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과 이재명표 부양책, ‘재계 순위’가 뒤집어졌다 [오인경의 그·말·이]
포트폴리오가 바꾼 시총, HD현대·두산·카카오·한화·SK 약진… 내수 중심 롯데·CJ는 역성장
비록 지난주 후반에 큰 폭의 하락세를 겪긴 했지만,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올해 6월부터 장기간의 박스권에서 벗어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상승 랠리를 펼치고 있다. 이번 증시 상승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상승폭과 속도 측면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폭발적이라는 점이다.
자연계에서도 거센 폭풍우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온갖 지형이 바뀌듯이 증시 또한 마찬가지다. 2022년 11월에 챗GPT가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이후 인공지능(AI) 혁명은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센 흐름으로 전 산업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정부의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이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뒷받침되면서 한국 증시는 예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이번 상승장이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 중인 점 말고도 또 하나의 특징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AI 혁명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 등으로부터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종목군과 그 밖의 종목군 사이의 수익률 격차가 유난히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 양극화는 대세 상승장이 전개될 때마다 매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이번만큼 초대형주 위주의 압축적인 상승을 보여준 사례는 별로 없었던 듯하다. 때마침 최근 한 자산운용사에서 펀드 수익률 부진에 대한 해명을 담은 일종의 '반성문'을 고객들에게 보냈다는 소식도 다시금 들려오고 있다. 그만큼 업종별 혹은 종목별 수익률 편차가 극심하다는 방증이다. 이번 상승장에서 소외된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자주 들려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닌 셈이다.
극심한 주가 양극화는 대기업 집단 사이에서도 뚜렷한 주가 차별화를 불러왔다. 특히, 올해 5월 말 무렵부터 본격화된 폭발적인 주가 상승세는 그룹별 시가총액 규모 측면에서도 심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2016년 말부터 가장 최근까지의 시가총액 변화를 나타낸 아래 그림 하나만 보더라도 최근의 변화가 얼마만큼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2025년 11월 13일 현재 주요 15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약 2528조원에 이르는데, 2016년 말에 기록했던 804조원에 비해 무려 3배 가까이 폭증한 상태다. 2016년 무렵만 하더라도 삼성그룹의 시가총액 비중이 15대 그룹 전체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9.0%에 이르렀으나, 코스피 주가 지수가 4000포인트를 넘나드는 지금은 38.0%까지 크게 감소한 상태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 비중이 줄어든 빈자리를 가장 빠른 속도로 차지한 그룹은 단연 SK그룹이다. 2016년 말 기준으로 불과 10.9%에 머물렀던 시가총액 비중은 어느새 22.7%까지 무서운 속도로 치솟아 올랐다. 오래도록 삼성그룹에 이어 2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왔던 현대차그룹은 어느새 4위까지 순위가 떠밀려 온 상태다. 15대 그룹 내 시총 비중도 SK그룹의 3분의 1까지 급격하게 쪼그라든 상태다. 현대차그룹이 AI 혁명에 대처하는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동차 산업 분야가 아직까지는 AI 혁명과의 연관성이 훨씬 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룹별 시가총액 변화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은 신흥 강호 그룹의 폭발적 성장세다. HD현대와 한화, 두산그룹이 각각 시총 순위 5, 6, 7위에 나란히 진입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이들이 새로 차지한 자리는 2016년 무렵만 하더라도 포스코(5위), 롯데(6위), CJ그룹(7위)의 몫이었다. 이들 가운데 포스코그룹은 그나마 3계단 아래인 8위로 내려앉았지만, 롯데와 CJ그룹은 각각 13위와 15위까지 떠밀려나고 말았다. 지금 진행 중인 AI 혁명이 짧은 기간에 얼마만큼 그룹별 위상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는지는 아래 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룹별 시가총액 순위가 뒤바뀌는 원인은 결국 해당 그룹의 포트폴리오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룹별 시가총액 변화를 '연평균 성장률'을 통해 살펴보면, 그룹별 성장 속도의 차이를 보다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최근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세로부터 자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HD현대, 두산, 카카오, 한화, SK그룹의 연평균 성장률이 다른 그룹들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연평균 증가율이 최악에 속하는 그룹은 롯데, CJ, GS그룹이다. 롯데와 CJ는 심지어 9년 전에 비해 시가총액이 도리어 감소하는 끔찍한 역성장을 겪고 있다. 두 그룹은 전형적인 내수 중심의 사업 구조를 지닌 데다, 2016년 사드 배치로부터 시작된 한한령이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15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올해 5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2020년 무렵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체 상태였다. 이들 15대 그룹의 합산 시가총액이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50% 중후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래도록 불변이던 상태는 올해 들어 6월 이후부터 진행된 폭발적인 주가 상승 랠리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15대 그룹 합산 시총만 하더라도 단 8개월여 만에 1000조원 이상 급격하게 불어났다. 시장 천체 시가총액에서 15대 그룹 시총이 차지하는 비중도 57.6%에서 64.6%로 단숨에 7%p나 급증했다. 초대형주 위주로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인 주가 양극화가 15대 그룹의 시가총액을 유난히 더 빠른 속도로 부풀린 셈이다.
2016년 말부터 올해 5월 말까지 8년 5개월 동안에도 15대 그룹의 시가총액 증가율(85.6%)은 시장 전체 증가율(71.3%)을 앞서긴 했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2025년 5월 말 이후 급등 랠리가 진행된 결과, 15대 그룹 시가총액이 무려 69.4% 증가하는 동안 나머지 주식들은 불과 26.1% 상승하는 데 그쳤다. 15대 그룹 합산 시가총액이 1036조원이나 불어나는 동안 나머지 주식들은 고작 287조원가량 불어나는데 그쳤다.
2016년 말 대비 그룹별 시가총액이 몇 배나 불어났는지를 살펴보면 소위 잘나가는 그룹과 죽을 쑤는 그룹 사이의 차이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최상위 다섯 그룹(HD현대, 두산, 카카오, 한화, SK)의 합산 시총은 해당 기간 적게는 6.6, 많게는 11.0배까지 불어났다. 반면, CJ 그룹과 롯데 그룹은 시가총액이 20%에서 30%나 줄어드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5대 그룹의 2016년 말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삼아 약 9년 동안의 시가총액 변화 추이를 관찰해 보면 지금 잘나가는 그룹들이 2025년 5월 30일 이후부터 갑자기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HD현대, 두산, 한화, 카카오그룹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가파른 상승 흐름을 타고 있었으며, HD현대그룹은 심지어 2022년 말 이후부터 빠른 성장세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15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스타급 활약을 펼친 기업들은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이들 가운데 연평균 성장률이 40% 이상인 초고속 성장 종목만 해도 10개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HD현대마린엔진은 9년 동안에 무려 100배 이상 상승했고, 효성중공업은 2018년 말 대비 연평균 성장률만 77.0%에 이른다. 이들 10종목의 합산 시가총액만 하더라도 2016년 말 대비 228조원이나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