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5000만불’과 조정호의 착각… 한진가 상속세 분쟁 새 국면?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조남호와 총 800억원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적발, 조중훈 사망 직전 ‘스위스 비밀계좌 인출’ 의혹 증폭

2024-12-10     조수연 편집위원(뉴스웰경제연구소장)
조정호 스위스 비밀계좌, 그것이 알고 싶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계엄 사태로 온 나라 국민이 놀라고 분노에 찬 가슴을 쓸어내린 바로 다음 날인 지난 4일, 국세청이 조세 포탈범과 함께 해외계좌 신고 의무 위반자 등 4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전 국민적 위기감이 넘쳐나던 때였으나 이번 국세청 공시는 경제정의에 민감한 국민을 의아하게 만들고 더불어 심각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내용이 담 것으로 보인다.

자료 1. /출처=국세청

특히 국세청은 <해외금융계좌 신고 의무 위반자 공개 대상자>라는 제목으로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이른바 ‘한진가’ 두 사람의 인적 사항을 공개했다. 이들은 각각 400억원에 가까운 해외금융 계좌를 보유했으며, 더군다나 법 절차에 따라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국세청은 법률 위반을 지적하며 해당 내역을 공개했다.

자료 2. /출처=국세 법령 시스템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역외 탈세와 불법적 재산반출 행위가 큰 문제로 대두하면서 세계 각국이 앞다퉈 신설·강화한 제도로 우리나라는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에서 2011년 도입했다. 해외금융계좌 신고 의무를 위반하면 ‘조세범 처벌법’ 제16조에 따라 신고 의무 위반 금액이 5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위반 금액의 100분의 13~100분의 20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국세청의 해외금융계좌 위반 리스트는 짧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국세청 발표에 대해 조정호 회장 측은 해당 해외금융계좌가 공동상속인에 의해 ‘이미 신고가 된 것으로 착각’했으며, 국세청 공시 관련 해외금융계좌는 2019년 재판에서 벌금 20억원을 선고받는 등 이미 법적 조치가 끝났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또한 지난 4월 고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 해외금융계좌의 상속세 부과에 불복하는 재판의 대법원 판단이 있었는데, 이 행정 소송이 끝나면서 명단 공개가 늦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정호 회장 측의 해명에는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조정호 회장은 지난 6일 기준 메리츠금융지주 지분 51.25%를 보유한 9조8330억원대 주식 부자다. 10조원을 넘는 주식 부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다음이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과거 고액 부자들 자산관리를 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슈퍼 부자가 세금 관련, 특히 형사 소추될 수 있는 해외금융계좌 관리를 소홀하게 한다는 것은 너무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필자 경험에 부자의 돈에 대한 행태는 단 1원도 회계가 불확실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물론 필자의 생각은 추정이지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해외금융계좌 신고 위반 사건은 복잡한 역사가 담겨있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한창 고통받던 1999년 12월 스위스 은행 계좌를 개설해 8500만달러를 입금했다. 그는 그해 4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여섯 달 뒤 탈세 혐의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해외재산 은닉은 그사이 발생했다. 조 선대회장은 2002년 병원에서 숨을 거두기 전 사재 1000억원을 사회 환원했는데, 해외재산 은닉과 사회 환원 행위가 상충하고 일관성에 벗어나 의문이 있다. 이후 남은 스위스 비밀계좌 잔액은 조 선대회장의 부인인 김정일 여사 사망 후 자식들인 5남매에 분배됐으며, 2017년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부인이 상속재산을 신고하면서 스위스 비밀계좌가 세상에 알려졌다.

한진가 해외 재산은닉에 활용한 비밀계좌와 관련하여 세무조사에 들어간 국세청은 2018년 4월 한진그룹 일가에 852억원의 상속세를 부과했다. 이에 한진그룹 일가는 지루한 상속세 불복 행정 소송을 이어 오다가 지난 4월 대법원 판결로 일부 승소하며 세금은 440억원으로 줄었다. 해당 재판의 쟁점은 조 선대회장 사망 직전인 2002년 4월 스위스 비밀계좌에서 5000만달러가 사전 인출됐는데, 이 금액이 상속재산인가 하는 것이다(복잡한 법적 분쟁 내용은 생략한다). 2020년 1월 국민일보가 단독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인출한 5000만달러를 ‘누가 빼냈으며, 어디로 송금했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나온다. 이후 어디에도 이 돈의 행방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국세청은 2018년 4월 사라진 5000만달러를 포함한 상속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부과했고, 이에 대해 불복한 한진가 상속인들이 기나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5000만달러는 추정 상속재산이므로 상속세를 부과할 수 없고, 그러므로 사기·부정 행위(공소시효 15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조정호 회장이 주장하는 법적 위반 문제가 해소된 해외금융계좌 부분은 5000만달러를 제외한 잔액으로 남은 3500만달러이다. 당연히 사라진 5000만 달러의 소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세청은 한진가 상속세 분쟁이 마무리된 지난 4월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이 지나서야 조정호 회장 등의 해외금융계좌를 신고 위반으로 공개했다. 조정호 회장 측 해명처럼 국세청이 행정 소송이 완결된 계좌를 (괘씸해서?) 굳이 중차대한 법률 위반으로 공개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조정호 스위스 비밀계좌, 그것이 알고 싶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한편 국세청이 공개한 조남호와 조정호의 해외금융계좌 신고 위반 금액은 약 800억원으로, 2020년 당시 환율 기준 600억원과는 200억원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시점의 환율 차, 최초 인출 시점부터의 이자를 고려하면 5000만달러의 원화 환산 금액은 상당히 증가했을 것이다. 국세청이 제공한 해당 계좌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는 가운데 신고 위반한 해외금융계좌의 재원이 과거 사라진 5000만달러인지 아닌지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사기·부정에 의한 상속세 분쟁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