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하는 정부가 해야 할 일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2025-05-07     김경훈 칼럼니스트
‘나르코스’ 시즌2의 한 장면. /출처=넷플릭스

언제부터인가 중남미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나르코스> 시리즈와 G.G.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그 밑받침이 마련되고 난 후에야 마술적 리얼리즘이 왜 초현실주의로 튕겨 나가지 않고 리얼리즘에 잡혔는지 알게 되었다. 기층 민중들의 신산한 삶이 깊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나르코스 시즌2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일인자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몰락하는 과정을 10부작에 걸쳐 다루고 있다. 10부작 내내 콜롬비아 군·경과 사법부의 부패와 무능함이 곳곳에서 흘러내려도 그들은 법정에 피고를 세우고야 마는 미국식 정의가 아니라, 콜롬비아 방식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를 사살한다.

그는 수백명의 시카리오와 정부 및 법원·군대 내부에서 내통하는 매수된 공직자들, 우호적인 언론, 그를 로빈후드라고 여기는 빈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행위자 연결망(Actor Network)을 구축하고 거의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에 동력을 부여하는 것은 포브스지 10대 부호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코카인 판매 대금이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이 공급하는 코카인은 대부분 미국에서 소비되었다. 시장이 형성되면 코카콜라처럼 웬만해선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만큼 안정적이었고 계속성을 확보한 줄로만 알았던 그의 마약 카르텔 제국은 결국 공권력의 심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카르텔을 침식하고 무너뜨린 것은, 경쟁 관계에 있던 또 다른 카르텔과 그를 공산주의라고 믿었던 우익 민병대로 이루어진 자경단의 지속적인 습격과 암살이었다.

오히려 당시 콜롬비아의 법무부 장관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변호인과 조응하며 자경단의 공격을 방해하고 있었다. 전임자가 대낮에 암살되었기 때문이었는지 그의 언사는 늘 법적인 모호성 뒤에 숨어 있었다. 근대 이념의 하나로써 근대 이성의 고갱이인 법에 의한 지배가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구축한 행위자 연결망의 하위구조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근대 국가 혹은 사회에서 항거불능의 인과율을 체득하고 이념화시킨 법이 법정 혹은 법조계라는 장(champ 혹은 field) 안팎에서 형성된 행위자 연결망의 지침서가 아니라 레시피가 되는 순간 사회 일반과 상동성을 잃게 되고 법관들에게 부여한 상징 권력은 박탈된다.

콜롬비아의 한 나르코스에게 300억달러의 부를 안겨줄 수도 있는 미국의 구매력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으로 인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누구나 말하고 있는 월마트 매대의 50% 이상이 중국산 제품이라면, 150% 이상의 이른바 상호 관세는 서민들의 삶을 직접 타격하며 소비자물가의 상승은 피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정책 목표는 물가와 실업률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상충(trade off)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보복관세를 통한 재정적자나 무역적자의 해소가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면 이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함에도, 레이건을 흉내 내는 그로서는 금리 인상 대신 80년대 ‘플라자 합의’처럼 더티15 국가들과 인위적인 대달러 환율 절하(각국 통화의 평가절상) 협상을 벌일 것이다.

이 관세와 환율에 관한 협상 과정에서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을 재확충하는 리쇼어링이나 반도체·전기차 그리고 조선 산업 등의 유치를 성사한 후에는, 다른 말로 하면 세계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경기 침체가 표면화하면 비로소 파월에게 금리 인하를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론과 국가 간 무역·외교의 차이는 상대방이 1대 1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라는 것에 있다. 누가 보아도 바이든의 동맹(미국의 행위자 연결망)을 활용한 전략이 우수해 보이는데도, 미국의 지배계층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교착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구대륙의 분쟁에 개입한 미국은 그 전쟁이 3년 이상 계속되면 항상 고립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따라서 트럼프의 목표는 휴전이 아니라 발을 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재자라는 역할을 짊어지게 되면서 그는 젤렌스키에게도 끌려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한 국면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주요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와중에 ‘마라라고 합의’ 같은 원화의 평가절상은 치명적이겠지만, 중국에 부여되는 고율 관세는 이러한 위험을 상당 부분 커버할 것이고 외교적 성과가 전무한 그로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예전에 좋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날 것이다.

따라서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는 미국과 북한의 외교관계 수립을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수년간 지정학적 관점에서 경제 현상을 이해하도록 강요받아 온 측면이 있지만 사실 이것은 본질적이다. 주류 경제학이 전개하는 엄격한 가정하에서의 경제 메커니즘은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데 비해, 최근 붕괴하고 있는 세계화는 시장의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의 불확실성만큼 패권 국가들의 야욕 역시 늘 오버슈팅해서 블랙 먼데이 같은 대폭락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이 대기를 꽉 채우면, 무속적 리얼리즘에 사로잡힌 자들은 선거에서 패배조차 유권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데서 찾지 못하고 부적을 잘못 썼다는 둥 기일을 잘못 잡았다는 둥 등에서 찾는다. 더하여 점쟁이들에게 미혹 당해 돈과 제물을 충분히 갖다 바친 자들은 마침내 부정선거를 떠벌리기에 이른다.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에는 스키티아의 복장 도착자들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스키티아인들은 유목민이었지만 말을 타고 이동하는 자들은 대부분 지배계급에 속하는 자들로서, 장시간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걸리는 질병들을 완화하기 위한 시술을 하다가 생식불능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신을 섬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고 공물을 갖다 바쳤기 때문에 생식불능이라는 신의 뜻에 골몰하다가 여자들의 옷을 입거나 화장하는 등 남자답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층민들은 말을 탈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신에 대한 불경을 저질러도 생식불능에 걸리는 경우가 없었다.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기 위해 계엄을 일으켰다는 자들이나 스키티아의 복장 도착자들은 모두 신의 선택만을 좇았던 자들이다. 그들이 의학이나 유권자의 근심을 이해하는 데 먼저 집중했다면 그들은 다른 길을 갔을 것이다.

이미 500년 전 서슬 퍼렇던 연산군 시절에도 소격서 혁파를 간언하던 유생들을 떠올리면 한참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