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도 차남도 미덥잖다? 코스맥스에 짙은 ‘서성석 회장의 수렴청정’ 그림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이경수 늦깎이 창업에 뒤늦게 승계 이슈… 이병만-병주 줄다리기 속 ‘모권’ 강화 주목
화장품업계 ODM(제조자 개발 생산) 세계 1위라는 코스맥스. 코스맥스를 창업하고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이경수 회장은 서울대학교 약학과 전공으로 제약회사에 입사했다가, 광고회사에서 광고 기획을 맡은 뒤 다시 제약사 마케팅 담당 임원을 지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1946년생으로 46세라는 늦은 나이인 1992년에 창업했기에 최근 코스맥스의 승계 이슈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말 이경수 회장의 장남 이병만과 차남 이병주는 각각 코스맥스 부회장과 지주회사인 코스맥스비티아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코스맥스그룹은 2014년 화장품을 전담하는 코스맥스와 비화장품 성장 사업을 전담하는 지주회사 코스맥스비티아이로 인적 분할했다. 코스맥스비티아이가 코스맥스 지분 27.23%를 보유해 최대 주주로 자리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이 13.37%, 그리고 싱가포르 국부펀드와 정부가 합쳐 11.73%를 들고 있다. 기관 지분이 약 25%로 최대 주주 지분까지 53%를 확보, 주력 기업 코스맥스의 경영권은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코스맥스그룹 경영권을 쥐는 성패는 지주회사 코스맥스비티아이의 지배구조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통상 기업승계라고 하면 부모에서 자녀로 지분을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최근 관찰된 코스맥스비티아이의 지분 구조 변화는 이러한 상식과 비교할 때 아주 낯설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장남 이병만은 19.95, 차남 이병주는 10.5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지분 9.43%를 보유한 코스엠앤엠은 차남 이병주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파악되므로 이병주의 실질 지분은 장남과 동일한 19.95%이다. 1세대 경영자는 아직 2세대 승계권자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게다가 공시 자료가 확인해 주는 지주회사의 지배주주는 이들의 모친인 서성석 회장이다.
공시 자료는 또한 경영권 변화에 대한 단서를 준다. 이경수 회장은 2020년 3월 코스맥스비티아이 대표이사 자리를 차남 이병주에게 넘긴 뒤 2023년 3월에는 지분을 정리하고, 부인 서성석이 지분 20.62%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로 등장한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이후 대표이사 자리는 장남과 차남 간에 줄다리기하는 모양새다. 필자 추측에 내부적으로 부부 회장 간에 두 자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듯하다. 이는 곧 부부 회장 각각의 코스맥스의 비전에 대한 견해 차이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가운데 서성석 회장은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보유 지분을 늘리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5일 보유 지분은 22.61%까지 강화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무슨 일인지 코스맥스그룹의 승계 방향은 부-자 간 수직이 아니라 일단 부(夫)-부(婦) 간 수평으로 진행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기업가 전문지 <포춘코리아>와 인터뷰에 따르면 서성석 회장은 코스맥스그룹 창업부터 총무, 인사 등 내부 경영을 전담해 왔으며, 이경수 회장과의 부부 경영을 놓고 전형적인 코프리너십(Copreneurship)이라고 평가했다. 서성석 회장의 경영 참여를 정당화하는 첫 화점 포석으로 볼 수 있겠다.
현 상황은 두 아들을 지주회사와 주력 기업 대표이사로 내세우고, 지배주주인 서성석 회장은 두 회사에서 비등기 상근(실권은 있고, 책임은 피하는) 임원으로 그룹의 인력 관리(HR)를 전담하고 있다. 이경수 회장은 지배주주는 아니지만, 두 기업에서 그룹경영총괄을 맡았다. 기업 경영에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서성석 회장은 코스맥스와 코스맥스비티아이는 각각 두 자제와 외부인이 경쟁하는, 또는 경쟁하는 공동대표 체제를 만들어 독특한 견제형 경영 구조를 형성했다. 다른 기업에서 왕왕 볼 수 있는 2세 경영자에 의한 전횡의 폐단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지배주주이면서 인사권을 쥔 서성석 회장은 가급적 경영 일선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코스맥스그룹이 크게 주목받는 기업집단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그의 건전한 의도와는 달리 조선 왕조에서 여러 문제를 생성했던 ‘수렴청정’의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각오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