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칼로, 나는 이방인이다 [강태운의 빛과 그림자]

2025-08-29     강태운 미술칼럼니스트
부러진 척추, 1944, 43x33cm

두렵지 않다고 다짐할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아니라고 고개 저을수록 눈앞에 문제는 선명해진다. 풀리지 않는 문제 때문에 머리를 싸맨 지 며칠째다. 눈앞에 드러난 결과에 비해 원인은 규명하기 어렵다.

문제 상황을 만나면 그간 경험을 통해 터득한 방법으로 먼저 대처한다. 자기가 알던 방법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당황스럽다. 그제야 어디서부터 일이 어그러졌는지 되짚어간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다들 왜 이러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풀이 과정도 정답도 모두 바뀌었다.

솔직히 내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탓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을 부정해 봐야 바뀐 걸 몰랐다는 아픈 자각만 커진다. 남는 건 소외감이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너무 자신만만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았다. 시대가 바뀌면 문제도, 해법도 바뀌는 게 순리인데 말이다. 정신 줄을 붙잡으려 해도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 마음은 더 심란해진다.

이건 분명히 눈부신 태양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나는 애꿎은 곳을 지목하지만 그건 주위에서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그 순간 나는 인정할 수 없지만 있는 그대로 나인 이방인을 만난다. 나는 이방인이다. 이제 이방인이 날린 화살은 나를 향해 날아온다. 빛은 어둠을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고 했던가. 화살에 피를 흘릴 때면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이방인을 찾는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자신의 실존적 고통을 회화로 구축한 멕시코의 대표적인 여성 화가다. 칼로는 어린 시절 겪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다. 열여덟 살 꿈 많은 소녀의 몸은 버스와 기차가 충돌한 사고로 산산이 부서졌다. 침대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칼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칼로가 자화상을 주로 그린 이유는 침대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그리기가 그나마 수월했기 때문이다.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1931, 100x79cm

몸의 상처보다 더 결정적인 고통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리베라는 멕시코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화가였고, 자본주의 심장부라고 불리는 뉴욕 록펠러 센터에 사회주의 혁명가인 레닌 초상을 그려 넣을 만큼 꿋꿋한 인물이었다. 리베라는 칼로의 재능을 높이 샀다. 리베라의 격려를 받으며 칼로는 화가의 길을 걸었다. 동료 예술가로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새 사랑의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22세의 칼로는 그녀보다 21살이나 많은 리베라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남편 리베라의 여성 편력과 이어진 칼로의 질투는 고통을 숙명으로 만들었다.

상처 입은 사슴, 1946, 22.4x30cm

사람은 상대방의 고통을 보기만 해도 내가 직접 그 고통을 겪을 때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같이 경험한다. 사슴 몸에 선명한 핏자국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화살이 자기 몸에 박힌 듯 움찔하게 한다.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한 네 발은 제자리에서 동동거릴 뿐이다. 양옆에 선 굵은 나무들은 사슴을 숨겨 주기보다 무심히 지켜보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보이는 바다는 해방감을 주지만, 그곳에서 사슴을 기다리는 건 천둥과 번개다. 어느 한 곳 쉽지 않기에 상처 입은 사슴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림 전체를 더듬던 시선은 마지막으로 칼로의 눈을 향한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관람객은 보통 그림을 바라본다. 시선은 그림을 향한다. 칼로는 사슴 머리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 몸에 박힌 화살이 없었다면 다들 평범한 자화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시선이 바뀌면 관람객은 그림을 보는 주체가 아니라, 그림 속 칼로의 눈에 비치는 대상으로 전환된다. 그리는 위치에 있던 칼로 자신도 관람객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그림 속 칼로는 자신을 향해 화살을 날린 이방인을 찾는 중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이방인에게 곁을 내주는 연습이었다. 살이 에이는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그림으로 표현했던 칼로는 몸과 마음은 부서져 고통스러웠지만 살아 있음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칼로의 자전적 경험은 조지와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와 함께 페미니즘 미술의 싹을 틔운 선구자 역할을 하게 했다. 조지아 오키프가 꽃을 주제로 여성적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칼로는 자신의 실존적 고통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자화상 50여 점에는 자기 내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새로운 여성상을 회화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을 담았다. 칼로 그림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림 크기다. <상처 입은 사슴>은 가로세로 30x22.4 cm이다. 큰 캔버스만을 고집하던 다른 화가와 달리 칼로 그림은 대부분 공책 크기 정도다. 육체의 고통을 약으로 버텨야 했기에 칼로에게는 작은 그림만 허락되었다. 공책에 일기를 쓰듯 삶을 관통하는 행복과 불행, 그리고 생생한 고통을 ‘그리기’라는 행위로 기록했다.

칼로는 디에고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혁명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부서진 척추는 칼로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남편 리베라는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 질투로 날린 화살은 되돌아와 자신을 향했다. 자기 몸을 부쉈던 사고보다 더 고통스럽다. 칼로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그림에 담으면서 눈앞에 닥친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겪는 자신을 알아갔다. ‘그림’이라는 기록은 질투와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자기를 인식하고 싸우는 과정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존재한다. 아니라고 고개 저을수록 그림자는 선명해진다. 그만 인정하자.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