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잣돈 130만원, 그래 ‘사람이다’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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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잣돈 130만원, 그래 ‘사람이다’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 최준영 책고집 대표
  • 승인 2023.02.20 16: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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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알게 된 건 노숙인 인문학(성프란시스대학)에서였다. 성프란시스대학의 1기생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김씨는 과정 수료 후 1년여 만에 돌아가셨다. 굳이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김씨 덕분에 노숙인 인문학 강좌의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또한 김씨 덕분에 노숙인도 사람이라는 것, 돈이 많으나 적으나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부시립병원에 입원 중인데, 문병 한번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그해 4월 어느 날 김씨를 만나기 위해 동부시립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김씨가 선뜻 나를 이끌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손에는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향한 곳은 병원 옥상에 있는 간이 휴게실이었다. 거기서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수십 개의 알약이 가방 가득 들어 있었다. 병원 놈들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강압적으로 약을 먹이고 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었고, 그래서 먹는 시늉만 하고 뒤로 빼돌려 놓았다는 것이었다.

내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자기 대신 담당 의사를 만나서 자신의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자기는 속일 수 있어도 교수님은 함부로 속이지 못할 것이니 병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의사를 만났다. 명백한 암 환자였다.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되어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가 약을 먹지 않고 숨겨두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김씨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힘없는 목소리였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맞춰서 책 한 권 사서 들고 병원으로 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이었다. 김씨는 이미 죽음을 예감한 듯 내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려 3시간 가까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한때는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어느 날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뒤 깨어나 보니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돈도, 가족도 모두 잃고 거리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50대와 60대를 고스란히 거리에서 살았다. 문병을 와준 내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 문병을 부탁할 사람이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한 사람이라도 연락할 수 있어서, 한 사람이라도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말년의 김씨를 행복하게 해준 건 뜻밖에도 인문학이었다.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덕분에 뒤늦게 지나온 삶을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였다. 김씨의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생략한 채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헤어진 가족을 찾고 싶다는 말이 나오려나 싶었지만, 뜻밖에도 김씨는 “인문학 과정을 함께 했던 1기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라고 했다.

며칠 후 김씨의 마지막 소원을 전하며 노숙인 인문학 강좌의 1, 2기 졸업생들과 3기 재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딴엔 체육대회를 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은 죽음을 앞둔 김씨의 소원을 들어주는 의미였다. 대부분 참여했다. 복수가 차올라 걷기도 힘든 김씨는 동료들과 후배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혼신의 힘을 다해 한강 둔치까지 나와 어쩌면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는 말을 힘겹게 이어갔다.

“지난번 어버이날 최준영 교수가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들고 병원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책을 통해 새삼 확인했습니다. 인생이라는 학교에 와서 잘 배우고 갑니다. 말년에 여러분과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진작 공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아쉽거나 두렵지는 않습니다. 제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의 부음이 들려왔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상주 역할은 내 몫이었다. 보통 가족이 없는 행려자나 부랑인이 죽으면 곧바로 화장터로 보내는 게 보통이지만, 병원 측에 부탁해 하룻밤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병원 장례식장의 가장 작은 장소, 영정 앞에 식탁 두 개 정도 놓을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을 쓰는 데도 최소 3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게 장례식장의 설명이었다. 시신에 염을 한 뒤 수의를 입혀야 하고, 문상객을 맞기 위해선 최소한 1식 3찬에 국을 기본으로 주문해야 했다. 고심 끝에 강행하기로 했다. 일단 비용은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거리의 삶을 살던 노숙인의 죽음에 누가 문상을 오려나 싶었다. 우선 경찰의 협조를 받아 가족들을 수소문했다. 마침내 아들과 누이동생을 찾아냈다. 허사였다. 연 끊긴 지 오래된 사람이라면서 한사코 방문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을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하는 건 위법한 일이라기에 뭐라 말을 전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대신 인문학 과정의 동기들과 후배들이 모였다. 그걸로 됐다 싶었는데, 밤이 늦어지면서 수십 명씩 문상객이 줄을 이었다. 얼핏 행색만 봐도 어떤 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느 상갓집 분위기와 다를 바 없었다. 밥과 국이 오가고, 술병이 드나들고, 이따금 고함과 곡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특이한 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오는 사람마다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것이었다. 시늉만 하거나 형식적으로 우는 게 아니었다. 어찌나 절절하게, 어찌나 서럽게 통곡하던지 뒤늦게 찾아온 유가족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상주 역할을 했던 나는 덩달아 슬픈 표정으로 줄을 잇는 문상객을 맞이해야 했다. 인문학 과정에 참여했던 한 분이 내게 그 통곡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처지였던 김씨의 죽음은 곧 자기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이 죽은 것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다시 고민은 비용이었다. 기본이 300만원 이상인데 거기에 술까지 더해졌으니 훌쩍 400만원은 넘어섰을 것이었다. 문상객을 맞으면서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을 꼬박 지새운 뒤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로 가는 버스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지친 몸으로 화장 절차와 산골까지 마친 뒤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길에 인문학 과정의 실무를 맡았던 사회복지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돈이 들어올 것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비치했던 부의함에서 무려 130만원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건 130만원이라는 액수가 아니었다. 여느 부의함처럼 넣은 이의 이름이 적힌 봉투들이 나온 게 아니었다. 꼬깃꼬깃 접혔던 흔적이 역력한 천원짜리, 오천원짜리, 만원짜리 지폐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었다.

밥 한 끼 얻어먹을 심사로 들른 줄로만 알았다. 술 몇 잔 얻어 마실 기회라 생각하고 우르르 몰려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잘 데도 없으니 차라리 시간이나 죽이자고 밤새 기웃댄 것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게 그게 아니었다. 그제야 비로소 서럽디서럽게 울었던 이유,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소리쳐 통곡했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인생의 마지막 비상금이 아닌가. 꼬깃꼬깃 접힌 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거리에서 혹여 누구한테 빼앗길세라 꼬깃꼬깃 접어서 바짓단 안쪽에 넣은 뒤 박음질을 해두었던 돈이었을 것이다. 생의 최후 순간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 꺼내어 쓰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자기 몸의, 아니 이 세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돈이었을 것이다. 그걸 내놓았다. 그걸 꺼내서 기꺼이 먼 길 떠나는 김씨의 장례식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부의함에 넣었다.

거리의 삶을 사는 분들이 모아준 130만원. 그 돈은 내 평생 만져 본 돈 중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돈이다.

사람이다. 거리의 삶을 산다고 사람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어서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고 울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어쩌면 미리 겪은 자기 자신의 죽음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돈, 삶의 마지막 비상금을 기꺼이 꺼내서 동료 노숙인의 노잣돈으로 내어놓는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다. 가난한 사람들도 다 같은 사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노숙인 김씨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이 모아준 130만원 덕분에 내 부담은 한결 덜었다. 아니,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다. 사람이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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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 2023-02-21 15:02:20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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