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만의 황금어장이 된 대한민국 주식시장, 왜? [오인경의 그·말·이]

대척점에 선 외국인과 개인, 승자는 누구일까(상)

2025-07-14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사진=픽사베이

대한민국 증시가 불타오르고 있지만, 정작 개인투자자들은 그다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듯하다. 보유 중인 주식들이 소위 벤치마크 수익률인 코스피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팔아버린 주식은 계속 오르고 매수한 주식은 주가 움직임이 영 신통찮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나쁜 전통'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시장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급변할 때 투자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개미 투자자들은 우왕좌왕하기 쉽고, 시장 흐름을 재빨리 포착해서 벤치마크 수익률을 따라갈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투자에 관한 지식과 정보와 경험만으로 판가름 나지도 않는다. 예민한 감각과 과감한 의사결정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증시는 금융·건설·무역 업종 주식들이 오래도록 증시를 주도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들 업종에 속하는 주식들은 다 같이 오르고 하락할 땐 똑같이 내렸다. 종목들 사이의 수익률 편차도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종목에 대한 분석보다는 주도 업종에 올라타느냐 마느냐가 훨씬 중요한 시절이었다. 1980년대를 관통했던 대세 상승장은 1989년 4월에 1000포인트를 찍은 다음에야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활황 장세를 틈타 대거 상장된 공모주 공급 과잉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특유의 고도성장 흐름도 차츰 마무리되는 국면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증시에도 몇 차례 새로운 변화가 등장했다. 외국인들에게 최초로 자본시장을 개방했을 땐 이른바 '저PER 혁명'이 나타났다. 극도로 저평가된 저PER 주식들이 연일 하늘 높이 아득하게 치솟았다. 이들이 충분히 상승하고 나자 곧이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1993∼1994년에 주식시장을 풍미했던 '블루칩 혁명'이 일어났다. SK텔레콤(한국이동통신), 삼성전자, 삼성SDI, 포항제철, 현대차 등 업종을 대표하는 몇몇 초우량 주들이 시장수익률을 압도하는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시장을 재편하다시피 뒤바꿔 놓았다.

그 무렵 필자가 목격했던 웃픈 광경을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환갑을 훌쩍 넘긴 듯한 투자자 한 분이 개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에 여의도 제일빌딩 1층에 자리 잡은 모 증권사 객장에 들어서더니, 곧장 자그마한 시세 조회 단말기 앞으로 다가가 익숙한 솜씨로 종목코드 다섯 자리를 타다닥 입력하고 나서는 곧바로 한숨부터 짓는 게 아닌가. 그때 그분이 내뱉은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에이, 오늘도 글렀구먼!' 그때 그분이 입력한 종목코드는 '53040'이었다. 포항제철이 아침부터 쩜상으로 내달리면 다른 종목들은 희미한 온기조차 스며들 여지가 없던 시절이었다.​

/일러스트=픽사베이

이번 상승장에서도 잠깐씩이나마 그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났다. 현재의 압축적인 폭등 장세를 주도하는 지·금·조·방·원(지주사·금융주·조선·방산·원자력 관련주)이 들썩이면 다른 주식들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분위기가 꽤나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기관이 증시를 주도하는 흐름에서 개인투자자들은 그저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눈치를 보거나 수동적으로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들만큼 막강한 조직력과 정보력과 자금력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들에게 거의 유일한 장점이 하나 있다면, 장시간의 회의 끝에 어렵사리 투자 의사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정도다. 혼자 판단하고 혼자 의사결정을 내리더라도 누구 하나 뜯어말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개인 생활을 자신에게 밖에 보여 줄 데가 없이 살고 있는 우리 따위는, 주로 우리들의 행동을 검열하기 위해서 우리들 속에 모범을 세우고, 그것으로 행동을 심사하며, 거기에 따라서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고 정제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이 허용되고 모든 것을 감추어 두고 있는 가슴속, 마음속에 질서를 세워 보는 일이다.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이쯤에서 한 번 올해의 투자 성적을 투자주체별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련한 외국인 투자자들과 개인투자자들의 성적이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인 황금 어장에서 마음껏 물고기를 주워 담고 있는데, 개인투자자들은 똑같은 황금 어장에 발을 들여놓고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물만 첨벙대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지난 주말까지 투자주체별 순매수 톱10 종목은 아래 표와 같다. 외국인과 기관이 쌍끌이로 매수한 종목은 불과 두 종목(한국전력, 현대건설)뿐이다. 그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판단대로 소신껏 투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들은 외국인 및 기관들의 매수 리스트와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겹치는 종목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이들 종목의 전년 말 대비 지난 주말까지 수익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수 상위 톱10 종목은 고작 6개월 11일 동안의 수익률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10종목의 단순 평균 수익률만 하더라도 무려 122.6%에 이른다(해당 기간 외국인 순매수 금액이 100억원 이상인 종목으로 범위를 확장해도 투자 성과가 놀랍긴 마찬가지다. 총 145종목에 걸쳐 12조9582억원을 순매수했는데, 이들 종목의 단순 평균 수익률은 78.4%에 이른다). 이에 반해,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은 한화오션과 두산에너빌리티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처참한 수준이다.​

/그래픽=오인경

​이제부터는 앞에서 살펴본 자료들을 바탕으로 각 투자주체별 투자 성과를 그래프로 그려볼 차례다. 외국인 순매수 톱10 종목 중에서도 SK하이닉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 밖에도 ▲삼양식품(4위) ▲효성중공업(6위) ▲에이피알(8위) ▲에스엠(9위) 등 예상밖의 종목이 새롭게 순매수 톱10 리스트에 오른 게 눈에 띈다. 외국인 순 매수 상위 종목들의 엄청난 수익률은 그래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픽=오인경

외국인들이 올해 집중적으로 내다 판 종목들은 다음과 같다. 한국 증시를 오래도록 떠받쳐 온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차전지 관련 주인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얼마나 커다란 변화인가.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들의 수익률은 한화오션과 신한지주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부진하다. 그만큼 외국인들이 증시 흐름에 잘 대처했다는 얘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해당 기간 동안 100억원 이상 순매도한 종목 수는 250종목인데, 외국인은 이들 종목들만 24조9050억원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순매도 집중 종목들의 단순평균 수익률은 29.0%였다. 외국인 순 매수 집중 종목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 셈이다.​

/그래픽=오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