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사전트’가 보인다 [강태운의 빛과 그림자]
‘화가들의 화가’로 불린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26~1925)는 완벽에 가까운 데생 실력과 인상주의적 붓 터치로 동시대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사전트는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과 의사였던 아버지와 예술 애호가였던 어머니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살았고, 그 덕분에 사전트는 정규 교육 대신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국제적인 감각과 예술적 소양을 길렀다. 그는 역시 한곳에 안주하지 않았고 프랑스, 영국, 미국 등 각지를 돌아다니며 작품 활동을 했다.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다름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세태 속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884년, 사전트는 파리 사교계의 명사였던 피에르 고트로 부인을 그린 <마담 X의 초상>을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다. 과감한 구도와 도발적인 분위기는 큰 파문을 일으켰고, 특히 흘러내린 어깨끈은 대중의 비난을 불러왔다. 사전트는 논란이 된 부분을 수정했지만, 파리에서는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적당한 논란으로 이름을 알리고자 했던 계산이 있었다 해도, 그가 감당해야 했던 비난과 고립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영국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코츠월드라는 마을을 만난다. 영국의 전통가옥과 전원 풍경을 간직한 동화 같은 마을이다. 심신이 지친 사전트는 영국 전원 풍경 속에서 숨을 고른다. 코츠월드의 평화로운 정경과 아름다움은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1885년, 그는 두 소녀가 정원에서 등을 켜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캔버스에 담았다. 작품의 제목은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다.
어슴푸레한 황혼, 두 소녀가 종이 등에 불을 밝히려는 순간은 고작 십여 분 남짓 지속된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그 짧은 틈을 붙드는 일은 두려울 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완성한 화면에는 영롱한 빛이 가득하다. 사전트가 빛과 색채의 미묘한 떨림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준다. 사전트는 1885년 9월부터 11월까지 매일 빛이 완벽한 몇 분 동안만 그림을 그렸다. 무엇이 사전트를 이 힘든 작업에 매진하게 했을까.
어둠은 물리칠 대상이 아니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소녀들은 등에 불을 켠다. 사전트는 아마도 등이 켜지는 장면을 먼저 보고, 나중에 소녀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 주위엔 꽃이 만발해 있었다. 꽃은 하나둘 켜지는 등에 다시 자신을 비춘다.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는 순간, 존재는 선명해진다.
그 순간, 사전트는 자기 이름을 힘주어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영국 해협을 건넌 사전트 역시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이 그림으로 비로소 터널의 끝을 맞이했다. 이 작품은 영국 왕립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에 출품되어 호평을 얻었고, 직후에 테이트 갤러리가 구입했다. 공공 기관이 소장한 그의 첫 작품이었다.
이후 사전트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자리매김한다. 미국의 부유한 후원자들과 영국 귀족들의 초상화 요청을 받아 여러 번 미국과 영국을 오갔다. 그는 인물의 개성과 사회적 위성을 고귀하면서 생동감 있게 포착했다. 유럽과 미국 예술계의 가교역할을 했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더했다. 1893년에 완성한 <로크나우의 애그뉴 부인> 역시 그의 세련된 초상화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한 해 힘든 시련을 겪었다. 어둠은 언제고 찾아온다. 다행히, 어둠에 매몰되지 않고 등을 밝힌 사람들이 있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존재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이 빛나는지, 밝음과 어둠이 맞닿은 자리에서 누가 등을 들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그 작은 불빛은 별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등이 되어 땅을 비춘다. 그 빛은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비춘다. 그 얼굴들을 하나씩 힘주어 부른다.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