 밀도가 일정한 광대한 숲을 떠올리고 독자가 이 숲 한 가운데 있다고 상상해 보라.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나무가 보이고, 두 나무 사이의 빈틈으로는 두 나무보다 더 멀리 있는 나무가 연이어 보인다. 끝없이 숲이 펼쳐지니 독자는 어느 방향을 보아도 나무 사이를 뚫고 숲 밖 풍경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다. 만약 우주에서 별의 밀도가 어디서나 균일하고 우주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면 밤하늘은 별빛으로 가득 차서 어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별의 밀도가 균일한 무한한 우주는 어디를 봐도 무한히 밝아야 하는데 현실의 밤하늘은 어둡다. 바로 올베로스의 역설이다.

올베로스 역설에 대한 설명을 제안한 사람 중에는 추리 소설과 공포 소설로 문학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미국 작가 에드거 엘런 포가 있다. <검은 고양이>, <잃어버린 편지>,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은 나도 정말 좋아하는 포의 작품이다. 포는 말년인 1848년 장문의 산문시 <유레카>를 출판한다. 책에서 포는 상상할 수 있는 최대 범위의 공간과 그 범위 안에 존재한다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존재가 우주라고 말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물질과 시공간으로 정의하는 현대 물리학의 우주인 유니버스의 개념과도 유사하다. 포는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빛이 천체들을 떠난 시점의 모습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모든 천체는 오래전에 이미 끝난 과정의 환영이라는 얘기다. 포는 우주의 깊은 어둠 속에 있는 천체는 우리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곳에서 출발한 빛은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에드거 엘런 포가 들려주는 올베르스의 역설에 대한 좋은 설명이다. 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던 에드거 엘런 포의 장편 서사시 <유레카>는 우주에 대한 심오하고 깊은 작가의 사색을 담고 있다. 강한 인상을 받아서 우리말 번역본을 곧바로 주문했다.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 선조들이 본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는 지구에서 출발해 점점 더 먼 우주를 향해 시선을 펼쳐가는 책이다. 강한 인상을 받은 저자의 멋진 문장이 많다.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데 끌리는 이유는, '우울한 하늘빛 속에서 떨며 반짝이는 진주들'처럼 보이는 별들이 '무한하다는 신비로운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슬픔과 고독도 찾아온다. 우리는 결코 그 다른 세계에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 다른 존재들이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의 시선을 받아줄 시선'을 찾는 것이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방정식으로 표현된 수학과 물리 법칙을 실제 우주와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우주의 작동 원리와 특정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사이에 간극이 느껴진다. 마치 책 속 요리법이 실제 음식만큼 만족스러울 수 없는 것처럼.

오늘날 인간이 우주에서 실제로 벌이는 일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우주를 놀이터로, 더 나쁘게는 전쟁터로 만들고, 지구에 사는 모두에게 우주가 지닌 문화적 의미를 외면한 채 우주를 훼손하고 있다. ... 우주는 단순히 약탈할 자원의 보고나 물리학의 연구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우주는 인류의 일부이며 인류 역시 우주의 일부다. 우리의 이야기는 하늘에 새겨져 있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미래의 달이 후손들에게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우울한 표본이 될 수도 있다면서, 저자는 자원 획득 등 산업적 이익의 관점으로 달과 화성을 탐사하고 개발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여러분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2. 보름달이 뜨면 사람들의 정신이 이상해진다는 과거의 믿음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것 중에 미래에 오류로 판명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믿음일까요?

3. 요리법은 음식이 아니지만 둘 사이에는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은 이미 태초에 정해진 요리법으로 만들어지는 음식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자연이 만든 음식을 보고 우리가 요리법을 떠올리는 것일까요? 요리법과 음식 중 어떤 것이 우선하는 것일까요?

4. 동양 문명은 일식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지만, 실제 우주가 어떤 모습인지를 설명하는 체계적인 모형을 만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 서양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 모형이 오래전에 등장했죠.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요?

5. 책에서 저자는 세계의 복수성에 대한 여러 생경한 문헌을 소개합니다. 읽은 책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인공지능 등의 방법으로 방대한 문헌을 찾지 않았을까요? 과거의 많은 문헌을 학습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문 분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6. 철학자 칸트는 은하의 형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현대에는 이처럼 폭 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학자가 적은 이유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