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임씨의 “인문학이란…”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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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임씨의 “인문학이란…”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 최준영 책고집 대표
  • 승인 2023.05.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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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인문학 강좌에서도 MT를 간다. 2006년에는 강화도와 북한산으로 갔고, 2007년엔 강원도 홍천강으로 갔다. 딱히 책정된 예산이 없으니 MT는 그야말로 소박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첫해 강화도와 북한산에 갈 때는 우리 집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팔순의 어머니와 직장생활로 바쁜 아내가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서 내 손에 쥐여줬다. 김밥이 담긴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기차 타고 서울역으로 올라갔더니 다시서기센터의 실무자가 승합차를 몰고 마중 나와 있었다. 승합차 한 대와 승용차 한 대가 우리의 이동 수단이었다. 강화도에서 김밥을 나눠 먹으며 노숙인 선생님들은 연신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북한산 산행 때는 어머니가 사탕을 한 움큼 싸주셨는데, 그 역시 산행에 큰 도움이 됐다. 이듬해 한사코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싶다는 분이 있어서 집으로 초대해 어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를 먹고 돌아가기도 했다. 10여 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당시 MT를 갔던 분들이 문상을 왔다.

2007년에는 제법 규모를 갖춘 MT를 갔다. 첫해에는 참석하지 않던 교수들이 함께했고, 학생들 또한 1, 2기 졸업생과 3기 재학생까지 20여 명이 동행했다. 얼추 30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함께 움직였으니 제법 단체여행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홍천강 도착 후 선생님들은 강 구경과 공놀이에 여념이 없었고, 나와 복지사들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돼지갈비 굽기 담당이었다. 딴엔 정성스럽게 구웠고, 얼추 먹을 만하다 싶을 때 선생님들을 불러 모았다.

“고기 다 구웠어요, 어서 와서 드세요.”

열 명 정도가 야외식탁 앞에 모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구운 돼지고기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서운했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안 드시느냐고? 잘 익었으니 어서 드시라고. 선생님 중 한 명이 나서서 저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라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치아가 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오랜 노숙 생활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쯤 알고 있었지만, 치아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

이후 강의 때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수강생에게 질문을 던진다. 가난이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치고 들어오는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 아느냐고. 묻곤 스스로 답을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치아라고. 치과 질환에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고, 큰 액수가 들기 때문에 오랜 기간 방치하는 경우가 많고, 그럼 결국 섭생에 문제가 생긴다. 노숙인들이 안주도 없이 ‘깡’소주만 마시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은 순식간에 취기를 불러온다. 해 질 무렵부터 시작한 술판이니 다들 취기가 오를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야외로 나왔으니 분위기를 띄울 필요가 있었다. 장작을 쌓고, 불을 지피자 그럴싸한 캠프파이어 분위기가 되었다. 둥글게 둘러서서, 혹은 막걸리를 마시고, 혹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순간 어디선가 난데없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인문학이란 대체 왜 공부해야 하는 겁니까?”

일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여기저기서 힐난조의 말들이 날아들기도 했다. 좋은 분위기 깨지 말라는,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따위 질문을 하느냐는, 그런 질문은 강의 시간에나 하라는 투덜거림이었다.

서너 명의 교수, 10여 명의 1, 2기 졸업생, 모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분위기 깨지 말자는 암묵적 합의였을 수도 있겠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3기 재학생이었다. 교수들도 졸업생도 외면한 질문에 인문학 과정에 참여한 지 불과 3개월밖에 되지 않은 3기 재학생이 선뜻 답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우선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다소 길고 지루한 얘기였지만, 아무도 토를 달거나 말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서 평소 궁금해했던 인문학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한몫했을 것이었다.

노숙인 임씨의 안타까운 사연과 인문학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자신을 제주도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건물이 있었다. 노름에 빠지는 바람에 재산 다 날려버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엔 노동판을 전전했는데, 일하다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노동일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술에 의존했고, 결국 거리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도 가족을 잊을 수 없어서 틈나는 대로 아내에게 전화한다. 아내와 금실도 좋았다. 자녀가 무려 4명이나 된다.

거리 생활하며 아내에게 거짓말도 많이 했다. 곧 성공해서 돌아갈 거라고, 곧 큰돈 벌 텐데, 지금 좀 급하니 돈 좀 부쳐달라고. 여러 차례 속은 아내는 더 이상 돈을 보내지 않았고, 임씨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동안 아내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전화하면 헤어지자는 말만 반복하는 게 싫었다. 그렇게 거의 남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이후 다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도 통화했다. 인문학 강의 들으면서 나 자신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아내와 지난 주 통화에선 그동안의 거짓말을 털어놓으며 사과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여보, 사랑해”라고 고백했다.

16년 전에 만나 달달하게 연애하고 결혼한 뒤 아이를 넷이나 낳고 살았는데, 생각해 보니 연애 기간에도, 결혼생활 중에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무뚝뚝한 성격이라 그랬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인문학이라는 것이 뭔지, 나도 모르게 “여보, 사랑해”라고 말하게 되더라.

인문학의 학문적 의미는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술 취해 거리에 쓰러져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밥도 주고 지식도 주고, 생각이라는 걸 하게 해준 게 인문학이다. 무엇보다 내게 인문학은 나 같은 개차반의 삶을 사는 놈 입에서 16년 동안 아이 넷 낳고 살면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도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덕분에 그동안의 미움과 걱정도 좀 내려놓게 되었나 보다. 다음 달에 나 만나러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인문학 강의 들은 뒤 솔직해졌고, 고백했고, 덕분에 아내를 만나게 됐다.

다소 긴 이야기였지만 다들 경청해주었다. 임씨의 얘기가 끝날 무렵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문득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자리를 떴다. 막상 아내에게 전화해서는 끝내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2005년 노숙인 인문학을 시작하면서 교수들과 여러 차례 세미나를 했다. 인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교수들이 우선 인문학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었다. 여러 책을 읽었고,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지만, 정작 인문학의 의미에 대해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실천 속에서 차차 익히고 느끼고 깨닫게 되리라 믿으며 강좌에 참여했다. 그로부터 3년의 기간이 지난 뒤, 홍천강 MT에 와서 어떤 교수의 설명도 아니고, 자활의 길을 걷고 있는 졸업생도 아닌 3기 재학생의 입을 통해 인문학의 의미를 듣게 되었다.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했고, 그 어떤 교수에게서 듣지 못했던 인문학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인문학은, 16년 만에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게 해주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하고, 표현하지 않았던 말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었다. 생각의 힘을 키우고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해주고, 다시 희망의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노숙인 임씨는 그 뒤로 가족과 재회했고, 노숙 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속된 욕망을 버리고 거짓의 삶을 내던지고, 다시 성실하고 근면한 가장으로 돌아갈 것을 몇 번이나 다짐하고 다짐한 끝에 아내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무엇보다 16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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