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데자뷔, ‘트럼프 2기’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세상은 거침없이 1996년 이전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소련이 무너지고 일본의 버블이 꺼지고 바야흐로 중국이 세계화의 총아로서 세계의 공장이 되기 직전이다.
타이완에는 대략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장제스와 함께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사람들, 타이완 원주민들, 타이완에서 태어난 본토인 2세들, <남국재견>은 그 2세들의 이야기다. 판이 깨지고 블록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들로 가득 찬 지금과는 달리 세기말적 징후가 배어있다.
그 저변에는 제1세계로부터 튕겨 나와 중국에 밀려나던 고립감과 세계 소외가 충돌하는 부조리에 뒤척이는 인간 실존의 아우성이 있었는데, 요즈음 TSMC가 상징하듯이 제1세계로의 복귀와 재편입을 화려하게 선언하고 있는 타이완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중국·독일과 함께 세계화의 과실을 향유하던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국운이 쇠퇴하고 있다는 불안한 징후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소식은 두 줄기 빛과 같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국재견>은 우리가 곧 맞닥뜨릴 수도 있는 사정변경에 참고할 만하다.
1996년 당시 타이완인 혹은 몇 년 후의 홍콩 시민들에게는 동쪽 바다 건너 미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서쪽 바다 건너 중국 본토로 돌아가든지 모두 가능한 선택지였음에도 그들 중 일부는 타이완섬 내륙으로 파고든다. 그들 부모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을 피해 왔듯이, 부상하는 중국에서 한몫 벌기보다는 오히려 섬 안쪽 어디에선가 가라앉으며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든 그해에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이등휘를 마지막으로 장씨 가문의 오래된 독재는 종지부를 찍는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아시아에서는 유례없이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하자 “우리는 왜 할 수 없는가?” 하며 부러워하던 타이완 지식인들의 탄식이 새삼스럽다. 물론 요즘엔 우리가 오히려 “왜 TSMC처럼 엔비디아처럼 하지 못하는가?” 되묻는 시절이다.
이 영화의 매력적인 장면 중에 아비와 마화가 오토바이를 타는 4분 정도의 롱테이크는 빼놓기가 어려운데, 우리는 그들과 같이 유영하며 감각과 역사가 분해돼서 재처럼 뿌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해인가 증산역에서 작은 열차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아우라지역에 내린 적이 있다. 역 근처에 있던 여인숙은 마치 세상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마지막 여관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남국재견>의 도입부에 가오 등이 작은 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가오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로 보인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은 달리 보면 죽음을 향한 진군 아니면 끝없는 위로 같은 것이다. 가오가 그의 계획대로 상하이에서 음식점을 열어 성공했더라도 그는 결국 간이역에 멈춰 서서 마을로 찾아들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미국에서도 트럼프와 해리스의 승부를 결정하는 투표가 시작되었다. 1996년 타이완 총통 선거처럼 숱한 반칙과 편법으로 얼룩진 격렬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쨌든 승자는 나올 것이고 미국의 운명은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런저런 논의가 있지만, 경향은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기 때문에 그의 승리를 전제로 다음과 같은 상황 전개를 그려본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전쟁처럼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종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필리핀 수빅만의 미 해군 기지는 예전처럼 활기를 띠며 복원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평양에 미 대사관 혹은 연락사무소 설치가 재추진될 것이다.
냉전 시대 소련을 봉쇄했듯이 중국과 러시아가 그 역할을 바꿔 이번에는 중국을 장막 안에 가두게 하는 것인데, 가장 큰 문제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이다. 이란이 전쟁 상황에서 군사 전략적 판단을 함에 있어서 종교 지도자의 무력함을 어느 정도 드러냈기 때문에 네타냐후는 공세를 멈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란에 친미 정권이 들어선다면, 미국의 대중국 봉쇄(러시아·이란·인도·필리핀·타이완·한반도로 둘러싸인)는 완성되고 중국은 결국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무엇보다도 미국 내부의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유명한 군·산 복합체가 지난 몇 년간 누렸던 수익률 폭발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과 이란의 반격이 어느 정도일지? 우리는 완전한 불확실성의 시대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민간투자를 위축시킬 것이고, 세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실업과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달리 말하면, 3차세계대전으로 상징되는 전쟁위험은 낮아지겠지만 대공황으로 상징되는 경기침체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공언하는 보복관세는 1920년대 대공황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고, 블록화와 관세장벽이 에스컬레이트하는 불협화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바늘구멍만 한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이민족의 침략에 맞선 조상들의 의기와도 맞닿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