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를 파괴시킨 ‘우주 아이’ [김범준의 세상물정]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많은 이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불후의 명작으로 꼽는다. 큐브릭 감독은 <롤리타(1962)>,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시계태엽 오렌지(1971)>, <샤이닝(1980)>, <풀 메탈 재킷(1987)>, <아이즈 와이드 셧(1999)>등 다채로운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루는 주제나 배경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내가 참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보통 소설을 먼저 쓰고 이에 기반한 시나리오를 완성해 영화 제작을 시작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소설과 영화 제작이 진행되어 둘이 함께 1968년에 세상에 공개됐다. 유명 SF 작가인 아서. C. 클라크는 소설 집필과 동시에 큐브릭 감독과 공동으로 영화 시나리오도 함께 집필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심지어는 완성 이전의 편집용 영화 필름을 보고 소설의 일부 장면에 이를 반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 달에서 발견된 외계 문명의 흔적은 클라크의 이전 단편소설 <파수병(1948)>에 등장한다. 그렇다고 영화의 원작 소설이 <파수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작가도 <파수병>과 이 작품의 관계를 도토리와 참나무에 비유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참나무를 싹 틔운 도토리가 <파수병>이지만, 도토리가 참나무와 다르듯 둘은 명백하게 다른 작품이다. 소설과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각각 울창하게 잎을 드리운 아름다운 참나무지만, 재밌고 묘한 차이점이 많다. 주로 시각적 이미지로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가 소설보다 좀 더 이해가 어렵다. 이 장대한 서사시 같은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보고 다음에 소설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는 순서를 추천한다. 처음에 보지 못했던 의미를 두 번째 영화 감상에서 찾아내는 방법으로 제격이다.
클라크는 영국의 킹스 칼리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게다가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도 해서 소설의 여러 장면은 과학적 사실과 부합한다. 예를 들어, 달에서 발견된 검은 석판인 TMA-1(달의 튀코 크레이터에서 발견된 이상 자기 현상, Tycho Magnetic Anomaly를 뜻한다)이 300만년 동안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강한 전자기파 신호를 방출할 수 있었던 것은 외계인이 초전도체를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설정이 소설에 등장한다. 전기 저항이 정확히 0인 초전도체에 유도된 초전도 전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으니 현실 가능성을 차치하면 이론적인 면에서는 손색없는 설명이다. 또, 지름 300m의 우주 정거장이 1분에 한 번, 디스커버리 우주선 중앙 지름 10m의 둥근 공간이 10초에 한 번 회전해서 각각 달 표면 중력과 비슷한 크기의 인공중력을 발생시킨다는 설정도 계산으로 확인해 보니 정확했다. 목성의 중력 도움을 받아 토성으로 향하는 속도를 높인 소설의 디스커버리호처럼 실제 보이저호 우주선도 같은 방식의 중력 도움을 이용했고, 중력을 거꾸로 이용해 속도를 늦춰 토성의 위성 이아페투스 주위의 궤도에 안착한 디스커버리호가 이용한 감속 방식도 현실에서 이용되는 방법이다. TMA-2가 설치된 이아페투스 위성의 한쪽은 얼음으로 덮여 밝고 반대쪽은 먼지로 덮여 어두워 지구에서 보면 위성의 위치에 따라 밝기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작품의 주연 중 하나로, 소설에서 디스커버리호의 여섯 번째 승무원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에 관해서는 당대의 인공지능 과학자 마빈 민스키의 도움을 받았다. 민스키는 저서 <퍼셉트론>에서 다층의 퍼셉트론 인공신경망으로, 원칙적으로는 모든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인공지능이 맞닥뜨렸던 첫 번째 침체기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한 이다. 디스커버리 우주선에서 동면 상태로 있는 과학자 카민스키의 이름이 바로 인공지능 관련 자문을 한 민스키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서문에서 작가는 IBM 회사의 각 알파벳 I, B, M을 한 글자씩 앞으로 옮겨서 컴퓨터 이름이 ‘HAL’이 된 것이라는 사람들의 재밌는 뒷담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강조해 밝히기도 했다. HAL은 ‘Heuristically programmed algorithmic computer’를 줄여 쓴 것이라는 얘기가 소설의 본문에 등장한다. 휴리스틱은 정보와 시간이 제한되어 있을 때 우리 인간이 빠르게 어림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여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통빡’과 비슷한 의미다. 그렇다면 HAL은 인간이 통빡으로 짠 알고리듬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라는 의미일 수도, 아니면 HAL의 내부 연산이 인간의 통빡처럼 어림으로 진행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쨌든 HAL은 인간을 닮은 통빡 컴퓨터다.
소설은 모두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30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인류의 생물학적 영장류 조상인 ‘달을 감시하는 자(moon-watcher)’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외계 지성이 설치한 투명 크리스털 석판이 우리 먼 선조의 지성을 급격히 발전시켜 폭력의 수단으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얘기가 펼쳐진다. 2부에는 1999년 플로이드 박사가 오리온 3호, 우주 정거장, 그리고 달 왕복선에 차례로 탑승해 도착한 달에서 본 검은 석판 TMA-1이 등장한다. TMA-1에서 엄청난 전자기파 복사 에너지가 토성의 방향으로 방출된다. 3부는 지구를 출발해 토성을 향해 순항하는 디스커버리호의 이야기다. 우주선 안 승무원의 생활 방식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4부에는 디스커버리호의 인공지능 컴퓨터 HAL의 반란과 승무원의 살해,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인 데이비드 보먼이 HAL의 작동을 중단시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5부는 데이비드 보먼이 토성의 위성 이아페투스에 도착해 그곳의 거대한 석판 TMA-2가 스타게이트라는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마친다. 커다란 검은 구조물에 다가서며 보먼은 그 내부에서 많은 별을 보게 된다. 6부는 스타게이트를 통과한 데이비드 보먼이 겪는 놀라운 사건을 다룬다. 은하계의 중앙역과 오래전 거대한 우주선들이 정박한 버려진 우주 공항을 거쳐 보먼은 외계 지성이 지구의 호텔 내부를 흉내 낸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신비로운 공간에 도착한다. 6부의 마지막에서 보먼은 우주 아이(star child)가 되어 지구 근처로 되돌아온다. 달을 감시하는 자, 플로이드 박사, 데이비드 보먼, HAL 컴퓨터, 그리고 우주 아이가 각 부의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계 지성체가 설치한 모두 네 개의 석판이 소설에 등장한다. 영화의 네 석판은 크기도, 표면의 색깔도 같아 한 종류로 보이지만 소설은 다르다. 1부와 4부의 석판은 투명한 크리스털로 접촉한 이의 지성의 빠른 발달을 유도하는 기능이 있고, 2부와 3부에 등장하는 완벽하게 검은 달의 TMA-1과 이아페투스의 TMA-2는 강한 전자기파를 송출하고 수신하는 장치다. 가로, 세로, 높이의 비가 정확히 1:4:9로 같지만 TMA-1보다 훨씬 거대한 TMA-2는 웜홀처럼 다차원 공간을 가로지르는 스타게이트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가 세상에 공개된 시점이 1968년이라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 아폴로 우주선의 승무원이 달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69년이기 때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간의 달 착륙 이전에 만들어진 우주여행,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다룬 작품이지만, 소설과 영화에 그려진 우주여행의 모습은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0년 전 작품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HAL의 모습은 요즘 빠르게 발전하는 AI에 대해서도 놀라운 시사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HAL에게는 모순되는 두 임무가 부여된다. 인간에게 진실만을 충실히 말해야 한다는 HAL 설계상의 원칙과 함께, 토성의 위성 이아페투스에 도착할 때까지는 디스커버리 우주선의 진정한 임무가 그곳에서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는 것임을 승무원에게 숨겨야 한다는 임무다. 이러한 내부의 모순이 결국 HAL의 작동 이상을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그리는 HAL의 내면은 놀랍게도 인간을 닮았다.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것에 강한 ‘욕구’를 느끼고 임무의 완성에 방해가 된다는 스스로 판단으로 인간 승무원 전원을 살해하려 한다. 지구로의 통신을 담당하는 AE35 유닛이 고장 나지 않았는데도 고장 났다는 ‘거짓말’을 한 HAL의 ‘반란’을 눈치챈 승무원 보먼이 작동 중단 단계를 이어가자, HAL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작동이 멈추기 직전, HAL은 자신이 처음 만들어져 학습을 시작하기 시작한 초기에 배운 노래를 부르며 ‘과거를 추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존재가 HAL이라고 할 수 있다. HAL은 우리 인간처럼, 욕구하고, 거짓말하고, 두려워하고, 그리고 추억하는 인공적인 존재다.
인간이 부여한 최종 목표를 완수하고자 방해가 되는 인간을 살해하는 것을 선택한 HAL은 과연 사악한 컴퓨터일까? 이 질문은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사고실험 ‘종이 클립 기계’와 관련된다. 종이 클립의 생산을 최대로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기계를 상상해 보자. 이 기계는 원재료인 철광석을 발견하고 채굴해 일련의 제련 과정을 거쳐 종이 클립을 만드는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다. 지구의 철광석을 모두 채굴해 종이 클립을 만들어 낸 이 기계는 다음에는 인간이 만든 건물과 기계를 구성하는 철을 이용해 종이 클립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눈에 띄는 모든 철을 종이 클립으로 바꾼 다음에 이 기계는 사람의 몸에도 철분이 들어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사람을 죽여 철분을 채취해 종이 클립을 만들어 간다. 닉 보스트롬은 종이 클립 기계 사고실험을 통해서 굳이 인간을 죽이겠다는 사악한 의도가 없는 기계도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최선 다해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HAL은 사악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아닐 수 있다. 단지 자신에게 부여된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간 단계에서 방해가 되는 존재를 소멸시키려 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HAL과 종이 클립 기계는 인공지능에게 우리가 부여할 임무와 목표에 어떤 제한이 필요한지 고민케 한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목적 함수’를 최대화, 혹은 최소화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장치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의 여러 과정에도 인간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스타게이트를 통과해 먼 우주에 도착한 보먼은 그곳에서 네 번째 석판, 투명 크리스털을 마주하고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영화보다 소설의 설명이 좀 더 상세하다. 소설에서는 극도로 발전한 외계의 지성은 유기체 몸을 떠나 기계의 몸에 정신을 담고, 이어서는 기계든 유기체든 아무런 물질적 기반 없이 빛으로 존재하는 순수한 정신의 형태가 된다고 설명한다. 소설 마지막에서 보먼은 투명 크리스털의 도움으로 외계 지성이 겪었던 극단적인 변화의 과정을 빠르게 거쳐 순수한 정신이 된다. 존재는 새롭게 탈바꿈했지만, 아직 이 존재는 배울 것이 많다는 의미를 작가는 아기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지구 주변의 우주로 순식간에 되돌아온 우주 아이가 등장하는 소설의 마지막을 옮긴다.
“잠에 빠져 있던 죽음의 돌이 깨어나 궤도상에서 천천히 뒤척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이 품고 있는 하찮은 에너지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티 없는 하늘이 더 좋았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자 궤도를 돌고 있던 수백만 톤 무게의 돌덩이가 꽃을 피우듯 소리 없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잠에 빠져 있던 지구의 반쪽이 여명을 맞은 듯 잠깐 밝아졌다. 그리고 그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아직 시험을 거치지 않은 자신의 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자신이 이 세계의 주인이었지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곧 뭔가 생각이 떠오를 것 같았다.”
우주 아이는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수많은 핵무기가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을 깨닫고 모두 폭발시켜 핵무기를 없앤 것으로 보인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신비롭다. 우주 아이가 곧 떠올릴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지성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폭력성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2. 생명을 이루는 물질이 외계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은 요즘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성이 외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3. 인간은 결국 유기물질로 구성된 생물학적 몸을 떠나 인공적인 몸을 갖게 될까요? 더 나아가 아무런 몸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정신이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4. HAL은 사악한 인공지능인가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일 뿐일까요? HAL과 같이 행동하는 인공지능에 대비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5. HAL은 책임감과 공포를 느낍니다. 거짓말도 할 수 있죠. HAL이 보여주는 능력 중, 혹시 인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을까요?
6. 스타게이트를 설치한 외계 생명은 멸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7. 앞으로 할 일이 곧 떠오를 것 같다는 우주 아이의 독백으로 소설이 마칩니다. 별 아이는 무슨 생각을 떠올리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