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나비효과, 동학개미 이어 큰손도 미국 간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코리아 디스카운트 아닌 ‘구조적 저평가’ 고착 상태 의심 속 머니 무브 불 질러
어떤 이야기는 너무 강렬해서 평생 뇌리에 머물고는 한다. 필자에게는 한참 미래가 불투명하던 중학생 시절에 읽었던 윌리엄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라는 소설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다. 이 소설 주인공인 폴 고갱의 예술 열정에 감동해 지금도 그가 생을 불태운 타히티는 나의 여행 버킷 리스트 1순위이기도 하다. 폴 고갱이 스물셋의 나이에 증권회사에 취직했고, 11년간 근무하며 성공한 증권 영업맨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고갱이 1882년 프랑스 최악의 주식시장 폭락에서 직장을 잃은 후 역사적 미술 작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증권영업을 그만둔 고갱의 미술 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딸의 죽음에 상심하고 자살을 시도한 후 그가 야심 차게 남긴 작품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긴 제목의 대작이다. 이 그림은 증권 전문가로 젊은 생을 꾸리던 고갱이 고난을 맞아 인생에 대한 관조 방식을 표현한 것인데, 그림 왼쪽에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의 표정으로 보아 삶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 평가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른편 생명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고작 3.7m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성장을 구가하다가 순식간에 파국을 맞이할 위기감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
지난해 말 여러 전문가는 연례행사로 새해 경제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전망에서 2025년 세계 경제가 3.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8월 전망보다 0.2% 하향 조정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도 2.1%에서 1.9%로 2025년 성장 전망이 악화했으나, 지난달 3일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후 전 세계에서 선례를 찾을 수 없는 정치적 쇼크 상태가 지속하면서 경제적 예측이 무의미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나 정치적 쇼크 이전부터 우리 경제에 대한 불신의 신호가 이미 있었다.
위험에 가장 민감한 것은 바로 투자심리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자는 합리적 보상 기준에서 벗어나 위험이 커지면 투자를 회수하거나 대체한다. 2024년 들어 우리나라 투자자의 해외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료 3에서 보는 것처럼 지난해 11월 말 결제금액 기준으로 외화 주식 거래가 45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22년과 2023년 각각 3000억달러에 미치지 못한 것에 비교하면 괄목할 규모의 증가임이 틀림없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에 대한 투자가 주도하고 있는데, 국내 주식 대비 월평균 미국 주식 거래대금은 25%까지 폭증했다. 국내 투자자가 보기에도 미국 주식에 비하여 한국 주식의 위험성이 과도하게 커졌거나, 보상이 실망스러운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러한 현상을 미국 주식 ‘머니 무브(money move)’라 했다. 머니 무브는 다소 속도감 있는 자금 이동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미국 주식으로의 머니 무브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하다. 미국은 전 세계 경제에 파문을 주는 규모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자금이 몰려든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달러나 달러 표시 자산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달러 자산은 미국 정부, 금융회사나 미국 기업이 발행하므로 지구 어디에서 투자해도 최종 목적지는 결국 미국이다. 자료 4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펀드로의 자금 유입은 역대 최고치이고, 미국 주식시장의 세계 시가총액 비중도 55%를 넘어섰다. 전 세계 주식투자자 절반 이상이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 미국 주식 머니 무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자료 5는 주요 자산군의 최근 10년 수익성과 안전성을 분석한 표인데,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머니 무브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현대 투자 교과서는 투자평가를 위험과 수익을 상대적 비교해 선택하는 ‘지배원리’(dominance principle)에 근거한다. 즉 동일한 위험에는 높은 수익을, 같은 수익에서는 낮은 위험을 가진 투자안을 선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합리적 투자 대안이다. 도표의 45도 선 아래 영역에 위치하는 투자자산은 같은 위험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평균 이하의 수익성을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트코인은 초고위험-초고수익 투자처이며 금은 가장 안전한 자산이다. 코스닥은 코스피보다 수익성도 높지 않으면서 위험이 크고, 대표적 미국 주식 나스닥과 S&P500은 한국 주식보다 위험도 낮고 수익성도 좋다. 미국 주식시장의 초우량 성장주 7종목인 M7(Magnificent 7)은 고위험-고수익으로 평가된다. 당연히 머니 무브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주목할 것은 서울 아파트 투자는 한국 주식투자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자료에 따르면 설상가상 한국 주식시장은 금 투자보다도 불리하니 한국 부의 구성 대부분이 실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자료 5에 따르면 한국 주식시장이 버티고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1970년대 강남 개발 이후 서울 아파트 투자를 고집하고 있는 부자도 앞으로는 미국 주식 머니 무브에 동참할지 모른다.
JP모건자산운용의 올해 투자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주식 시장은 경기순환이 아닌 구조적 원인으로 미국 주식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자료 6의 국가별로 지난 12개월 실적을 기준으로 장부가치(P/B ratio)와 자기자본 이익률(ROE)을 비교한 도표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은 비참하다. 간신히 홍콩 위에 있을 뿐 아시아 주요국보다 저평가 상태다. 우리나라 경제는 고평가가 마땅하나 억울하게 디스카운트된 상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저평가가 고착한 상태라는 의심이 든다.
이쯤 되면 국내 투자가가 어디로 갈지는 뻔해 보인다. 적어도 한국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비상계엄 사태가 불을 질렀다. 이제는 부자들 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