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남긴 진짜 교훈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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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남긴 진짜 교훈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4.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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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최근 검찰은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으로 국내에서만 50조원, 28만명의 대규모 투자 피해를 초래하고, 폭락 전 처분으로 46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신현성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기소는 가상화폐의 증권성을 인정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긴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서울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신씨를 기소한 구체적 혐의 내용은 자본시장법상 시기적 부정거래·공모 규제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배임·횡령,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특정금융정보법 위반, 배임증재, 업무상 배임 등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자료1
자료1

신씨는 스테이블코인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공동 창립자이다. 사실상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는 지난 2월 미국 증권위원회(SEC)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고, 뉴욕 검찰도 증권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인터폴 적색 수배가 발부된 권 대표는 해외 도피 중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혐의는 여권을 위조한 공문서위조 혐의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하는 ‘증권성’에 대해서는 공식 재판을 개시하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국내에서 법원은 지난해 12월 신현성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올해 2월 몰수보전 청구 항고를 기각하며 루나 코인은 금융투자상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권 대표도 미국 법원에 미국 SEC가 부적절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소송 기각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자료2(출처=NBER working paper)
자료2(출처=NBER working paper)

국내·외 뉴스를 보면, 테라·루나 코인은 국제 금융 사기단의 흉악한 엉터리 범죄 도구로 인식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최근 테라·루나 코인 사태를 뱅크런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려는 연구논문이 권위 있는 미국 경제 조사 기구인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 발표되어 눈길을 끈다. <테라 루나 붕괴, 자금이탈(RUN)의 해부>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 원인을 엉터리 사기로만 간주하지 않고 테라·루나 코인 생태계 붕괴를 초래한 구조적 결함을 찾고 있으며, 블록체인 생태계에서의 뱅크런 발생에 대한 일반적 교훈을 찾기 위해 분석을 시도했다.

자료3(테라·루나 코인 시장가치 추이. /출처=NBER working paper)
자료3(테라·루나 코인 시장가치 추이. /출처=NBER working paper)

테라·루나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러·루나의 독특한 구조를 알아야 한다. 독특하다는 표현은 테라·루나 코인은 유사한 스테이블코인과 전혀 다른 가상화폐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토큰과 달리 코인은 독립된 거래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스테이블코인은 가상 세계에서 투기보다는 거래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가상화폐로 안정적 가치 유지가 핵심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적 가치 유지 체제는 과거 화폐가치를 금이나 달러 등 안정적 가치물에 고정하는 고정 환율 체제와 유사하며 이를 ‘페깅’(Pegging)한다고 표현한다. 대개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기축 통화인 달러 가치에 1대 1 대응한 가치를 가지도록 하는 달러 페깅시스템을 가지는데, 이를 위해 테더·서클 등의 스테이블코인은 같은 가치의 미국 국채 등을 자산으로 보유한다. 그러나 이들 자산 보유 방식과 달리, 달러 가치 페깅 방식에서 테라·루나 코인은 세계 최초로 알고리즘 방식을 채택했다. 루나는 본래 스테이블코인이고 온라인 거래를 위한 쌍으로 테라 코인을 발행한다. 이 둘 사이의 교환 거래(또는 재정거래, arbitrage)를 통해 테라의 가치를 1달러로 고정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테라·루나 교환 거래 시스템은 내부자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작동 방식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가치 유지를 위해 끊임없는 교환 거래가 일어나야 하므로 스테이블코인의 수요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자료4(앵커와 다른 가상화폐 예금이자율 비교. /출처=NBER working paper)
자료4(앵커와 다른 가상화폐 예금이자율 비교. /출처=NBER working paper)
자료4-1(앵커의 예대 이자율 추이. -NBER working paper)
자료4-1(앵커의 예대 이자율 추이. -NBER working paper)

테라폼랩스는 수요 확장을 위해 테라를 저축하면 고율(19.5%)의 이자를 지급하는 앵커(Anchor)라는 저축·대출 제도를 운용했는데, 이것이 테라·루나 생태계 붕괴의 발단이었다. 앵커의 예금이자율은 타 가상화폐 예금이자율보다 3~4배가 높았다. 초기에는 대출이율이 예금이율을 감당할 만큼 높았으나 가상화폐 가격 하락으로 인기가 떨어지며 2022년 들어서 대출이자율이 예금이자율 이하로 하락하자 테라폼랩스가 예대 역마진을 보충해야만 했다. 여기에 다른 가상화폐보다 차별적으로 높은 예금이자율은 테라 수요를 과다하게 키워, 테라 발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덕분에 테라·루나 코인의 시장가치는 지난해 5월 이전 시가 총액 500억달러까지 성장했으나(4월 9일 루나는 최고가 119.8달러를 기록했다), 테라·루나 교환 거래에 의한 가치 안정을 의심하는 테라 보유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료5(앵커의 진입률과 이탈률. -NBER working paper)
자료5(앵커의 진입률과 이탈률. -NBER working paper)

그런 가운데 같은 해 5월 7일 두 접속자가 3억7500만UST(달러에 페그한 테라 코인)를 앵커에서 빼냈다. 여기서 블록체인 시스템의 고유한 특성이 악영향을 미쳤다. 블록체인 시스템은 상호 거래 활동을 감시(monitoring)하도록 되어 있어, 최초 인출을 확인한 다른 보유자들도 추가 UST 인출에 나섰다. 결국 앵커로의 자금 유입률이 인출률을 밑돌며, 테라·루나 시스템이 구조적 붕괴를 시작했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블록체인의 특성이 가상화폐의 자금이탈을 가속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앵커에서의 자금이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고, 자료3에서 보는 것처럼 가치를 유지할 보유자산이 없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폭락하고 말았다.

자료6(예금 금액별 앵커 잔고 추이. -NBER working paper)
자료6(예금 금액별 앵커 잔고 추이. -NBER working paper)

일반 금융의 골칫거리인 부자와 빈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은 가상화폐 자금이탈 과정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자료6은 앵커의 금액별 예금 잔고 추이인데, 5월 7일 이후 고액 예금자들은 즉시, 지속해서 자금을 인출한 반면 소액 예금자는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료7(테라 폭락 후 예금 금액별 앵커 잔고 추이. -NBER working paper)
자료7(테라 폭락 후 예금 금액별 앵커 잔고 추이. -NBER working paper)

더욱 심각한 것은 주식시장에서 보이는 소액 예금자들의 이상 투자 행동이 테라·루나 사태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5월 13일 UST는 시가 총액 20억달러 이하였고, 가격도 0.2달러 이하였지만 소액투자자는 오히려 저가 매수(Buy the dip)에 나서며 앵커의 저축 잔고를 늘렸다. 투자자의 투기적 성향은 금융상품이든 가상화폐든 가리지 않는다.

자료8(출처=www.terra.money)
자료8(출처=www.terra.money)

NBER 보고서는 테라·루나 사태가 특정 일부 세력의 가격 조작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인이 작동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또한 보고서는 테라·루나 시스템을 루나를 기반으로 한 무한만기의 전환사채로 해석할 수 있으나, 테라·루나의 복잡한 작동원리와 이해 부족, 블록체인 시스템의 특성과 정보의 비대칭성 등이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며 결국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결국 테라·루나 사태는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고 사기와 횡령 등 법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에 횡령, 사기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피해자를 위해 응당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테라·루나의 독특한 가치 유지 시스템은 단순 사기를 넘어 가상화폐 시장에서 연구해야 할 과제와 교훈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테라·루나는 현재 새로운 버전으로 바뀌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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