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진 속 나는 왜 촌스러울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리처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

2025-09-22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사진=클립아트코리아

2017년 미국 뉴욕 타임스가 올해의 책 10권 중 하나로 선정한 <아름다움의 진화>는 예일대학교 교수로 있는 리처드 프럼의 책이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판해 진화론을 세상에 알렸다.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유전적 변이의 차별적 생존’으로 짧게 요약할 수 있다. 부모와 다른 변이가 자식 세대에 우연히 생기고 자식 중 환경에 적합해 생존한 자식이 부모에게 유전으로 물려받은 변이를 또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어찌 보면 자명한 얘기가 다윈의 진화론이다. 우연한 유전적 변이가 생존이라는 체에 걸러지는 과정이 계속 이어지면 먼 조상과는 상당히 다른 후손이 등장할 수 있고, 결국 같은 공통 조상에서 시작해 여러 다른 생물종이 진화를 통해 출현하게 된다. 바로 다윈의 ‘생명의 나무’다. 시간을 거슬러 되짚으면 우리 모든 현생 생명의 뿌리는 하나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현생 생물종은 울창한 생명의 나무의 숱한 잔가지 끝에서 삶을 이어간다. 모든 생물종은 더 나은 것도 더 못한 것도 없이 하나같이 성공한 생명이다. 나뭇가지가 자라면서 결국은 미래에 다른 종에게 자리를 내어줄 소멸할 생명이다.

<종의 기원>을 출판한 이듬해 다윈은 식물학자 아서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공작의 꽁지에 있는 깃털을 들여다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네”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수컷 공작의 꽁지깃을 자신이 <종의 기원>에서 설명한 적응에 기반한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고백이다. 이후 고민을 이어가던 다윈은 1871년 또 다른 걸작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출판한다. 이 책에서 다윈은 차별적 생존이 아닌 차별적 성적 성과, 즉 성선택이 진화의 또 다른 독립적인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수컷 공작의 꽁지깃은 딱히 뚜렷한 적응적 이점이 있어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암컷 공작이 그런 꽁지깃을 가진 수컷을 예쁘다고 선호해 선택했기 때문에 나타났다. 짝짓기 상대인 수컷을 선택하는 주도권을 행사하는 암컷의 성적 자율성을 말하는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당대 많은 과학자의 강한 반감에 맞닥뜨려진다. 여성의 자율적인 권리가 존중받지 못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도 이런 반감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어진 20세기에도 성선택 이론에 대한 학계의 무시는 계속 이어졌다. 이제 다윈의 잊혀진 성선택 이론을 다시 되살려내자고, 다윈 진화론 본래의 모습을 다시 찾자고 저자 리처드 프럼은 힘주어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수컷 공작의 화사한 꼬리깃 같은 과시 형질을 설명하는 주류 진화론의 두 입장을 설명한다. 먼저, 과시 형질 자체가 수컷의 우수한 유전적 자질을 보여준다는 ‘정직한 신호설’이다. 저자는 마나킨 새 여러 종의 다양한 과시 형질과 구애 행동을 소개하며 정직한 신호설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흰목 마나킨 새의 수컷은 구애 행동이 벌어지는 무대로 날아와 착지한 다음 좌우로 이동하며 고개를 번쩍 드는 행동을 반복하며 암컷의 선택을 기다린다. 한편 다른 종인 황금머리 마나킨 수컷은 고개가 아니 꼬리를 위로 드는 구애 행동을 한다. 두 종의 구애 행동의 차이가 각 종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가진 적응적 이점을 떠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과시 형질과 구애 행동을 정직한 신호의 관점에서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컷 마나킨 새는 자신과 같은 종의 암컷이 그런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바로 그 단순한 이유로 특정 방식의 구애 행동을 선택해 강화했을 뿐이다.

진화론에서 과시 형질을 설명하는 또 다른 입장이 바로 자하비의 ‘핸디캡 이론’이다. 커다란 수사슴의 뿔이나 포식자 앞에서 풀쩍 높이 뛰는 가젤과 같은 과시 형질과 과시 행동은 수컷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운다. 이런 과시를 통해 자신이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는 뛰어난 유전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는 주장이 핸디캡 이론이다. 자하비에게 핸디캡 이론이 있다면 저자에게는 스머커스 원리가 있다. 과거, 스머커스라는 나쁜 어감의 상품을 파는 회사는 “스머커스라는 나쁜 이름을 쓰면서 상품을 판다면, 상품의 품질이 좋을 것이 분명하다”는 언뜻 그럴듯하게도 들리는 내용의 상품 광고를 했다. 하지만, 정말 핸디캡 이론이 맞다면 개의 토사물(dog vomit)이라는 이름의 과자는 왜 없고, 동물 중에는 왜 사지 하나를 절단하고 한쪽 안구를 제거한 수컷은 없냐고 저자는 되묻는다. 부담을 극복하는 능력이 성적 과시라면 더 엄청난 부담을 극복하는 능력이 더 큰 과시가 될 수 있다. 핸디캡 이론은 틀렸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이유다.

책에서 소개하는 조류의 구애 행동이 정말 흥미로워서 유튜브에서 여러 동영상을 찾아봤다. 어깨걸이 풍조 수컷은 큰 입 모양의 스마일리 캐릭터 모양으로 날개를 펼쳐 암컷에게 구애하고, 붉은 머리 마나킨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동작으로 멋지게 구애한다. 푸른 마나킨 새 수컷은 남성 아이돌 그룹의 군무처럼 여러 마리가 구애 조직을 만들어 깔끔한 집단 군무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곤봉 날개 마나킨새의 과시 형질은 자학적이고 퇴폐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곤봉 날개 마나킨 새의 수컷은 중심부가 차있는 뼈를 마찰시키면서 뼈의 돌기를 이용해 암컷을 향한 구애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목이 아니라 뼈로 부르는 세레나데다. 새의 뼈 내부가 비어 있는 것은 몸무게를 줄여 쉽게 비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생각하면, 곤봉 날개 마나킨새는 비행 능력을 희생해 구애 행동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다. 적응주의적 진화이론으로 이런 모습의 뼈가 진화한 것을 설명하기는 정말 어려워 보인다.

바우어 새에 관련된 얘기도 재밌다. 바우어 새는 나뭇가지를 엮어서 바우어라고 불리는 구조를 건축한다. 흥미롭게도 바우어는 둥지로는 결코 이용되지 않는다. 구애 장소로서의 기능만 있다. 바우어새 수컷은 색색의 여러 물건을 수집해 색깔별로 바우어 앞에 전시해 암컷을 유혹하기도 한다. 바우어의 재료는 아무런 실용성을 생각할 수 없는 것도 많아서 앞에서 얘기한 정직한 신호로서의 적응 가설이 기각되며, 딱히 구하기 어려운 재료도 아니어서 핸디캡 이론도 기각된다. 저자는 바우어가 있는 이유는 바로 암컷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암컷은 바우어 뒤편에서 수컷 바우어의 구애 행동을 안전하게 감상하다가 수컷에게서 위협을 느끼면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라 떠나버린다. 실험에서 바우어의 일부를 허물면 암컷은 허물어지지 않은 바우어의 부분 뒤에서 수컷을 관찰한다. 바우어가 암컷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수컷 바우어새는 암컷이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바우어를 만들었다. 아니 사실은 이렇게 암컷에게 안전한 바우어를 만든 수컷 바우어새만 암컷의 선택을 받아왔다는 얘기다. 암컷의 성적 자율성과 선택의 편이를 위해 수컷은 바우어를 만들어 낸 셈이다.

책에서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노력하는 마나킨새와 바우어새의 이야기에 감탄하다가 오리의 페니스 얘기 부분을 읽고는 경악했다. 배타적인 영토가 없는 수컷 오리는 교미 후에는 암컷을 보호하다가 암컷이 알을 낳아 품기 시작하면 가출한다. 가출한 수컷 오리는 어디로 갈까? 이들은 아직 번식기에 있는 다른 암컷을 찾아 폭력적으로 교미를 시도한다. 이러한 수컷의 강제교미 행동을 위해 수컷 오리는 몸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긴 페니스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수컷 오리의 페니스는 암컷 오리에 대한 공격적 강제교미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수컷 오리의 폭력에 맞서서 암컷은 나름의 대응 방법을 찾았다. 수컷 오리의 페니스는 반시계 방향으로 꼬여있는데, 암컷 오리의 질은 거꾸로 시계 방향으로 꼬여있어서 강제적인 폭력이 발생해도 그 결과가 산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다. 실제로도 암컷 오리 교미 중 40퍼센트가 강제교미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자손의 2~5%정도만 강제교미로 탄생한다고 한다. 공격성과 관련된 오리의 페니스에 대한 설명을 마친 저자는 거꾸로 조류의 97퍼센트에는 왜 페니스가 없는지도 설명한다. 그 이유는 바로 암컷들이 페니스 없는 수컷, 즉 공격적인 성행동을 강제하지 않는 수컷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페니스가 없어서 삽입 없이 잠깐의 접촉으로 교미하는 많은 조류의 성행동은 바로 암컷이 주도해 만들어낸 성선택의 결과라는 얘기다. 오리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동물의 배우자 선택은 개체의 주체적 행동이며 성폭력은 이런 주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성적 자율성이 중요하다. 저자는 성적 자율성은 인간의 정치적 아이디어로 부각되기 훨씬 전, 아름다움의 진화가 만들어 낸 생명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

책에는 사람의 성적 과시 형질에 대한 재밌는 얘기도 여럿 등장한다. 인간 몸의 체모는 거의 사라졌는데도 음부와 겨드랑이의 체모는 왜 남아있는지를 성 선택으로 설명한 저자는 여성의 영구적 유방조직과 엉덩이에 축적된 지방, 인간 남성의 큰 페니스와 음경골의 상실도 성적 선호의 결과로 설명한다. 남성의 헤픔과 여성의 내숭이라는 적응주의적 진화심리학의 주장도 저자는 반박한다. 인간 남녀의 평생 성생활 상대의 숫자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증거이며, 영화 속 제임스 본드가 아무 여자나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사실 인간 남성의 까다로움은 영장류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것이다. 여성은 자녀에 대한 양육 투자를 많이 하는 남성을 선호했고, 여성의 선택의 대상이 되고자 남성은 양육 투자를 많이 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늘어난 남성의 양육 투자는 남성이 배우자 여성을 까다롭게 고르는 데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배우자를 신중하게 고른다.

리처드 프럼은 이 책 이전에도 1억5000만년 전 살았던 깃털공룡의 깃털 색을 밝힌 연구로 이름을 크게 알린 유명 과학자다. 프럼은 현생 조류의 깃털과 평평한 깃판이 날기 위해 처음 출현했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새는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완성된 날개로는 날 수 있어도 아주 작은 날개로는 날 수 없어서, 진화 초기의 작은 날개는 비행의 측면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아주 작은 날개의 적응적 이점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날개가 날기 위해 진화했다는 주장을 저자는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기 위해 진화했다는 주장에 재밌게 비유한다. 피아노를 치기 위해 손가락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얘기하는 어불성설이다. 손가락이 있어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보온을 위해서 깃털이 진화했다는 주장도 저자는 반박한다. 지금도 어린 새가 보슬보슬 짧은 털로 체온을 유지하듯 보온을 위해서라면 꼭 큰 날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 주장의 요점은 조류의 깃털과 평평한 깃판은 성 선택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깃털공룡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라. 새의 날개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캔버스로서 처음 등장했지만 이후 비행의 목적으로도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의 여러 생생한 사례를 읽으면서, 아름다움은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 때문에 진화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인간 패션의 유행도 비슷한 점이 많다. 오래전 젊은 시절의 내 사진을 보면, 귀를 덮는 긴 머리와 어깨가 한껏 강조된 양복 상의가 참 촌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깨 뽕 잔뜩 들어간 양복이 지금 우리가 입는 어깨가 강조되지 않은 양복보다 더 낫거나 더 못한 객관적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우리 인간의 많은 문화도 결국 특정 문화 형질과 문화 형질에 대한 선호의 공진화를 통해 끊임없이 변해간다.

생명의 진화는 적합한 개체의 생존을 뜻하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개체가 주관적 경험에서 느끼는 매력과 감각적 기쁨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가장 적합한 개체만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개체도 생존(survival of the prettiest)한다. 책의 12장에서 소개한 존 키츠의 시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아름다움이 진리이고, 진리가 아름다움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이외의 어떤 무엇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를 위해 진화했다. 뭍 생명의 아름다움 만세!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영어는 ‘어떤 사실이나 개념을 이해한다’의 뜻과 ‘사적인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 또는 사물과 익숙해진다’의 뜻을 ‘know’하나로 기술하지만,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각각을 뜻하는 다른 두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말의 ‘앎’, ‘알음’, ‘이해’는 어떤 의미인가요?

2. 여성의 심미적 선택으로 남성의 폭력성이 줄어들었고 이를 통해 남녀의 몸 크기의 차이가 줄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은 여성보다 16% 정도 큰 몸집을 갖고 있습니다. 미래의 인간에게서 남녀의 몸집 크기의 차이는 결국 소멸할까요?

3. 우생학과 현대의 적응적 배우자 선택 이론 사이에는 명백하고 불편한 지적 유사성이 남아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동의하시나요?

4. 적응주의 진화 패러다임을 강하게 비판하는 저자는 주류 진화과학, 특히 진화심리학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저자의 적응주의 비판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 책에서 소개된 수컷새의 과시행동 중 어떤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적응주의 진화론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과시행동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6.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인간 남녀의 성적 과시 형질 혹은 과시 행동으로 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더 있을까요?

7. 진화심리학의 적응주의 관점에서는 남성 동성애를 설명하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남성 동성애가 결국 여성이 선호하는 남성상에 의해 출현했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