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의 간극이 던진 ‘기억’의 질문 [김범준의 세상물정]

영화 ‘토탈 리콜’ 2편과 원작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2025-10-16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1990년 개봉한 영화 ‘토탈 리콜’의 한 장면. /사진=우진필름

<토탈 리콜>은 폴 버호벤 감독의 1990년 영화다. SF 작가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 담긴 흥미로운 짧은 아이디어를 놀랍도록 풍성한 서사로 확장해 보여준 영화다. 이번 글에서는 소설의 줄거리와 영화의 중요 주제를 소개하고, 2012년 렌 와이즈먼 감독의 동명 영화 <토탈 리콜>을 비평한다. 아래를 읽기 전에 소설과 두 영화를 먼저 볼 것을 추천한다.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For You Wholesale)의 배경은 공중 부양 자동차가 빌딩 사이를 종횡무진 질주하는 미래의 시카고다. 아내 커스틴과 함께 사는 저임금 노동자 더글라스 퀘일은 꿈에서 본 화성 여행을 꿈꾸다 가상의 여행 기억을 유료로 뇌 에 심어주는 회사 리콜을 찾아간다. 화성에서의 인터플랜 비밀 요원 경험을 주입하기 위해 리콜의 직원이 진정제를 투여하자, 약의 효과로 퀘일은 실제 자신이 인터플랜의 비밀 요원이며 화성에서 중요 인물을 살해하는 기밀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인터플랜은 퀘일의 화성 기밀 임무 기억을 지우고는 커스틴과의 오랜 결혼 생활 등의 거짓 기억을 주입했던 것이다. 그의 뇌에 정보를 전송하는 능력이 있는 외계 생명체를 이미 넣어서 퀘일이 원래의 기억을 회복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알아낸 인터플랜은 그를 제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어서 인터플랜은 퀘일이 원하는 다른 새로운 기억을 심는 데 동의하면 그를 살려주겠다고 회유한다. 인터플랜의 정신분석가는 깊게 숨겨진 퀘일의 내면에서 그가 꿈꾸는 상상을 발견한다.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인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푼 퀘일에게 감동한 외계인이 그가 살아있는 한 지구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상상이다. 이 가상 기억을 퀘일에게 심는 과정에서 이 유치한 유아기적 환상이 실제로 퀘일이 경험했던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소설이 끝난다. 결국 두 번 연속으로, 퀘일이 심고자 했던 기억은 실제 그에게 일어났던 현실의 사건이었다. 소설은 내가 기억하는 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묻는다. 기억했다고 사실일까, 사실이라고 기억되는 것일까를 묻는다. 기억하는 내가 현존하는 실제의 나와 같다는 우리의 확신은 도대체 어떤 근거를 갖는지 탐색하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1990년 개봉한 영화 <토탈 리콜>은 딕의 소설이 전혀 다루지 않은 화성에서의 더글라스 퀘일(영화에서는 더글라스 퀘이드)의 경험을 길게 확장해 보여준다. 당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수상이 보여주듯, 35년 전 제작된 것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고 충격적인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여성으로 변장한 보안 검색대 퀘이드의 모습, 화성 표면에서 낮은 기압으로 부풀어 오르는 사람의 얼굴, 반군 지도자 돌연변이 쿠아토의 모습에서 놀라운 시각효과를 볼 수 있다. 원작 소설에서 작가는 퀘이드가 실제로 화성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 주지만 영화는 다르다. 화성에서 퀘이드가 경험한 모든 것이 리콜에서 심은 기억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퀘이드에게 일어난 현실의 사건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영화는 주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폴 버호벤 감독은 화성에서의 모든 사건이 리콜이 심은 가상 기억이라는 의도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고, 퀘이드 역을 맡은 주연 배우 아놀드 슈와제네거는 모든 것이 실제로 화성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감독과 주연 배우의 생각도 이처럼 다르니, 퀘이드가 경험한 것이 리콜사가 심은 가상 기억인지, 아니면 실제로 화성에서 일어난 사건인지를 놓고 관객들이 갑론을박을 이어갈 수밖에. 이처럼 가상설과 현실설의 두 가능성을 모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영화의 내용에 대한 가상설과 현실설은 각각 근거가 있다. 퀘이드가 리콜을 방문해 기억 주입을 시작하기 직전의 몇 장면이 가상설의 가장 강력한 증거다. 리콜의 직원이 퀘이드에게 보여주는 영상 모니터 속 화성 여성의 모습이 이후 등장하는 멜리나와 정확히 같고,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외계인이 설치한 대기 생성 장치의 모습도 모니터에서 볼 수 있다. 게다가 리콜의 직원이 고른 기억 패키지의 이름이 ‘화성에 파란 하늘을’이어서 영화의 마지막 결말과 같다는 것도 가상설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리콜 사가 기억 주입을 중단한 것마저도 포함한 이후의 모든 사건 전개가 퀘이드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가상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성에서의 모든 경험이 실제로 퀘이드가 경험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현실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무얼까? 나는 퀘이드가 배우 샤론 스톤이 연기한 지구의 아내 로리를 살해하는 장면이현실설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내를 살해한 것이 실제가 아닌 가상의 사건이라면, 리콜이 제공한 2주간의 가상 화성 기억 주입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퀘이드가 현실에서 맞닥뜨릴 아내의 존재가 모순되기 때문이다. 압제자가 사라지고 억압받던 이들이 행복을 찾는 해피 엔딩이 더 마음에 들기도 해서, 나는 필립 K. 딕의 원작처럼 현실설 편에 서련다. 화성 대기를 만들어 낸 퀘이드가 멜리나와 함께 영화의 끝 장면 이후에도 화성에서 계속 살아가는 미래를 꿈꿔본다.

2012년 개봉한 영화 ‘토탈 리콜’의 한 장면. /사진=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렌 와이즈먼이 감독한 같은 제목의 2012년 영화 <토탈 리콜>도 있다.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 이후 20여년이 지난 시점의 영화여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여러 멋진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의 배경은 화학무기를 동원한 전쟁으로 지구 대부분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 미래다. 끔찍한 전쟁 후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은 딱 두 곳만 남게 된다. 현재의 영국에 위치한 유나이티드 영연방 UFB(United Federaton of Britain)와 호주 지역의 콜로니(Colony)다. 더 폴(The Fall)이라는 운송 장치가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크고 긴 터널을 이용해 콜로니와 UFB를 연결한다. 더 폴은 물리학적 근거가 있다. 구현 가능성은 일단 차치하고 정말로 지구를 관통하는 진공 터널을 만들 수만 있다면 더 폴은 지구의 중력만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장치다. 수업에서 나도 자주 다루는 이 물리학 문제를 풀면 UFB와 콜로니 사이의 이동시간은 약 42분이라는 것을 보일 수 있다. 영화에서 더 폴의 이동시간을 17분이라고 소개한 것은 아쉬운 오류라고 생각했다. 더 폴의 물리학과 관련한 또 다른 오류가 있다. 지구 표면에서 출발하자마자 더 폴과 그 안의 승객은 중력의 영향으로 자유낙하 해서 출발과 동시에 승객은 무중력상태가 되는 것이 맞다. 지구 중심을 통과할 때만 무중력상태가 되는 것도 영화의 물리학적 오류다.

2012년 영화는 1990년 영화와 거의 1대 1 대응 구조를 갖는다. 화성이 UFB로 바뀌었고, 반군 지도자는 쿠아토에서 마티아스로 바뀌었다. 2012년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전작 영화를 오마주 한다. 퀘이드가 맞닥뜨린 상황이 가상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 리콜 사 소속 의사의 뺨에 흐르던 땀방울에서 멜리나의 눈물로 바뀐 것도 오마주다. 1990년의 전작에서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여성으로 퀘이드가 변장하는데, 2012년 영화에서는 이전 영화의 여성을 빼닮은 여성이 전작과 같은 대사 ‘2주’를 말하지만, 사실 이 여성이 아닌 바로 뒤의 남성이 변장한 퀘이드라는 것도 재밌다. 2012년 영화는 1990년 영화의 직역에 가까워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90년 영화가 없었다면 2012년 영화는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감독이 전작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사이 놀랍게 발전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놀라울 뿐, 굳이 왜 거의 같은 영화를 다시 만들었는지 아리송했다.

두 영화는 각각 반군 지도자인 쿠아토와 마티아스의 입으로 영화의 중심 주제를 말한다. 1990년 영화의 쿠아토가 “You are what you do. A man is defined by his actions, not his memory”라고 말할 때, 2012년 영화의 마티아스는 “It is each man's quest to find out who he truly is, but the answer to that lies in the present, not in the past”라고 말한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말하는 쿠아토와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찾으려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마티아스가 또다시 1대 1로 대응한다. 물론 마티아스의 대사도 의미 있지만, 쿠아토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2012년 영화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소설과 두 영화는 기억과 현실의 간극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기억한다고 사실일까? 사실이라고 기억될까? 내가 기억하는 어제의 내 경험이 분명히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믿는 나의 확신 근거는 도대체 무얼까?

/폴라북스

*책과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기억한다고 사실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이라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가 실제 현실에서 발생한 사실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어요. 생각하는 ‘나’와 존재하는 ‘나’는 같은 ‘나’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3. 영화와 소설은 현실과 환상의 구분 가능성을 질문합니다.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도 결국 머리뼈안에 갇힌 뇌에 입력된 신호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지각된 현실을 환상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4, 여러분은 퀘이드의 경험 전체가 가상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그의 모든 경험이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하나요?

5.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자와 그 반대편에 놓인 평범한 노동자와 빈민 사이의 갈등이 두 영화에 등장합니다. 두 영화를 대규모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억압받는 이들을 구원하는 사람이 자신들 내부가 아닌 외부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화에 담긴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을 비판해 보세요.

6. 영화는 짧은 원작 소설의 극히 일부만을 담고 있어요. 이런 경우도 원래의 단편소설을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할 때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에게 허락되는 창작의 자유에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7. 1990년 영화는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나의 기억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라고 반군 지도자 쿠아토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2012년 영화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는 나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결정한다고 콜로니의 지도자 마티아스가 말하죠. 여러분은 나를 나로 만드는 것,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