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²: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김범준의 세상물정]
지구에서 본 해의 움직임은 약 365일마다 반복되어서 1년이라는 시간의 길이에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나 낮이 가장 긴 하지와 같은 날도 마찬가지로 명확한 근거가 있지만, 한 해의 첫날인 1월 1일은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딱히 특별한 것이 없다. 역사의 몇 우연이 겹쳐서 첫날로 정해졌을 뿐이다. 객관적인 근거가 자연에 없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게 1월 1일은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계획과 다짐을 하기에 제격인 날이다. 새해 첫날 <김범준의 세상물정> 칼럼의 올해 계획을 세웠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을 하나씩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²>이다. 책의 부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에서 책의 내용을 엿볼 수 있다. 과학이 낯선 사람도 몇 번은 들어봤을 이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이 책에 담겼다. 한 사람의 일생을 서술하는 보통의 전기와 달리 이 책은 재밌게도 방정식의 일생을 담았다. E=mc²이 탄생한 시점에서 시작해 시간을 거슬러 이 방정식의 조상들을 소개하고, 이어서 E=mc²이 어떤 유년기와 성년기를 거쳤는지를 마치 한 사람의 전기처럼 서술한다. 책의 마지막 5부의 제목은 ‘영원한 삶’이다. 앞으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E=mc²의 의미가 퇴색할 리 없다는 뜻일 수도, 우주의 탄생부터 먼 종말까지 영원같이 긴 시간 E=mc²이 우주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1905년을 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1879년에 태어나 26세가 된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네 편의 논문을 한 해에 출판한다. 그해 3월 18일에 투고한 첫 논문에서는 빛알(광자)의 에너지가 하나, 둘, 셋, 셀 수 있어 띄엄띄엄하다는 것을 이용해 금속에 빛을 쪼였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를 설명했다. 파장이 긴 빛은 아무리 강해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데, 파장이 충분히 짧은 빛이라면 약한 빛으로도 전자가 방출된다는 것을 설명한 이 논문의 업적으로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05년의 첫 논문이 양자역학에 관련된 것이라면 5월 11일에 투고한 두 번째 논문은 통계역학에 관한 것이다. 물에 떠 있는 꽃가루 입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변 분자의 영향으로 움찔움찔 움직인다. 이를 처음 발견한 식물학자의 이름을 따서 ‘브라운 운동’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을 아인슈타인은 두 번째 논문에서 이론적으로 명확히 설명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여러 분자의 좌충우돌 마구잡이 움직임이 브라운 운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서, 당시에 많은 이가 이론적인 구성물에 불과할 뿐으로 생각했던 원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였다.
세 번째 6월 30일에 투고한 논문의 제목은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역학에 관하여’(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이다. 등속으로 운동하는 모든 관찰자에게 빛의 속도가 같고 물리학의 법칙이 동일하게 성립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서 거리 수축과 시간 지연 효과 등 특수상대성이론의 많은 놀라운 결과를 유도해 냈다. 우리 인간이 알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혁명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된 논문이다.
세 번째 논문 투고 후 석 달 정도 지난 9월 27일, 아인슈타인은 기적의 해에 마지막 짧은 논문을 투고한다. 이 네 번째 논문에서 이 책의 주인공 ‘E=mc²’이 탄생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처음 소개한 세 번째 논문을 투고한 후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을 깨닫고, “아참, 이 얘기도 논문에 넣었어야 했는데”하는 마음으로 세 번째 논문의 부록 성격을 가진 짧은 네 번째 논문을 추가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 5월 11일에서 9월 27일까지, 다섯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투고한 네 편의 논문은 정말 경이롭다. 처음 두 편의 논문이 각각 양자역학과 통계역학의 기반을 형성했다면, 이어진 두 편의 논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특수상대성이론을 창조해 냈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획기적으로 바꾼 네 편의 논문이 짧은 시간 안에, 그것도 단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E=mc²의 조상들을 소개한 2부는 이 방정식에 등장하는 다섯 기호 E, =, m, c, ²(제곱)을 차례차례 소개한다. 과학의 내용뿐 아니라, 관련된 과학자의 삶을 애정 어린 서사로 엮어가는 저자 보더니스의 서술이 정말 훌륭하다. 에너지 E를 설명하면서 패러데이의 삶을 소개하고, 질량 m을 설명하면서 라부아지에와 아내 마리 안의 삶을 함께 서술하는 식이다.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한 라부아지에의 파리 성벽 축조에 관련된 이야기, 프랑스 혁명의 과격파 장 폴 마라와의 악연도 흥미롭다. 빠르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Celeritas의 첫 글자에서 딴 광속 c를 목성의 위성 이오의 공전주기 변화를 이용해 측정해 낸 뢰머는 이후 코펜하겐의 시장이 되었다는 얘기도 재밌다. E=mc²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곱(²)을 설명하면서는 뉴턴이 이끈 영국 과학계와 라이프니츠를 필두로 한 독일어권 과학계의 논쟁을 소개한다. 속도에 비례하는 운동량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운동에너지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이다. 이 문제의 해결에 큰 역할을 한 탁월한 여성 과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와 연인 볼테르 얘기도 흥미롭다. 참고로, E=mc²에 못지않게 유명한 뉴턴의 운동방정식 F=ma를 시간에 대해 적분하면 운동량, 공간에 대해 적분하면 운동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결국, 이 흥미로운 논쟁에서 운동량과 운동에너지 둘 다 중요해 둘 다 승자인 셈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라는 용어 자체에 불만이 많았다. 나도 그렇다. 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등속으로 운동하는 모든 관찰자에게 빛의 속도가 동일하고 물리학의 법칙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내가 정지해 있고 상대방이 움직이는지, 거꾸로 내가 움직이고 상대방이 정지해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시간이 늘어나고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광속과 물리법칙의 불변성을 가정하면 자연스럽게 연역 되는 결과일 뿐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어서, 어떤 판단에도 객관적인 준거가 없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밝혀졌다”라는 주장을 접한 적이 있는데, 이는 상대성이론의 명백한 오독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 민코프스키는 ‘상대성이론’ 대신 ‘불변 공준’을 1908년 제안했고, 아인슈타인도 이를 더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상대성이론은 일종의 메타이론, 이론의 이론 성격을 갖는다. 물리학의 어떤 기본 법칙도 등속으로 움직이는 모든 관찰자에게 동일하게 성립해야 한다는 것은 뉴턴의 고전역학뿐 아니라 물리학의 어떤 기본 법칙에도 적용된다. 실제로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만족하도록 양자역학을 다듬는 과정에서 디랙의 새로운 양자역학 방정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3부 ‘유년시절’에서는 원자의 구조를 알아낸 뉴질랜드 출신 러더퍼드,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리제 마이트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베를린에서 오토 한과 연구를 시작한 마이트너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스톡홀름으로 이주한 후에도 오토 한과의 공동연구를 이어가 우라늄의 핵분열을 처음 발견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오토 한이 탄 노벨상은 마이트너도 함께 받았어야 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근거 있는 주장이다. 마이트너처럼 과학의 역사에서 잊힌 훌륭한 여성 과학자를 소개한 것도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원자번호 109번 원소에 마이트너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마이트너의 기여를 평가 절하한 나치의 부역자 오토 한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진진한 4부는 성년기에 이른 E=mc²이 원자폭탄의 개발로 이어진 과정을 담고 있다. 오토 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을 듣고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안한 아인슈타인,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하이젠베르크가 등장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서전의 성격을 가진 책 <부분과 전체>에서 자신이 독일의 핵폭탄 개발을 고의로 지연시키려 노력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하이젠베르크가 주도한 독일의 노력이 어떻게 실패했는 지 설명하는 흥미로운 뒷얘기도 4부에 실려있다. 노르웨이를 점령해서 수력발전소의 시설로 중수를 생산하기 시작한 독일의 핵 개발에 큰 타격을 준 사건이 발생한다. 영국이 주도한 노르웨이 특공대는 중수공장을 파괴했을뿐더러, 이후 중수 운반선을 폭파했고 결국 독일은 충분한 중수를 확보하지 못해 핵실험을 이어갈 수 없었다.
원자폭탄 개발에 중수가 필요했던 과학적 이유가 있다. 먼저, 이탈리아 물리학자 페르미는 빠른 중성자가 아니라 느린 중성자가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양자역학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느린 중성자는 속도의 불확정성이 작아서 거꾸로 위치의 불확정성이 더 커지게 된다. 충돌의 표적을 향해 다가오는 느린 중성자는 표적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크기가 큰 입자처럼 행동하고 따라서 핵반응이 일어날 확률이 커지게 된다. 우라늄의 핵분열을 일으키려면 빠른 중성자가 아니라 거꾸로 느린 중성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제 다음 문제는 핵분열로 방출된 중성자의 속도를 어떻게 늦추는지가 된다. 정지한 당구공을 다른 당구공으로 정면으로 충돌시키면 움직이던 당구공이 제자리에 멈춘다. 결국 빠르게 움직이는 중성자를 멈추는 가장 좋은 입자는 중성자, 또는 질량이 중성자와 거의 같은 양성자다. 중성자 하나는 곧 다른 입자와 반응해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될 수 없다는 이유로 양성자 하나로 구성된 수소의 원자핵이 많이 들어있는 물 H₂0가 중성자 감속재의 후보가 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보통의 물 H₂0는 중성자를 감속시키기에는 유리하지만, 충돌 후 중성자가 흡수되는 문제가 있다. 결국 감속의 성능은 H₂0에 미치지 못하지만,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날아온 중성자를 흡수하지 않는 물질이 감속재의 더 좋은 후보가 된다. 바로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 D가 들어있는 중수 D₂0다.
노르웨이의 수력발전소에 중수 생산 시설이 함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비료의 원료가 되는 암모니아는 물의 전기분해로 생산되고 이 과정에서 큰 전력이 필요해서 수력발전소에 비료 공장 시설이 인접해 있었다. H₂0보다 무거운 D₂0는 전기분해 과정의 반응속도가 다르고 따라서 이 차이를 이용해서 물속에 소량 존재하는 중수 D₂0를 분리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비료 공장이 곧 중수 생산 시설로 이용될 수 있어서, 중수 생산 시설이 수력발전소와 나란히 있던 이유다.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노력은 중수의 공급 부족으로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지만, 미국은 맨해튼 계획을 성공적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큰 기여를 한 오펜하이머의 삶이 담긴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와 영화 <오펜하이머>도 꼭 함께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책의 마지막 5부에서는 엄청난 인명을 살상한 원자폭탄 투하 이후의 물리학의 발전이 소개된다. 태양 내부에 철이 아니라 수소가 많다는 것을 스펙트럼선 분석으로 찾아낸 세실리아 페인, 수소의 핵융합이 멈춘 후 별은 중력으로 다시 수축하면서 연이어 더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밝힌 프레드 호일, 그리고 아주 무거운 별의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엄청난 중력을 버틸 수 없어 결국 모든 물질이 한점으로 붕괴해 블랙홀이 된다는 것을 알아낸 찬드라세카르의 연구가 상세히 설명된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한 독서 클럽을 이끌고 있다. 이 책 <E=mc²>을 주제 도서로 진행한 모임을 준비하면서 적어본 토론의 몇 주제를 아래에 소개하면서 글을 마친다. 굳이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이 멋진 책 <E=mc²>을 읽고 함께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1. 사실에 대한 판단과 가치에 대한 판단은 다릅니다. 과학은 주로 사실 판단을 다룬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학은 가치 중립적일까요?
2. 아인슈타인과 오토 한 등의 업적이 원폭 개발을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과학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오펜하이머의 책임은 어느 정도일까요? 당신이 당시 미국의 물리학자라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을까요?
3. 중수 공장 폭발이나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 같은 일회적인 사건은 역사의 진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