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블 리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혼돈의 시기, 뉴욕으로 달려가는 서학개미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친일본 정책은 외환시장 변동성 뇌관, 부동산 등 자본시장 장기침체 벗어나기 어려울 것
혼돈의 시기가 공간을 꽉 채우면 불확실성에 지배당하는 모든 경제주체는 움츠러든다. 더하여 중규모 개방경제 체제하에서 언제나 상당한 정도의 ‘동질적 기대’(homogeneous expectation)를 형성하는 우리로서는 급격한 자산 가격의 변동성에 직면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소득이 아닌 자산 소유의 재분배와 자산 구성의 재조정이 이뤄진다.
그에 반하여 지난 30년간의 GDP가 4배 성장하는 동안 주식시장은 16배 오른 미국 자본시장의 변동성은 상대적으로 덜 이산적이고 그 대가관계가 분명하다.
<레블 리지>는 이제 소멸해 가는 작은 소도시의 이야기이다. 이 외진 마을에 무심코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작은 교통법규만 어겨도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들에게 폭력적으로 ‘삥’(상대방을 협박하여 빼앗은 돈이나 물건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뜯기고 텃새로 가장된 공권력의 횡포를 맛보게 된다.
작은 마을의 재정은 소송에 패한 경찰 서장의 소송비용이나 손해배상금을 보전해 줄 수 없었고 역설적으로 교통경찰이나 보안관들이 외지인에 대한 삥 뜯기를 통해 마련하는 범칙금 수입이나 보석금 등으로 재정이 유지되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경찰 서장에게 패소를 안겨준 판사마저도 이 비리 사슬에 연루돼 암묵적으로 협조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돈은 가계나 기업뿐만 아니라 공적 시스템의 작동에도 필수 불가결한 피와 같다. 돈이 운행되어야 공공서비스도 정상적으로 가동된다.
그런데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교환수단이나 가치 저장 수단으로 거의 의미 없기에 외환 보유액이 국제 거래의 결제 시스템을 담보하게 된다. 그 결과, 환율은 국부와 기업들의 경쟁력을 중·장기적으로 결정한다. 우리가 입이 닳도록 언급해 온 일본의 30년 장기 불황도 이른바 ‘플라자 합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장기 불황의 초입에는 가중평균 차입이자율이 자산수익률을 올라타면서 자산 가격이 교란되는 2가지 징후가 있다.
먼저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농경민족은 유교적 왕도정치와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기반으로 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인구수를 늘려왔기 때문에,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으로 노동의 요소 가격 혹은 노동생산성이 상당 기간 정체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도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GDP 성장의 과실을 상당 부분 빨아들였기 때문에 토지의 자본집약도는 폭증했고, 자본의 한계 효율이 하방 경직된 시장 금리에 맞추지 못하고 부채 레버리지가 꺾이는 순간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다음은 ‘자본시장의 왜소화’다. 자본자산의 장기 가격은 흔히 기술혁신에 의존해서 형성되고 변동 순환한다. 이때 기술혁신 과정에 필요한 자본 조달을 자본시장이 아닌 은행이 부담하는 정도에 따라 동아시아 경제위기는 손님처럼 찾아왔다.
불행히도 한·중·일 동북아 삼국의 자본시장은 미숙하다. 흔히 말하는 가족경영, 족벌 경영 체제 등의 기업지배구조는 주식 같은 자본시장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을 바닥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심쩍어하는 만큼, 차입경영은 반복적으로 만연하고 자본시장의 성장은 억압된다.
결국, 서학 개미나 와타나베 부인 등과 같이 기술혁신이 자본시장과 연계되어 주식시장의 성장률이 GDP 성장률의 500%를 상회하는 뉴욕으로 달려가게 된다.
두 가지 징후 모두 발열하고 있기에 유동성 선호는 더욱 강화되고 부채 레버리지는 부채 족쇄가 되어버린다. 즉, 우리는 만성적인 수요부족과 기업경쟁력 약화가 악순환하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더욱이 현 정부 들어서의 일본 친화적인 정책은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하부구조 곳곳에 다시 심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부동산시장의 거품붕괴와 자본시장의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우리가 1997년식 구조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다른 길을 갈 수도 있겠지만, 지정학적 환경이나 대외 교역조건은 구조조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기를 인식하고 플레이어는 위기를 인정해야 하지만, 금융당국의 연속성이 의심되는 지금 위험은 가늠하기 어렵고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수건돌리기 식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니 여·야·정과 재계가 모두 참여하는 경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서 적어도 외환위기는 막아내고 AI(인공지능) 산업의 도약을 설계하는 기적을 바라게 된다.
<레블 리지>에서 보듯이 미국의 시민들은 시스템 오류에 맞서 개인화한 주체들이 최소한의 조직으로 총을 들고, 기병대나 보안관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현상을 타파한다. 하지만, 뿌리 깊은 집단주의 문화를 갖고 있는 동북아 국가들의 개인은 철저히 무력하다. 오히려 계엄령이나 군사 쿠데타에서 보듯이, 비선 조직이 살생부를 움켜쥐고 광기 어린 폭력의 꼭두각시가 되기도 한다.
또한 광장에서 블라인드로 퇴행한 참여 민주주의의 자발성과 책임감은 미얀마나 홍콩의 민주주의처럼 옛것이 되어 아련하기까지 하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숙한 자본시장과 마찬가지로, 내면화되지 않은 채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신기루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갑골문자 시대의 이진법적 표기(64개의 대성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의사소통 도구인 한글이 있다. 그러니 우리 이성이 블라인드나 점괘 같은 동굴에 머무르지 않고 광장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