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는 한국 라면 줄었다는데… 왜 지구촌이 좋아할까 [오인경의 그·말·이]
관세 인상 후유증에 지난달 미국 수출 8.9% 감소, 러시아 등 공급 부족 국가에는 되레 호재
올해 들어 대한민국 경제는 주식시장 호황과 반도체 수출 급증 등으로 외견상 무척이나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나라의 체력을 대표하는 지표인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 고공권을 오르내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경제는 결코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이재명정부의 강도 높은 투기억제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부동산 가격, 고환율과 고물가, 극단적인 경기 양극화 현상 등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한결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주력 수출국인 미국향 수출 부진은 이미 여러 업종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다면 그나마 잘나가던 K-뷰티와 K-푸드 수출 실적에도 관세 인상의 후유증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K-푸드를 대표하는 라면 수출 또한 지난 10월과 11월 두 달에 걸쳐 연속으로 전월 대비 감소세를 보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대미 수출은 이제 정말 한 풀 꺾인 게 사실일까?
단순히 겉으로만 보면 최근 두 달 치 미국향 라면 수출은 부진한 게 사실이다. 올해 월간 기준으로 가장 좋았던 9월 수출 실적(2133만달러)에 비해 적잖이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9월 대미 수출이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터라 10월과 11월의 쪼그라든 수치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걸까?
지난달 전 세계 수출이 1년 전보다도 다소 낮은 7.6%를 기록했고, 미국향 수출이 2개월 연속 전월 대비로 감소한데다, 11월 수출 실적은 전년 동월 대비로도 8.9% 감소했으니 잘나가던 수출 흐름이 한풀 꺾인 게 아닌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올해 11개월 동안의 수출 실적을 전년 동기 실적과 비교해 보면 그런 걱정은 기우일 뿐이라는 게 금세 드러난다. 전 세계 수출금액 기준으로도 21.4%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51.8%)과 미국(+18.4%) 수출 증가율은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라면 수출은 이미 전 세계 100여개 나라로 광범위하게 수출하고 있고,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같은 제품은 아직까지도 공급 부족 현상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국가로의 수출이 다소 주춤거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여타 국가에서 그 부분을 재빨리 메우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비록 미국향 수출 비중이 중국 다음으로 큰 건 사실이지만, 대미 수출이 다소 부진하다고 해서 한국 라면 수출 자체가 영향받을 정도는 아닌 셈이다.
2010년 이후부터 올해까지 과거 16년 동안 '라면 10대 수출국'의 연도별 수출금액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주요 수출국 대부분이 골고루 탄탄하게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중국과 미국은 10대 주요국 수출금액의 6할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6월까지 상반기 6개월 동안의 수출실적만 놓고 보면 미국과 중국의 수출 비중은 불과 2.7%포인트 차이밖에 없었다. 7월 이후 미국발 상호 관세의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미국향 라면 수출은 월간 단위로 큰 폭의 변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중국향 수출이 급증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그 결과 미국과 중국의 수출 비중은 11월 기준으로 무려 두 배 이상으로 크게 확대된 상태다.
이미 지난 7월에도 대미 라면 수출이 반토막이 났다고 여러 언론에서 앞다퉈 보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사태의 본질은 관세 충격에 대비해 '안전재고'를 미리 확보한 데 따른 일시적인 수출 급감만 있었을 뿐이고, 8월과 9월에 연속적으로 수출이 반등하는 모습이 나타났었다. 올해 10월과 11월에 미국향 수출이 다소 주춤했던 원인도 일부 언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품 가격 인상에 예민한 히스패닉계의 구매 저하' 등이 아니라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일 가능성이 크다. 예전에 없던 상호 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식품업체의 10월 공급가격 인상이 일찌감치 예고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원인 분석은 이미 여러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에도 담겨 있다. 이번 10월과 11월의 라면 대미 수출 급감의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관세청에서 제공하는 무역통계를 보다 꼼꼼히 분석하는 일이다.
먼저 한국 라면 수출 톱10 국가들의 전년 동기 대비(yoy) 수출 증가율부터 살펴보자. 그래프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수출 국가별로 전년 동월 대비 수출 증가율의 월별 진폭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다. 월간 단위로 발표되는 수출 실적이 얼마든지 실제 상황과 다른 쪽으로 울퉁불퉁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매월 수출 실적은 공급 부족 상태일 경우 정상 조업일수에 따라 적잖이 영향을 받는다. 이런 요소들을 두루 감안하면서 통계 수치를 다소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관세청 수출 통계를 분석해 보면 국가별·월별로 수출실적이 얼마만큼 들쑥날쑥하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미국향 라면 수출이 한두 달 주춤했다고 해서 한국 라면 수출 전선에 무슨 큰 변화라도 생긴 것처럼 '피크아웃'을 내세우며 호들갑을 떨 일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2005년 1월 이후 매월 수출 실적을 주요 국가별로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중국은 9월 한 달 동안에만 기록적인 수출액을 기록하고도 그 추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에 반해 미국 수출은 6월까지 급증하다가 7월에 큰 폭으로 떨어진 뒤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 한국 라면 수출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러시아 연방향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두 국가를 상대로 잠시 수출이 주춤한다고 해서 전 세계 수출이 동시에 영향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년 11개월 동안의 월간 수출 실적만 보더라도 한국 라면의 해외 수요가 얼마만큼 탄탄한 흐름을 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두 달의 미국향 라면 수출이 주춤한 원인은 결국 관세를 둘러싼 일시적인 수급 불일치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밀양 제2공장을 가동 중인 데도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공급 부족을 겪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미국향 수출이 일시 부진하다고 해서 그 물량이 재고로 쌓이는 게 아니라 곧바로 다른 국가로 재빨리 전환되어 팔린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대미 수출 부진 소식' 역시 '원인과 결과의 혼동'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10월과 11월에 미국 수출이 주춤한 건 관세에 대응한 제품 가격 인상으로 수요가 감소하는 '심각한 악재'가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수출이 주춤하면 곧바로 공급 부족에 시달리던 다른 나라에서는 수출이 급증하는 '호재'에 가까운 뉴스로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