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두 판만 다오, 비트코인 1만개 줄게” 15년 후 [오인경의 그·말·이]

잠들지 않는 시장, 잠들지 못하는 당신(상)

2025-03-05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사진=이미지투데이

21세기에 등장한 여러 놀라운 혁신들 가운데 암호화폐의 출현을 빼놓을 순 없을 듯하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속에 잠재된 폭발력과 영향력을 터무니없을 만큼 과소평가했다. 이만큼 인류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발명품도 다시 등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15년 전 피자 두 판을 사주는 사람한테 비트코인 1만개를 제공하겠다는 놀라운 제안을 진지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놀라운 제안을 과감하게 꺼낸 사람은 그야말로 암호화폐의 새역사를 활짝 열어젖힌 바보 영웅이 되었다. 피자 두 판을 1만개의 비트코인과 맞바꾸는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행위야말로 디지털 암호화폐의 거대한 출발점이 되었지만, 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황당무계한 뉴스가 인류의 실제 생활에 얼마만큼 거대한 폭풍우를 몰고 올지에 대해서는 그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암호화폐가 실제 생활에서도 법정 화폐 대신에 지불 수단으로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듬해에 탄생한 비트코인은 2013년쯤만 하더라도 벌써 신촌 로터리의 카레를 파는 자그마한 식당에서조차 음식값으로 서너 개씩 주고받는 모습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위 ‘거래 증명 방식’으로 암호화된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너도나도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기에 바빴고, 용산 전자상가에는 성능 좋은 GPU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출 정도로 가격이 폭등했다. 주로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제조하던 엔비디아가 GPU로 떼돈을 벌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엔비디아가 만든 최신 버전의 고사양 GPU는 이내 공급 부족 사태를 빚었고, 몇 년씩이나 사용했던 중고 그래픽 카드가 신제품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당근 마켓에 등장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무섭게 치솟기 시작하자 대규모 채굴 공장이 중국 등 세계 곳곳에 등장했고, 비트코인 채굴 속도가 급감할수록 채굴용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기료마저 폭등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암호화폐 채굴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마침내 한 국가 전체의 GDP 규모를 뛰어넘을 정도에 이르자 에너지 수급 불균형 문제뿐 아니라 지구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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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채굴률이 급감하든 말든 암호화폐에 대한 인기가 무섭게 치솟기 시작하자 코인에 대한 투기적인 수요가 무섭게 폭발했다. 피자 두 판을 사기 위해 1만개의 비트코인을 기꺼이 투척했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믿기 어려운 진실의 대명사가 되었다. 내다 버린 낡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엄청난 금액의 비트코인을 찾으려고 산더미 같은 쓰레기 매립장을 배회하는 영국 컴퓨터 공학자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가 최근에야 쓸쓸한 결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까지도 전해졌다. 뉴포트 시의회가 태양광 발전소를 짓기 위해 쓰레기 매립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재 시세로 무려 1조원에 달하는 8000개의 비트코인을 되찾기 위해 매립장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지만, 불운한 공학자의 요청이 받아들여지기는 요원해 보인다.

비트코인이 끝 모를 상승세를 이어 나가자 온갖 놀라운 성공담들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신흥 부자들이 이만큼 빠른 속도로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일찍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많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잇따라 등장했고, 온갖 이름 모를 신생 코인들이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상장되자마자 수백배 또는 수천배씩 수직으로 폭등하는 코인들이 잇따라 등장하자 온갖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 시간에 버젓이 코인 투자에 몰두하는 촌극이 빚어지고, 여기저기서 가상화폐를 둘러싼 사기와 부정이 광범위하게 확산하자, 온갖 악취를 풍기는 금융 사기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때 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 기준으로 2위와 3위를 기록했던 테라와 루나 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온갖 위험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와도 한번 불붙은 가상화폐 투자 열기를 누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악마가 다 잡아들일 때까지 투기는 계속 이어졌다. ‘Devil Take The Hindmost’. 악마는 제일 뒤쪽의 끝자락(Hindmost)을 놓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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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협잡과 사기가 판치는 가상화폐 시장은 인류가 지금껏 경험했던 온갖 투기 광풍을 일일이 검토해 보더라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규모로 부풀어 올랐다. 이런 상황에 제법 어울릴 만한 경고문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가 남긴 다음 문장이 아닐까 싶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잽싸게 올라탈 줄 아는 젊은 세대들은 한동안 가상화폐 투자로 믿기 어려운 투자 수익을 올리며 환호작약했다. 그들은 남들보다 민첩했던 자신들의 판단력과 행운과 실력에 우쭐했지만 뒤늦게 뛰어든 대다수의 사람은 투기적인 광풍에 휩쓸려 기껏 벌어놓은 재산을 잃었고 무서운 빚더미까지 떠안고 말았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는 인생의 낙오자들이 코인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로 적잖이 꾸려진 사실만 보더라도 사정은 뻔하다. 그들은 <죄와 벌>에 등장하는 어느 가난한 인생 낙오자의 말처럼 하루아침에 빗자루로 쓸리듯이 세상으로부터 내버려진 꼴이었다.

“존경하는 선생”. 그는 득의만면해서 말문을 열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말은 진실입니다. 저도 음주가 선행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진실이지요. 그러나 빌어먹어야 할 지경의 가난은, 존경하는 선생, 그런 극빈(極貧)은 죄악입니다. 그저 가난하다면 타고난 고결한 성품을 그래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빈 상태에 이르면, 어느 누구도 결단코 그럴 수 없지요. 누군가가 극빈 상태에 이르면, 그를 몽둥이로 쫓아내지도 않습니다. 아예 빗자루로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쓸어내 버리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모욕을 느끼라고 말입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극빈 상태에 이르면 자기가 먼저 자신을 모욕하려 드니까요. 그래서 술집이 있는 겁니다! ……”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중에서​

도스토옙스키.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