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돈줄 돌린다더니… ‘국장 탈출은 지능 순’ 도돌이표? [오인경의 그·말·이]
“PBR 10배 아니냐”라는 경제부총리에 정책 기대는 공염불… ‘코스피 5000’ 공약 지켜져야
조기 대선이 마무리되자마자 대한민국 증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7월 말쯤엔 전 세계 증시를 통틀어 상승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힘차게 솟구쳤다. 그렇게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던 한국 증시에 일순 찬물을 끼얹은 건 정부의 '세제 개편안' 발표였다. 증시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루 만에 코스피 하락률이 3.88%에 이를 정도로 패닉에 가까운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당찬 목표를 내걸고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과연 정책적인 뒷받침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투자자들은 다시금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조소 가득한 유행어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세제 개편안 발표 이전과 이후의 증시 흐름이 이토록 극명하게 뒤바뀌었음에도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한사코 요지부동인 듯하다. 8월 1일의 폭락 장세가 세제 개편안 발표와 얼마만큼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대통령실의 반응만 봐도 그렇다. 국민청원 등으로 표출된 성난 민심을 뻔히 알면서도 시장과 동떨어진 서랍 속 자료들만 찾아낸다. 과거 10년 동안 12월의 증시는 대주주 요건 강화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상승했다는 기재부의 발표까지 나오는 걸 보면 쇠귀에 경읽기가 따로 없다.
한국 증시가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지닌 매우 열악한 시장이라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인정되는 얘기다. 국내 증시가 저평가된 원인들은 이미 너무나 명약관화하게 드러나 있다. 열악한 기업 지배구조, 주주 이익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쪼개기 상장, 만성적인 쥐꼬리 배당, 자사주 제도의 악용, 주가 조작 등 불공정거래의 만연 등등. 원인이 이미 빤하게 드러나 있는데도 고치지 못하는 건 정부가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한때나마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인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중요한 토대가 속도감 있게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배당소득 분리 과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부동산에 쏠린 기형적인 국민 대차대조표를 정상화하는 부동산 세제 개편까지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다.
이런 기대들을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뜨린 게 바로 기재부의 7월 말 '세제 개편안 발표'였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코스피 5000 시대'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본시장 억제 방안'이 무려 3종 세트로 담겨 있으니 시장의 반응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이든 외국인 투자자든 시장 참여자라면 누구라도 '코스피 5000은 결국 공염불이 아닐까' 실망하고 분노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다음 대응 방식이다. 국가 경제에 중추적인 기능을 떠맡은 주식 시장에 극도로 부정적인 '세제 개편안'을 두고도 벌써 한 달 가까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꾸물대고 있다는 점부터 문제다. 집권당 정책위의장의 표현대로 '증시는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며 그 자체를 리스크로 인식한다'는 말이 백번 옳다. 여당에서 대주주 요건만큼은 건드리지 말자는 절박한 민심을 이미 두 차례나 정부에 전달했다고 하는데도 기재부 장관의 입장은 여전히 '심사숙고 중'이라니 더더욱 답답할 노릇이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 문제가 된 건 '대주주 요건 강화'만이 아니다. 새로운 정부가 자금 흐름의 물꼬를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대전환한다는 약속마저도 정면으로 어겼기 때문이다. 가계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은 이미 전 세계 어느 국가와도 비교하기 힘들 만큼 기형적으로 팽배해 있다. 자금이 비생산적인 부동산으로 쏠릴수록 생산 활동에 필요한 자금은 그만큼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는 그 어떤 부동산 세제 강화 방안조차 검토되고 있다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은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가만히 놔둔 채 오로지 주식투자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만 더 강화하겠다니 이토록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말 국민계정 대차대조표를 살펴보면 소위 '주식투자 자산'으로 분류되는 자금은 1109조원에 불과하다. 가계자산 가운데 불과 8.5% 수준이다. 주식에 투자하는 자금보다 부동산에 묶여 있는 자금이 무려 8.8배에 이르는 셈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는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트리기 어렵다. 오죽하면 경제부총리조차 '부동산에 가만히 놔두면 더 좋았을 텐데' 거래세를 낮추는 등의 정책으로 증시에 자금이 일시적으로 몰렸다가 다시 하락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그 부분에 대한 책임감도 필요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지 않는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국내외 투자자들이 다시금 정부의 정책 추진 의지와 방향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수많은 전문가가 대주주 요건을 낮추지 말라고 아우성인 데도 정책 당국자들은 요지부동이다. 그 어떤 공론의 장조차 마련하지 않고 '심사숙고 중'이라며 불확실성만 계속 키우고 있다.
경제부총리가 국회 상임위에서 PBR이 10배 정도 아니냐고 답변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정말로 답답하다. 얼마 전에는 국회 법사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국회의원이 본회의가 한창 열리는 시간에 버젓이 차명으로 주식거래를 하다가 발각되는 황당한 사태마저 발생했다. 주가 조작과 불공정 거래가 적발되면 패가망신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엄명조차도 이토록 하찮게 여기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코스피 5000 시대는 요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