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식을 살 권리, 적정 가격은? [김범준의 세상물정]
이언 스튜어트의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갈릴레오는 자연이라는 책은 수학의 언어로 적혀있다고 했고, 유진 위그너는 자연과학에서 수학이 보여주는 놀라운 효율성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정도로 놀랍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광막한 우주의 크기에 비해 티끌처럼 작은 행성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그리 대단치 않은 지적 생명이 자연과 우주를 수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수학자인 저자 이언 스튜어트가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의 머리말에서 “방정식의 힘은 수학이라는 인간 정신의 집합적 창조와 물리적 외부 세계 사이의, 철학적으로 쉽지 않은 교신에 바탕을 둔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은 머리뼈안 캄캄한 공간에 갇힌 뇌라는 물질에 담긴 수학이 우리 머리뼈 밖 세상에 대응한다는 것도 놀라운 데, 미래에 일어날 세상의 일을 수학적인 방정식을 이용해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머리뼈 안팎이 끊임없이 양방향 교신하며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예측하는 온갖 지적 활동이 펼쳐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경이다.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은 인류가 지금까지 찾아낸 여러 방정식 중 저자가 고른 17개 방정식을 설명한 책이다. 방정식에 대한 책이니 당연히 여러 수식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수학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읽기 쉽지 않은 책이지만, 수식을 모두 이해하지 않더라도 이 책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저자는 각각의 방정식의 역사를 들려주고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 우리 주변의 세상에 어떻게 이들 방정식이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참 좋다.
스티븐 호킹이 <시간의 화살>을 집필할 때의 일화다. 출판사는 책에 등장하는 방정식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판매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겁주었고, 호킹은 딱 한 수식만을 책에 남겼다.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의 13장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 아인슈타인의 E=mc²이다. 만약 출판사의 주장이 맞다면 어떤 방정식으로 판매량을 표현할 수 있을까? 수식이 전혀 없을 때의 판매량을 N₀라고 하면, 책에 실린 수식의 개수가 m일 때 책의 판매량은 N(m) = N₀/2ᵐ이 된다. 실제 책에는 훨씬 더 많지만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에 등장하는 수식이 딱 17개뿐이라 해도 책의 예상 판매량은 N₀의 약 13만 분의 1에 불과해야 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 세계에서 몇만 부 정도는 이 책이 팔렸을 것이 분명하므로, 이를 이용해 거꾸로 추정한 N₀의 값은 100억 이상이라는 결과를 얻게 된다. 수식이 단 하나도 없다고 해도 지구 위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샀을 리 없으니, N(m) = N₀/2ᵐ이라는 출판사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한번 생각해 보라. 100개의 수식이 있는 책에서 수식이 하나 늘어 101개가 된다고 해서 판매량이 절반으로 줄 리는 없다. 이 책의 2장에서 저자가 설명하듯, 상당히 큰 외부의 자극을 우리는 보통 로그의 척도로 줄여서 인식한다. 내 짐작은 m이 충분히 클 때 책 판매량은 로그함수를 따라 천천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책에 여러 수식을 넣겠다고 결심한 저자라면 수식이 잔뜩 담긴 대중 과학서를 출판하는 것을 그리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결론이다. 이 책처럼 말이다.
저자는 크게 두 종류의 방정식이 있다고 말한다. 증명하는 방정식과 푸는 방정식이다. 직각 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가 만족하는 1장의 피타고라스 정리나 삼차원 다면체의 면, 모서리, 그리고 꼭짓점의 개수가 만족하는 6장의 오일러 정리와 같은 방정식은 항상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학의 방정식이다. 한편, 이 책의 3장에 등장하는 유명한 뉴턴의 운동법칙은 피타고라스 정리처럼 증명할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적용해 풀어 답을 구하면 몰랐던 것을 알아낼 수 있다.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들이 대부분 이렇다. 그리 길지 않은 방정식 하나로 온갖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물리학의 위대한 방정식은 일석이조를 훌쩍 뛰어넘는다. 돌 하나로 이 세상 모든 새를 잡을 수 있어서 일석만조라고나 할까. 방정식 하나로 시작해서 온갖 현실 문제에 답을 줄 수 있다.
물리학을 공부한 내게 책에서 소개된 17개 방정식은 대부분 익숙했다. 과거에 파생 금융 상품인 옵션의 가격을 기술하는 17장의 블랙-숄즈 방정식을 유도해 보기도 했고, 15장의 섀넌의 정보 이론도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다. 책에 있는 내용에서 내게 낯선 부분이 바로 유체를 기술하는 10장의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다. 요즘 대부분의 물리학과에서는 눌러도 부피가 줄지 않으며(비압축) 점성이 없어서 저항력도 없는(비점성) 이상적인 유체에 대한 내용을 학부 1학년 때 잠깐 배울 뿐 유체역학과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교과 과정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아 아쉽다.
17장의 블랙-숄즈 방정식은 금융 상품인 옵션의 가격을 계산하는 데 쓰이는 유용한 방정식이다. 올해 말인 2026년 12월 31일에 삼성전자 주식 1주를 10만원에 매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자. 당신 같으면 얼마의 돈을 지불하고 이 권리를 매수할까? 2026년 12월 31일 당일에 이 권리의 가격은 간단하게 계산된다. 그날 만약 실제 삼성전자 주식이 10만원이라면 이 권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0원이지만, 만약 그날 주가가 15만원이라면 이 권리의 적정 가격은 5만원이다. 만약 그날 주가가 8만원이라면 10만원이라는 더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수할 사람은 없으니 권리의 가격은 0원이다. 이런 방식으로 의무가 아니라 권리로 작동하는 것이 옵션이라는 금융 상품이다. 2026년 12월 31일 당일의 옵션 가격은 너무나 쉽게 우리가 짐작할 수 있지만, 2026년 6월 30일의 옵션 가격으로는 얼마가 적당한지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옵션의 적절한 가격을 계산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것이 블랙-숄즈 방정식이다. 블랙-숄즈 방정식은 위의 삼성전자 주식 같은 기초자산(underlying asset)이 어떻게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지에 대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기초자산의 변동성(volatility)이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과 여러 기초자산의 가격 변화가 서로 독립적이라는 가정이 중요하다. 실제 현실에서는 위의 두 가정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주가 폭등과 폭락의 시기에는 기초자산들의 가격 변동은 서로 독립적이 아니며, 게다가 기초자산의 변동성의 확률 분포가 꼬리가 긴 멱함수의 꼴을 따라서 원래의 블랙-숄즈 방정식의 결과를 현실에 단순히 적용하면 엉뚱한 틀린 결과를 얻게 된다.
8장의 파동방정식 부분도 재밌다. 저자는 음악에서 어떻게 파동방정식의 결과가 이용되는지 설명한다. 우리 귀에 조화롭게 들리는 두 음의 진동수는 간단한 정수비로 표현된다. C장조의 도와 솔의 진동수의 비율 2:3처럼 말이다. 바로 이 분수 3/2과 이 숫자의 몇 거듭제곱을 이용하고 4/3의 진동수 비율을 추가하면 피타고라스 음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피타고라스 음계에 등장하는 진동수 비율을 더 간단한 정수비로 어림하면 음악의 순정률 음계를 얻을 수 있다. 순정률 음계에서 도-레-미-파-솔-라-시의 진동수 비율은 1: 9/8: 5/4: 4/3: 3/2: 5/3: 15/8로 주어진다. 순정률 음계의 음은 함께 들려주면 우리 귀에 조화롭게 들리지만, 문제가 있다. 만약 C장조를 D장조 음계로 조옮김 하면 C장조의 도와 솔의 진동수 비율은 3/2인데 D장조의 도와 솔의 진동수 비율은 40/27이어서 약 1.48이 되어 달라진다. 이처럼 순정률 음계를 조옮김 하면 우리 귀에 어색하게 들린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평균율 음계다. 도에서 시작해서 한 옥타브 위인 진동수가 2배인 도까지는 모두 12개의 반음이 있다. 인접한 두 반음 사이의 진동수의 비가 r로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r의 12제곱이 2가 되어서 r=1.05946...을 얻게 된다. 평균율 음계에서는 C장조를 D장조로 조옮김 해도 도와 솔의 진동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두 음 사이의 진동수 비율은 순정률과 달리 간단한 정수비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은 단점이다. 예를 들어, C장조 도와 솔의 진동수 비를 구하면 순정율에서는 1.5이지만 평균율에서는 1.4983...이 된다. 유심히 들으면 평균율보다 순정률에서 두 음이 더 조화롭게 들린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서 나같이 음높이에 민감하지 않은 막귀는 순정률과 평균율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바흐의 평균율은 우리 귀에 들리는 음의 조화를 아주 조금 희생해서 음악을 정교하게 수학화한 멋진 방법이다.
뛰어난 책이지만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책에 소개된 17가지 방정식에서 시작해서 적당히 강의자의 취향을 반영해 가감하고는 1주일에 방정식 하나를 자세히 다루고 설명하는 대학 수업을 개설해도 좋을 듯하다. 한번 해볼까?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책에 소개된 방정식 중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셨나요? 그리고 그 이유는?
2. 항상 참이어서 증명이 가능한 방정식, 증명이 불가능하지만 풀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방정식이 있어요. 책에 소개된 17개 방정식을 명확히 이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3. 방정식과 언어의 닮은 점은 무엇일까요? 슈뢰딩거 방정식이 시라면 파동함수는 시어일까요? 방정식과 언어가 함축하는 개념의 차이와 유사성은 무엇일까요?
4. 수학과 물리학에 등장하는 방정식은 어떤 면에서 다를까요?
5. 발견은 엄청난 성취이지만 한편 세상에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방정식도 있습니다. 방정식의 발견자에게 재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6. 왜 세상은 수학으로 기술될까요?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7. 17개의 방정식이 우리와 다른 우주가 있을까요? 그 우주에서도 같은 방정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