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앞으로 10년 안에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오인경의 그·말·이]
잠들지 않는 시장, 잠들지 못하는 당신(하)
한때의 투기적인 광풍으로 끝날 줄 알았던 암호화폐 시장이 빠르게 실물경제 속으로 편입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자산운용을 이끄는 래리 핑크 회장이 내린 놀라운 결단 때문이다. 나날이 커지는 디지털 암호화폐 또한 주식, 채권, 금, 부동산 등 여러 실물 자산과 더불어 정식 투자 대상으로 편입한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비트코인 투자를 망설이던 대규모 자금들이 관련 ETF 상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때마침 2020년에 발발한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로 풀려나간 유동성 자금들이 미국 증시 호황과 더불어 암호화폐 시장마저 불태울 수 있도록 화끈한 연료를 제공한 셈이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지 15년쯤 지나자 마침내 ‘암호화폐 대통령’이 등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상대 후보에게 열세였던 트럼프 후보가 ‘친 암호화폐 정책’을 핵심적인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일거에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트럼프가 대반전에 성공하자 숨죽이며 지켜보던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뜨겁게 환호했고, 암호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은 마침내 10만달러라는 아득한 고지 위로 올라섰다.
비트코인으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암호화폐 혁신은 지금껏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여전히 활발한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수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우후죽순처럼 새롭게 등장했다가 재빨리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전 세계 곳곳에 개설된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하루 24시간은 물론, 1년 365일 연중무휴로 멈출 줄 모르고 운영 중이며, 폭발적인 거래량을 통해 쏟아지는 거래 수수료를 쓸어 담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토록 빠른 시간에 완전한 무에서 시작한 발명품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확천금을 안겨주는 동시에 FOMO(fear of missing out, 고립 공포감) 현상 때문에 너도나도 투기적인 광풍 속으로 뛰어들도록 부추기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아무리 탈 중앙화된 블록체인 암호화 기술이 대단하다고 한들 그저 디지털로 표시된 숫자와 문자의 조합에 불과한 암호화폐가 한 국가 전체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인류가 수천년 동안 애써 캐내고 애지중지 쓰다듬어온 금값의 시가총액과 대비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인가.
암호화폐의 기능과 역할과 미래 전망에 대한 수많은 논쟁은 비트코인이 승승장구할 때마다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한때 시가총액이 2조달러에 육박했던 비트코인조차도 향후 10년 이내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거라는 무서운 경고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컴퓨터 혁명을 주도한 빌 게이츠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같은 권위 있는 인물이 던지는 경고이니 함부로 흘려듣기도 어렵다.
무려 70년이 넘도록 탁월한 투자 성과를 지속해 온 워런 버핏도 이미 여러 차례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한때나마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었던 때가 있었다. 법률과 제도가 미비한 틈을 노린 사기와 부정행위가 만연한 영향도 컸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위험한 도박판에 무작정 뛰어든 사람들이 크나큰 낭패를 보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입심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직 복지부 장관까지도 눈알을 부라리며 가상화폐 투자의 투기적인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 암호화폐 산업은 온갖 논란과 조롱, 비난과 역경을 꿋꿋이 헤쳐 나오며 보란 듯이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디지털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근거가 엄연히 존재한다. 21세기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인물인 일론 머스크가 장난삼아 시바견을 그려 넣은 ‘도지’ 코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해당 코인의 가격이 급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저 개를 동전 속에 그려 넣은 코인이 어떻게 수십조원의 가치로 버젓이 거래될 수 있다는 말인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21세기 디지털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이런 모습을 굳이 워런 버핏의 방식대로 흉내 내어 표현하자면 이렇다. ‘어떻게 물고기한테 땅 위를 걷는 느낌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귀여운 동물을 그려 넣은 밈 코인들은 여전히 거대한 시가총액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물로는 부족했는지 트럼프 코인과 멜라니아 코인마저 새롭게 상장되어 거래되는 형편이다.
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편리하게 사용했던 지폐 대신에 디지털 암호화폐를 더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보관하기 쉽고 이동하기도 쉬운 데다 도둑맞을 위험성이 극도로 낮고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손꼽힌다. 전쟁이나 금융위기가 닥쳐도 암호화폐의 가치는 안전하게 보존된다. 또 다른 이유는 국제 금융 환경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오랫동안 기축 통화국의 지위를 누리던 미국의 달러화가 언젠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무려 36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국가부채는 시한폭탄처럼 위험천만한 상태이지만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달러 가치는 여전히 고공 행진을 지속 중이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이자 때문에 미국은 국채를 계속 발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언제부턴가 미국의 국채 대신 금을 비축하기 시작하자 미국 정부는 새로운 국채 수요처를 찾을 필요성이 생겼다. 때마침 암호화폐 시장에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이걸 활용해 국가부채 해결책을 도모하기 시작한 듯하다. 달러화와 1대 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증가할수록 그에 상응하는 국채 수요가 자동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국가 전략 자산으로 디지털 암호화폐를 편입하겠다는 방침 또한 산더미처럼 쌓인 국가부채를 해결하는 동시에 기축 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판단된다.
비트코인이 등장한 시기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였다. 그로부터 불과 16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 규모는 놀라우리만큼 거대하게 팽창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암호화폐 시장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디지털 암호화폐는 그동안 대규모 해킹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충격을 받았고, 그때마다 세계적인 암호화폐 거래소가 파산하는 비운을 겪었다. 최근에도 업계 2위의 초대형 거래소가 무려 2조원대 규모의 해킹 사건으로 대규모 뱅크런에 직면한 바 있었다. 특정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대규모 해킹 사건이 발생하면 그 여파는 암호화폐 거래소뿐 아니라 전 세계 자산 시장을 크나큰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3월 초부터 들려온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자산 편입 지시’ 하나로 연일 급락하던 암호화폐 시장이 급격한 반등세로 일제히 돌아서고 있다. 마침 오는 7일(현지 시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는 ‘크립토 서밋’이 열릴 예정이다. 암호화폐 역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이정표라 불릴 만하다. 전 세계 자산 시장의 향배가 암호화폐 대통령의 입에 달린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