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차트와 김민기의 ‘아침이슬’ [김범준의 세상물정]

2024-07-29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가수 김민기(왼쪽). /사진=학전, 이미지투데이

차트 상위에 오르는 인기 있는 노래는 시대가 변하면 바뀐다. 오래전 음악이 현재의 유행 음악과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느낌으로 알지만, 긴 세월을 거치면서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바뀐 것인지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출판된 한 논문(DOI: 10.1038/s41598-024-64571-x)이 바로 이 문제를 다뤘다. 1950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미국 빌보드 차트 상위 5곡, 모두 1131개의 대중 음악곡을 데이터 과학의 정량적인 통계 기법을 이용해 살펴봤다.

다양한 음색과 음역을 가진 여러 악기의 연주가 가수의 음성에 실린 선율과 함께 진행되며 한 곡의 음악을 이룬다.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는 정말 다양하다. 베이스 기타나 드럼 연주는 전혀 떠오르지 않아도, 가수가 부른 노래의 선율을 기억하면 우리는 그 음악곡을 안다고 생각한다. 리드보컬의 역할을 맡은 가수가 목소리로 표현하는 주요 선율이 우리가 어떤 음악곡을 좋아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논문에서는 73년 동안의 차트 상위 음악에 담긴 선율(멜로디)을 분석했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마델린 해밀턴(Madeline Hamilton)이 인터넷 사이트 깃허브(Github)에 공개한 미디(MIDI) 형식의 멜로디 파일을 내려받아 나도 컴퓨터에서 재생해 봤다. 멋지게 완성된 음악에서 추출한 주선율의 멜로디만으로는 원곡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느끼기에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실로 복잡다단한 음악의 구성요소 중 가장 중요한 멜로디에 주목하면 정량적인 데이터 분석이 그나마 가능해지는 장점이 있다. 단선율의 멜로디에도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논문에서는 한 곡의 악곡에서 2개에서 4개의 멜로디 파일을 만들고 그 안에 담긴 정보를 먼저 16개의 서로 다른 지표로 측정했다. 16개의 지표 중에는 다른 지표와 상관관계가 상당히 강해서 독립적인 정보로 보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걸러내고 남은 모두 8개의 지표를 논문 저자는 분석에 이용했다. 8개 지표 중 절반은 음의 높낮이인 음고(피치)와, 다른 절반은 리듬(박자)과 관련된다. 음고의 복잡성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서양 표준 음계의 24음과 멜로디에 담긴 음의 음고 사이의 일치 정도, 음고 변화의 표준 편차, 이어지는 두 음 사이의 평균 음높이 차이, 그리고 멜로디 진행에서 지금까지의 음고의 변화로부터 다음에 이어지는 음높이를 예측하고자 할 때의 예측 불가능성의 정도를 이용했다. 또, 리듬의 복잡성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단위 시간당과 마디당 음표의 개수. 음표 사이 시간 간격이 일정한 정도, 그리고 지금까지의 리듬 진행으로부터 다음에 이어지는 리듬을 예측할 때의 예측 불가능성의 정도를 이용했다. 8개의 지표를 이용해서 멜로디의 복잡성이 1950년부터 현대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같은 해 상위에 오른 다섯 곡에 대해서 이들 지표의 평균값을 구하고 나면, 각 지표의 값이 73년 동안 해마다 이어지는 8개의 시계열 데이터를 얻게 된다. 70여년의 시간 동안 인기곡의 멜로디 특성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음악이 출현한 혁명적인 사건이 언제, 그렇게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정량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것이 이 논문의 주된 연구 목표다.

논문에서 밝힌 음악의 변천사가 무척 흥미롭다. 먼저 멜로디의 복잡성은 1950년대에서 지금까지 조금씩 꾸준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음고와 리듬의 예측 불가능성을 측정한 지표는 이 기간 약 30%나 감소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멜로디의 진행이 좀 더 단순해졌다는 결론이다. 논문에서 저자는 멜로디의 복잡성 감소가 음악 자체가 단순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현대의 음악곡은 과거와 달리 더 다양한 디지털 음원을 이용해 더 풍부한 음색을 담고 있으며, 랩처럼 선율의 음고보다 가사 등 다른 정보가 중시되는 음악 장르의 경우에는 멜로디가 단순하다고 악곡 자체가 단순하다는 것을 뜻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멜로디의 복잡성 감소는 멜로디를 제외한 음악곡의 다른 구성요소의 복잡성 증가와 함께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논문 연구자는 강조한다. 우리의 뇌가 음악을 감상할 때 감당할 수 있는 악곡 복잡성의 상한이 있다면, 멜로디가 아닌 다른 음악의 구성요소가 복잡해지면서 이를 더 단순한 멜로디로 상쇄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논문은 8개 지표의 시계열 데이터로부터 음악의 변천사에서 급격한 변화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데이터 과학의 기법으로 찾는다. 1975년과 2000년이 바로 대중음악 혁명의 시기였다. 논문에서 저자는 1975년의 대중음악 혁명은 당시의 디스코와 록 장르의 부상, 2000년의 혁명은 힙-합 장르의 부상에 의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완성된 음악 한 곡 전체의 풍부한 특성을 그 안에서 진행되는 단 몇 멜로디 선율의 특성으로 파악하는 것은 복잡한 대상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라는 비판도 물론 가능하다. 매년 차트 상위에 오른 딱 5곡의 음악을, 그것도 미국의 인기 순위만을 이용했다는 한계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대중음악이라는 문화상품이 장기간 어떠한 패턴으로 변화해 왔는지, 커다란 변화가 급격히 일어난 대중음악 혁명은 언제였는지를 객관적인 데이터와 정량적인 통계 기법을 이용해 분석해 낸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무지개를 낱낱이 분해해 풀어헤치는 과학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과학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드러난 아름다움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기 때문이다. 김민기가 직접 부른 <아침이슬>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 귀 기울여 들었다. 음악의 변천사를 정량적인 과학으로 분석한 이 논문을 읽은 뒤에도 여전히 내 눈가에는 눈물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