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다음은 스테이블코인, ‘트럼프의 자충수’가 된다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스테이블코인의 복수
박찬욱의 작품 중에 <올드 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은 늘 그의 이름과 나란히 떠올려진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미장센으로 배치되고 규정되지 않은 날것의 실재가 툭 튀어나와 조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르시시즘과 리비도 사이 어디에선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줍은 성장론 혹은 성 담론이었던 <올드 보이>에 비해 <복수는 나의 것>에서 느꼈던 난감함은 잘 잊히지 않는다. 관계나 세계 혹은 업(業)이나 연기(緣起)에 관한 그의 입장에는 완전히 동의하지만, 여전히 신이 아닌 우리들 인간으로서는 은원(恩怨)의 궤도에서 시지프스처럼 박차를 멈추지 않고 역마살(驛馬煞)에 끝없이 매달릴 뿐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관계 즉, ‘갈마’(羯磨, Karma)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인과론적 인식은 너무 강력해서 그것을 체득하는 순간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가끔씩 수백명의 시민이 압사를 당해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큰 강을 건넜다’든지 ‘큰 산을 올랐다’든지 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속삭이는 자가 옆에 있다면, 그 업보가 당대에 다 씻을 수 없고 이미 후대에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비교형량은 신의 영역 즉, “복수는 나의 것”에 넘길 수밖에 없게 된다. 종종 사법부의 판관들이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는 법익 형량을 판단하는 생업(生業)에서 비롯되지만, 그들 역시 역사 앞에서 비겁했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느 날 오후 길가에서 삐끗 넘어질 때 그 자리가 누군가의 감정을 농락했던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늦은 것이다.
납치한 아이가 결국 죽게 되고 얼마 후 신하균과 배두나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둘의 퀭한 얼굴이나, 음독한 가족 속에 살아남은 아이를 구한 송강호가 이윽고 신하균을 죽여 파묻는 순간 들이닥친 일단의 무리에게 칼을 맞았을 때 당황한 얼굴이나, 선량하고 성숙한 사람들은 모두 대가를 짐작하고 자기계산을 하고 있지만 신의 저울은 대부분 그들의 짐작과 어긋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멋대로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협상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는 트럼프나 스콧 베센트의 계산과 다르게 시장과 세계는 흘러갈 것이다. 그가 구축(構築)하려 하고 있는 관세와 환율과 금리의 균형은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부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스테이블 코인과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관한 문제를 다루어 보자.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국에서 들려온 것이 도시 봉쇄만은 아니다. 비트코인 거래를 불법화하고 본격적인 규제를 시작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외화 유출이나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것이고 중국 정부가 CBDC를 선택했음을 의미한다고 해도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자산은 어떻든 기존의 자본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트럼프는 비트코인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미미해지자 바로 스테이블코인을 들고 나왔다. 그 목적은 주지하다시피 쇠약해진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서 CBDC를 금지하는 법안에도 서명했다. 전자화폐를 대하는 자세에서 편리함이나 유통속도는 취하지만, 통제와 프라이버시가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기업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구축(驅逐, Crowding-out)될 것이고, 증가한 미 국채 발행량만큼 통화량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어빙 피셔의 교환 방정식(MV=PT)에 따라 다시 살펴보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전자화폐 혹은 디지털 자산은 화폐의 유통속도(V)와 통화량(M)이라는 측면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하겠지만, 봉건시대 금화나 엽전들처럼 자금세탁 혹은 은밀한 자산 축적에 동원될 것이기 때문에, 전황(錢荒)을 초래해 자산 가격만 올려놓고 오히려 거래량(T)을 감소시켜 고용이나 소득은 위축될 것이라는 데 있다.
다음으로 트럼프의 관세에 대응하는 각국의 인위적인 환율 조정과 가격의 전가 문제이다. 15%라는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표적이고 손쉬운 방법은 자국의 화폐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혹은 출혈을 감수하며 단가를 낮추는 것인데, 당연히 전 단계 연관 협력업체들에게 부담을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서서히 판로를 바꾸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무역 상대국에게 수출된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이러한 환율조정이 미국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을 완전히 제거할 것이라는 전망은 너무 뻔뻔하거나 순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의 카르마이다. 무엇보다도 가자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장차 월가로 상징되는 유대인 자본의 상대적인 수축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이 수십년이 걸리더라도 카르마의 칼날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연기의 법칙이고 신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월가의 속성상 CBDC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피하겠지만, 그것이 흘러넘치는 유동성을 안정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본질적으로는 블록체인을 무력화시키는 양자컴퓨팅이 조금 뒤에 도사리고 있고 금값 또한 달러 지배력이 유지되고 있다고 안심할 만큼 그 기대만큼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공황이나 또 다른 세계대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가 인도·파키스탄 전쟁이나 태국·캄보디아 전쟁을 그렇게 쉽게 중단시킨 것을 보면, 연준이나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2차세계대전 이후 축적한 업력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히틀러나 히로히토, 아니면 스탈린 등의 주니어들을 목격하게 될 가능성은 커졌다. AI가 담지하고 있는 전체주의적 속성은 기술혁신을 외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기술혁신(cf. 문자와 금속활자, 전신과 전화,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터넷과 노트북·스마트폰 그리고 AI)을 통해 특이점을 돌파할 때마다, 개인의 자유나 민주주의를 고양했지만 동시에 그 기술은 전체주의의 기반을 넓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ps: 박찬욱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의 개봉이 9월로 예정되어 있다. 기다리기에 너무나 긴 시간이라 그의 20년 전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들춰 보았다. 그도 변했고 우리도 변했지만, 그 변함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