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 ‘먹튀’, 기관 ‘폭탄’에도 개미는 왜 코스닥에 몰릴까 [오인경의 그·말·이]
‘외국인들이 짓누른’ 대한민국 증시, 언제쯤 회복될까 (하)
한국거래소가 제공하는 투자 주체별 매매 자료는 1999년부터 시작된다. 1999년 이후 현재까지 투자 주체별·시장별 누적 순매매 그래프를 그려보면 놀라운 그림이 나타난다. 투자 주체별로 매매 방향이 너무나 극명하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나마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 패턴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체로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매도했다가 충분히 매력적인 주가 수준이 되면 다시금 나타나서 저점에서부터 주식을 적극 재매수하는 모습을 시의적절하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999년 이후 26년 동안의 외국인 순매수 추이를 살펴보면, 2020년부터 올해까지 6년째 진행 중인 순매도 공세가 유난히 과도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 그림만 보더라도 외국인의 매도 공세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기관투자자들의 매매 패턴은 2008년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급팽창했던 간접투자 시장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급속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들이 2009년 이후 주식을 내다 파는 중심 세력으로 전락한 이유는 공모 펀드 시장이 크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로는 이른바 동학 개미들을 중심으로 대거 직접 투자에 나서면서 기관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뿐만 아니라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동안에 기관투자자들은 한 해만 빼고 줄곧 순매도를 보여왔다. 해당 기간에 그들이 처분한 주식 규모는 무려 115조원에 이른다.
기관들의 매매 동향도 놀랍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매매 동향은 더욱 놀랍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 동안이나 잠잠하던 개인투자자들이 2020년부터 내리 3년 동안에 엄청난 규모의 주식을 폭풍 매수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동학 개미의 등장 효과다. 개인투자자들이 증시 흐름을 주도하는 시기였던 3년 동안 개인들의 순매수 금액은 무려 165조9443억원에 이른다. 1999년 이후 현재까지 누적 순매수 규모 124조4657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그만큼 대규모로 급작스럽게 폭풍 매수가 진행되었건만, 개인들이 아직까지도 크게 이탈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코스피 시장으로 범위를 좁혀 분석해 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장 전체에 대한 매매 동향은 대부분 코스피 시장에 대한 동향과 겹치기 때문이다.
2020∼2022년 개인들이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무려 130조727억원에 이른다. 1999년 이후 26년 동안의 누적 순매수 규모가 34조7841억원에 불과했던 점에 비춰보면, 당시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참여 열기가 얼마만큼 뜨거웠는지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증시가 불에 델 듯 뜨거울 때는 불덩어리에서 잠시 떨어질 필요가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이때만큼 한국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던 때는 일찌감치 없었다.
이제부터는 코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 주체별 매매 동향을 살펴볼 차례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략 95대 5 정도의 비율로 코스피에 상장된 주식들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전체 투자 금액의 불과 5% 정도를 투자하는 코스닥 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매매 방향 또한 전체적인 윤곽은 대체로 비슷하다. 2022년에 코스닥 순매도가 유난히 많았던 건 그 당시 코스닥 종목들의 주가가 비교적 좋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코스닥 시장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매매 동향은 보여주기 민망할 만큼 최악의 모습이다. 1999년 이후 올해까지 무려 26년 동안 끝없는 매도 행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가 주기적으로 활황을 나타내면 증시에 데뷔하는 신규 상장기업도 많이 늘어난다. 그때마다 기관투자자들은 소위 ‘안전빵 투자’로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다. 공모주 투자에서 기관들이 장기 보유하는 경우는 ‘의무 보유 확약’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새내기 공모주 모집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되는 한 이러한 악순환은 피하기 어렵다. 1999년 이후 기관들의 누적 순매도 규모 또한 코스피 시장보다 훨씬 더 크다. 이러니 국내 증시가 ‘개미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쓰는 것이다.
투자 주체별 시장별 매매 동향에서 가장 놀라운 그림은 아래에 나타난다. 개인투자자들이 1999년 이후 지금까지 무려 90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코스닥 시장에 지속적으로 쏟아부은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팔아치운 다음 아예 해외 선진국 증시로 발길을 돌리는 흐름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코스닥에 상장된 주식들을 끈질기게 사들이고 있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동학 개미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라는 말이 괜한 푸념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한국거래소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보유 동향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시점은 2005년 10월부터다. 그 시점부터 현재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를 일간 거래대금과 함께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코스피 시장에서 역대 최대의 거래대금을 기록했던 때는 삼성전자가 장중 9만6800원까지 치솟았던 2021년 1월 11일이었다. 당시 하루 거래대금은 코스피 시장에서만 무려 44조4338억원에 달했다.
코스닥 시장에서 사상 최대의 거래대금을 기록한 날은 2023년 7월 26일이었다. 2차전지 테마주들의 위험천만한 불꽃놀이가 최정점을 기록한 날이다. 그날 하루 코스닥 시장에서 이뤄진 거래대금만 26조4812억원에 달했다.
2021년 1월과 지난해 7월에 대규모의 매물 폭탄을 거침없이 쏟아붓던 투자자들은 결국 외국인이었다. 그들은 2023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한국 주식들을 쓸어 담듯 매수하다가 돌연 순매도로 급반전했다. 외국인들의 드라마틱한 순매도 급반전은 많은 투자자들을 당황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억측을 낳았지만 결국 뜬소문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는 발열과 수율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해 HBM 시장에서 여전히 고전하고 있으며,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경쟁사인 TSMC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에서도 SK하이닉스에 뒤처지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아무리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한국 증시가 전반적으로 크게 저평가된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앞에서도 미리 살펴봤듯이, 지난해 여름 이후부터 전개된 외국인들의 순매도 공세는 한국 시장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 비중 축소에 나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과거의 투자 주체별 매매 동향을 살펴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체로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된 틈을 타 주식 보유 규모를 과감하게 줄였다가 충분히 떨어진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재매수하는 패턴을 반복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기관투자자들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구분 없이 지속적으로 주식을 내다 파는 악역을 내내 떠맡아왔음을 알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례없는 저금리 상황이 전개되자 엄청난 규모로 국내 주식을 쓸어 담은 적이 있었지만, 주가가 하락한 지금은 투자 열기가 차갑게 식은 모양새다. 또한 개인투자자들은 성과가 부진한 코스닥 시장에 지나치게 쏠리는 경향을 보이는 점도 아쉽다. 코스닥 시장은 본질적으로 업력이 짧은 신생 기업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코스피 시장보다 대체로 실적의 부침도 심하고 기업 지배구조마저 취약한 경우도 많다.
한국 증시는 지난해 8월부터 이어온 외국인의 역대급 순매도 공세에 코스피 지수가 한때나마 2300포인트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한국 증시를 떠받쳐온 개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놓은 상태다. 부진한 국내 증시를 탈출, 발 빠르게 서학개미로 변신한 투자자들도 그다지 마음이 편치 못할 듯하다. 미국 증시가 극심한 변동을 겪는 데다가 원/달러 환율까지 역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고점 대비 무려 191조원씩이나 줄여놓은 외국인들은 과연 언제쯤 한국 주식을 되사들일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