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1980년대 후반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실종되거나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흔한 연쇄살인마 정도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 후 1990년대 중반쯤에는 희생자가 수만명을 넘었고, 멕시코 스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유엔에 도움을 요청하는 기사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기 전, 이 끝없는 학살이 나르코스(멕시코 마약왕) 혹은 마약 카르텔의 소행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멕시코 집권 여당이었던 제도혁명당을 비롯한 제도권 내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여겨질 만큼 강력해진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약 전쟁은 말 그대로 전쟁의 양상을 띠며 너무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제 제도혁명당 세력의 80년 장기 집권을 실질적으로 끝낸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뒤를 이어 그의 오랜 지지자이자 멕시코시티 시장이었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어 그녀의 임기를 시작하고 있다.
<100정의 라이플>은 1800년대 후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에서 발호한 여러 군벌이 주민들 위에 군림하며 폭압과 착취를 일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바야흐로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무르익은 분노가 홍시처럼 붉어지던 때, 야키족 출신의 원주민 사리타는 아버지가 정부군 장군 베르두고에게 처형당하자, 야키족과 미국인 사이의 혼혈이지만 은행을 턴 돈으로 100정의 라이플을 구입해 야키족에게 건네주려던 야키조와 그를 잡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온 보안관 라이데커와 함께 협력해 베르두고에 맞선다.
1969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허술한 얼개를 지니고 있지만, 여러 가지 금기를 깨뜨리며 70년대 섹스 심벌이었던 라퀠 웰치가 사리타로 분장해 2중 3중의 차별을 겪었을 멕시코 원주민 여성의 자유의지와 저항심 등을 보여준다.
야키족 사리타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여러 이미지가 겹치는데,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치와와주의 원주민 거주 지역을 방문해 연설하는 장면을 보고 박수를 치고 말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나르코스의 나라라고 얕잡아보던 멕시코를 이제는 부러워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예전 메르켈의 독일처럼.
그녀는 멕시코 사회의 약자인 원주민, 여성, 노인, 청소년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열거하며 그것이 멕시코의 4번째 변혁기의 기본 정책이고, 지속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중남미 국가의 마약 밀매 조직원들은 어떻게 공급되는가? 대부분 일자리와 교육에서 소외된 원주민 젊은이들이란 판단을 하게 된다면, 그들에게 기회와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 마약 카르텔을 약화시키는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임을 알게 된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그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인 완곡화’(symbolic euphemism) 혹은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폭력의 전시를 구사할 수 있는 거대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맞불(Firing Back)을 놓아야 하는데,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펜타닐 유통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25%라는 고율 관세를 예고하는 트럼프와 섬뜩한 폭력으로 위협하는 마약 카르텔에 맞서 먼저 원주민이나 여성, 노인 등에게 연금과 교육 기회 등을 제공하며 상징 투쟁에서 앞서 나간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들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을 유치하며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USMCA의 일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서 이미 한물갔지만, 상징적인 보스인 카로 킨테로를 미국에 이송하기로 결정한다.
카로 킨테로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통합한 진정 보스였지만, 40년 전쯤에 미국의 마약 단속국 요원을 잔인하게 고문 살해한 혐의 등으로 체포됐음에도 행방이 묘연했는데, 이제 미국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트럼프는 마약 카르텔 보스를 넘겨받고 고율 관세를 완화할 것인지, 마약 카르텔은 그들의 오래전 보스를 미국에 넘긴 멕시코 정부에 대한 보복 대신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의 4번째 변혁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녀는 이미 가장 거칠고 실제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00정의 라이플>에서 사리타가 농민들을 무장시키고 마침내 베르두고 장군을 물리쳤듯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또한 원주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과 손잡고 안팎의 고난을 극복하길 기대한다.
농경 지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민둥산은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연료의 사용이 본격화되기 전 땔감으로 나무가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지 않고 단순히 자연보호나 나무 심기 운동만으로는 민둥산에서 벗어나기 어렵듯이, 제도혁명당이나 마약 카르텔 혹은 트럼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고용을 창출하는 제조 기업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일자리에서 발생하는 근로소득이야말로 멕시코라는 국가공동체를 울창한 숲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메르켈 이후 지혜롭고 용기 있는 여성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슬픈 약자들을 이해하는 진심과 세계 교역의 핵심을 파악하는 지혜를 갖고 멕시코의 또 다른 신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