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강태운의 빛과 그림자]

2024-12-12     강태운 미술칼럼니스트

‘카라바조가 없었다면 렘브란트도 없었다.’

렘브란트가 빛의 화가라면 카라바조는 빛의 거장이다. 카라바조는 강한 빛과 어둠을 대조적으로 표현해서 장면에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를 띠게 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은 인물의 입체감을 강조하기에 효과적이었다. 정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 화풍과는 달리 역동적인 구도와 극적으로 생생하게 표현된 주제는 마치 눈앞에 있는 현실처럼 보였다.

카라바조는 이상화되고 권위 있는 전통적 도상에서 벗어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부여하는 등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을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심지어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사귀던 창녀 얼굴을 그려 넣기도 했다.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을 모델 삼아 어떤 꾸밈도 장식도 없이 평범하게 그렸다. 과한 면도 있지만 정형화된 그림에서 느껴지던 거리감이 사라져서 오히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카라바조가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은 신화 속 신의 모습은 자화상에 가깝다. 그리는 사람에 따라 자화상에 드러나는 자의식은 그 의미를 달리한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에는 주체할 수 없는 삶의 자신감이 풍긴다. 마르크 샤갈은 줄무늬 재킷 차림의 고상하고 확신에 찬 지성인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여유로움과 권위가 담겨 있다. 카라바조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타협 없는 묘사의 정수다. 자기 내면에 부유하는 추악함을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일은 보는 이에게 잔혹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빛을 선호하고 어둠을 두려워한다. 카라바조는 반대로 어둠 속에서 ‘자기의 진실’이라는 빛을 찾고자 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로마로 유학을 온 카라바조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의지할 데가 없는 카라바조에게 로마는 가난하고 외로운 공간이었다. 다행히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의 후원으로 그의 궁에서 지내며 <점쟁이> <루트 연주자> <악사들> <메두사> <바쿠스> 등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그는 종교화와 정물화, 인물화에서 탁월한 천재성을 발휘하며 종교 지도자들과 컬렉터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불안정한 삶은 끊임없이 범죄와 비행으로 얼룩졌다. 카라바조의 사실주의 화풍에 반감을 품은 정적들은 그를 끌어내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결국 실내 테니스 경기 도중 살인을 저지르며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에서 도망자가 되었다. 이후 카라바조는 나폴리, 몰타, 메시나, 시칠리아 등을 떠돌며 교황의 사면을 기다렸지만, 끝내 거리에서 사망했다.

기독교적 질서가 지배하는 광기의 시대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르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틀린 것이었다. 카라바조는 살아남기 위해 악동처럼 굴었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세상이 미워서 더 악동처럼 행동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동안, 자신을 지지하고 인정해 줄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그림에 담아 자기에게 돌을 던지면서도, 그 너머에 있을 자신의 진실을 추구했다. 카라바조는 근대 사실주의 회화의 탄생을 알린 작가로,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 카라바조와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 57점을 소개한다. 이탈리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우피치미술관 소장품 중 카라바조의 대표작품인 <성 토마스의 의심> <그리스도의 체포> <이 뽑는 사람> 세 점을 포함하여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등 카라바조의 대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c. 1595, 캔버스에 유채, 65.5x50 cm, 개인소장

손톱이 더러운 곱슬머리 소년의 모습에서 카라바조의 모습이 떠오른다. 귀 뒤에 꽂은 흰 장미는 사랑의 열정을 상징하는 암시로, 고대에는 장미를 귀 뒤나 머리에 꽂는 것이 매혹과 사랑에 빠짐을 의미했다. 소년 앞에는 짙은 붉은색의 체리가 높여 있는데, 이는 욕망과 관능적인 즐거움을 암시하는 사랑의 상징으로, 다산과 감각의 기쁨을 비유한다. 유리병 속에는 장미와 재스민이 보이며, 섬세하게 묘사된 장미 줄기의 가시는 사랑의 고통을 연상시킨다.

과일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도마뱀이 소년의 손을 물어 사랑의 쾌락을 고통으로 바꾸는 장면은 르네상스 시기의 자주 다뤄지던 전형적인 모티프다. 이는 사랑의 신 큐피드가 제멋대로 연인을 희롱하며 화살, 독침, 가시 그리고 도마뱀의 이빨로 그들을 상처 입힌다는 은유다. 소년의 잔뜩 찌푸린 표정과 흐트러진 자세는 성적 쾌락에 몰두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암시하며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카라바조, '성 토마스의 의심', c. 1601-1602, 캔버스에 유채, 108x146 cm, 우피치 미술관

<성 토마스의 의심>은 카라바조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으로, 묘사적 효과의 정점을 보여준다. 특히 토마스 사도의 검지가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를 깊이 파고드는 장면은 그 충격적인 사실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폴론적 완벽함을 지닌 그리스도의 신체와 서민적인 풍모의 사도들, 그리고 놀라움에 가득 찬 그들의 시선을 대조시키는 이 장면은 가톨릭 종교개혁의 포교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카라바조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 육체와 피로 이뤄진 인간 그리스도를 그려내며 부활의 증거를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토마스의 불신에 어린 시선은 오직 실체적인 증거로만 확인할 수 있다는 당대의 회의적인 사고와 일치한다. 이 작품에서 카라바조는 ‘자연적 경험’이 미신을 넘어서야 한다는 갈릴레오의 신과학 원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베들레헴 출신의 젊은 목동 다윗과 블레셋의 용사 거인 골리앗 사이의 결투에서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이 블레셋 군과의 전투에 나서며, 이 결투에서 승리한 쪽이 패자를 정복할 수 있는 운명이 걸린 상황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전혀 전투 경험이 없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며, 오직 물맷돌 하나로 거인의 이마를 정확히 맞추어 그를 쓰러뜨린다.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의 징표로 내보인다.

카라바조의 전기 작가들은 피가 흐르는 골리앗의 잘린 머리에서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회화적 표현을 넘어, 작가 자신이 이미지에 내면적 투영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카라바조는 이 처참한 상징을 통해 자신의 죄, 특히 다윗의 겸손함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교만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자각하고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