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이석준 조합, 강력한 ‘정치 농협’ 신호탄일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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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이석준 조합, 강력한 ‘정치 농협’ 신호탄일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1.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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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금융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농협 조직의 방대함과 강력한 힘을 잘 안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수십 년 동안 자기앞수표는 대중의 주요 지불 수단이었다. 그 시절 시중은행 수표는 지방에서 결제 수단으로 쓰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농협의 수표는 지방에서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농협지점, 단위농협 등이 전국의 시골 구석구석까지 뻗어있는 농협은 빈틈없는 결제망을 형성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금융 결제망에 더해 유통망·지원조직으로 농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밀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을 자랑한다. 필자는 금융 거래 업무로 과거 농협 직원과 교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농협 조직에 관한 나름의 자부심을 표현했었다. 사석에서 그들이 전해준 귀띔에 의하면, 자부심의 배경은 선거에서의 영향력이었다. 방대한 농협 조직을 무시하면 어떤 후보든 선거에서 크게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자료1(출처-농협)
자료1(출처-농협)

지난해 6월 말 기준 농협의 규모를 살펴보자. <농업협동조합법>에 설립 근거를 둔 농협은 지역농협, 지역축협, 품목농협, 품목축협, 인삼협동조합 등 전국에 1115개가 분포하고 있으며, 조합원 수는 211만명에 이른다. 또한 농협중앙회는 교육지원과 상호금융업무를 맡고 있고, 산하에 농협경제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라는 2개의 거대한 지주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자회사는 농협중앙회가 4개, 농협경제지주가 17개, NH농협금융지주가 11개를 소유하고 있다.

자료2(출처-금융감독원 통계정보시스템)
자료2(출처-금융감독원 통계정보시스템)

지난해 6월 말 기준 NH농협금융지주는 총자산 규모 551조원으로 KB금융(727조원)과 신한금융(696조원), 하나금융(598조원)에 이어 네 번째이며, 점포 수는 국내외 1407개에 이른다. 점포 수는 신한금융과 KB금융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조합원과 금융지주의 직원, 고객 수를 고려하면 범농협 조직의 막강한 여론 형성 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수치를 보면 필자가 만난 농협 직원의 자부심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의 금융산업 장악에 대한 우려가 큰 가운데, 이처럼 막강한 네트워크를 가진 농협의 지배구조 변화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는 NH농협금융지주가 있다. 농협법 개정으로 2012년 출범한 NH농협금융지주는 1대와 6대를 제외하고 4명의 관료 출신 회장이 있었다. 여기에 7대 회장으로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모피아 인사 이석준 전 대통령실 국무조정실장이 선임되며, 그 배경과 의미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과거 모피아 실세로 평가받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등 톡톡히 실세 효과를 본 내부에서는 또 한 번의 실세 회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석준 회장 선정과 취임 과정에서 여론 동향을 보면, 좀 더 복잡한 이해관계와 정치 역학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석준의 등장은 현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이성희 중앙회장의 임기가 2024년 1월까지인데 현재 농협법에 단임으로 제한한 임기를 연임할 수 있도록 개정하기 위해서는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앙회의 100% 자회사인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개정법안 통과 지원을 위해 내부 인사였던 6대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이석준 전 국조실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28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에서는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농협중앙회장 단임제도는 2007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정대근 회장을 포함, 1988년 이후 역대 회장 3명이 구속되는 등 비리 온상의 자리로 지목되자 도입됐다. 농협 노조와 농민 단체가 연임을 위한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다. 다만, 회장 선출 투표권이 있는 조합장들은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3(출처-한국농정신문 2022.12.18)
자료3(출처-한국농정신문 2022.12.18)

둘째, 현 정권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이석준 카드’를 통해 방대한 농협 조직 확보로 간과할 수 없는 여론 조성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처럼 정부와 농협중앙회장의 이해관계 속에 이석준 회장 출현이라는 상황이 차기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주목되는 가운데, <한국농정신문>은 정부와 농협의 적극적인 교감을 보도했다. 윤석열 대선 캠프 총괄 상황본부장이었던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선대부터 농협과 유대가 깊고, 최상목 현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농협대학교 총장 경력을 가지고 있는 등 현 정권 인사들이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다양한 채널로 엮여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석준 회장의 취임은 자연스럽게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친정부 성향 인사로 바꿔 정부의 금융 지배력을 강화하는 첫 단추가 되었다는 평가다. 따라서 최근 당국의 금융지주 인사에 대한 잇단 압박으로 금융산업 노조가 관치금융이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의 행보와 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임종룡, 이팔성, 정은보 등 경제·금융 관료 출신 인사들이 어느 자리에 등극할지도 관심사다.

한편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농협에서 잔뼈가 굵은 농협 행정 전문가이며, 2020년 취임 이후 경영성과도 좋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에게 2023년은 정부 추천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영입으로, 본의든 아니든 농협 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 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처럼 제대로 일하는 일꾼에게 기회를 더 주자는 것도 일리가 있겠지만, 과거 단임제를 뼈아프게 수용한 거대 공룡 조직, 농협 역사에 새겨진 비리의 기억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특히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거대 조직이 수장의 연임을 위해 정치권의 이해와 결탁하는 모습은 곱게 보일 리 없다. 거대한 이권 사업에 정치가 개입하면 비리가 생성할 개연성이 증폭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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