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인문학, 어디까지 왔나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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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인문학, 어디까지 왔나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 최준영 책고집 대표
  • 승인 2022.11.2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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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제18기 신입생들이 지난 3월 19일 입학식을 마친 뒤 교수,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서울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제18기 신입생들이 지난 3월 19일 입학식을 마친 뒤 교수,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서울시

2005년 9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성프란시스대학)가 시작됐다. 이듬해 여러 지역의 자활지원센터에서 인문학 강좌를 개설했다. 2007년 인권연대 등에서 교도소 재소자를 위한 평화인문학 강좌를 개설했고, 2008년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도 교도소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를 시작했다.

속속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자 사회적 관심과 지원도 잇따랐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모 기업의 후원으로 설립·운영됐고, 이후 개설되는 인문학 강좌에는 공공기관의 지원이 줄을 이었다. 한국연구재단이 시민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서울시를 비롯한 각급 지자체와 대학에서도 인문학 프로그램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특히 경희대학교는 지역주민과 노숙인 인문학을 위한 별도의 기구인 실천인문학센터를 꾸린 데 이어,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통해 학생들의 인문소양 함양에 매진했다.

필자는 초창기 성프란시스대학에 참여한(2005~2008) 이래,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로 자리를 옮겨 강좌에 참여했고, 지금은 소속을 두지 않고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대학원, 자활센터, 복지관 등을 돌며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2019년 시작한 대전의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는 만 4년 동안 홀로 진행하고 있다.

2019년 경기도 수원에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수원시 등록 작은도서관)을 설립, 현재까지 연평균 50여 차례 인문·과학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에겐 어느새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덕분에 더 많은 곳을 돌며 강의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르신을 위한 인문학 강좌와 부랑인 시설의 인문학 강좌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거리의 인문학,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그야말로 거리에서 벌어지는 인문학 강의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부족하나마 거리의 인문학에서 추구한 인문 정신의 일단을 드러내려 노력했다.

◆ 인문학의 새로운 정의, 사람을 아는 것

인문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삶의 의미를 궁구한다는 일반적인 정의에서부터 우주의 질서를 탐구하는 것, 시민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덕목을 일깨우는 것,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한 학구적 태도, 생명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등의 정의가 있다.

노숙인 등 주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강의했던 필자는 인문학의 정의를 좀 색다르게 하는 편이다. 이른바 거리의 인문학을 위한 별도의 정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거리의 인문학을 정의하기 전에 거리의 사람들, 즉 노숙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다.

흔히 노숙인은 돈이 없는 사람, 집이 없는 사람, 직업이 없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거리의 인문학에 참여한 노숙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에겐 앞서 언급한 돈, 집, 직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 놓여도 연락하거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노숙인의 현실이다. 거기서 노숙인의 정의를 이끌어냈다. 노숙인은 돈, 직업, 집이 없는 사람이기 이전에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 노숙인, ‘사람이 없는 사람’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강의한다는 것은 노숙인에게 사람의 의미,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거리의 인문학을 통해 길어 올린 인문학의 새로운 의미는 그래서 ‘사람을 알기 위한 공부’라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과정으로서의 인문학 강의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사람을 뜻하는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사람 + 사이’ 즉, ‘사람 관계’를 의미한다. 삶이란 무수한 관계의 총체이면서 다양한 인연(因緣)의 과정이다. 이런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텍스트로는 먼저 신영복 선생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개 펴냄)을 사용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이식된 서양의 ‘존재론’을 극복하고 동양의 고유사상인 ‘관계론’을 회복하는 것이 21세기 인문학 시대의 요체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도 활용하였다. 이 책에서는 서구인의 ‘범주적 사고’와 동양인의 ‘관계적 사고’의 형성 과정에 깃든 역사 문화적 차이를 분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주요하게 다룬 주제는 ‘인연’이다. 인연이라는 말은 물론 불교에서 유래했지만, 거리의 인문학에서 본격 불교서적을 읽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실제 강의에선 인연의 의미를 쉽게 풀어낸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인용하곤 했다.

“불교에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인’이라는 것은 ‘근원’이라는 뜻으로 내적인 것이다. ‘인’이 내적인 것이라면 ‘연’은 외적인 것이다. 내적 조건인 ‘인’과 외적 조건인 ‘연’이 결합해서 모든 것이 생겨나고, 이 결합이 해소됨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중략) 한 인간의 삶은 인연에 지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것, 가까운 친구에게서 배운 것, 또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체험적 지식 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로 자기 자신 속에 축적되어 ‘인’을 만든다. 그 ‘인’이 ‘연’을 얻어서 그 사람의 희망이 되고, 행동이 되고, 결단이 되고, 길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그렇게만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 배우고 노력한 것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다.”(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에서)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성 중의 하나가 그것이다. 자신에게 ‘인’은 충만한데 ‘연’이 닿지 않아 일이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치고 ‘인’에 충실한 사람 드물다. 물이 차면 넘치게 마련이고, 달도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그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내 부족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연’을 맞을 준비가 된 사람이다. 거만한 사람은 외려 다가오는 ‘연’을 걷어찬다. 우쭐대느라 진정한 ‘연’을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것이 강의에서 강조했던 이야기이다.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인연의 소중함,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필요하다. 그래서 다루게 된 것이 사람의 특성 중에서도 결핍의 존재라는 주제다.

사람에겐 누구나 결핍이 있다. 결핍은 모든 사람의 문제이지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 결핍에 시달린다. 부자라고 해서 결핍이 없을 리 없다. 돈에 대한 집착이 그 외의 삶의 가치를 압도하는 데서 오는 정서적 결핍 역시 경제적 결핍 못지않은 심각한 결핍이다. 나이가 많은 분은 나이 그 자체가 결핍일 테고, 젊은이에겐 연륜과 경험이 결핍됐다.

◆ 인간의 역사, 결핍 극복의 과정

인간의 역사는 개인 혹은 집단이 결핍을 극복해 온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 역시 결핍을 극복한 사람이다. 결국 삶이란 내 안의 결핍을 마주하는 것이다. 결핍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진다.

강의 중 자주 인용했던 책으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있다.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 살아난 저자가 자신을 살린 동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끝없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 즉 삶의 의미를 성찰했던 것이 살아나게 한 힘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결핍에 대해 논하다 보면 자연스레 노숙인 스스로 강의에 참여하게 된다.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그로 인한 고립감, 좌절감, 회피 기제를 고백하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코드로서 관계와 인연, 결핍을 이야기했다. 이것만으로도 거리의 인문학에서 추구했던 강의의 방향과 의도, 목적이 드러난다. 다소 섣부른 감이 있지만 이제 결론으로 다가가 보자.

거리의 인문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소통이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 개인과 집단의 소통, 시민과 사회의 소통, 나아가 피상의 나와 내면의 나와의 소통. 거리의 인문학에서 소통의 방법으로 채택한 것이 독서와 글쓰기였다.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 사람이 만들어낸 변화는 실로 경이롭다. 다음은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다.

#. 2006년 가을,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노숙인 이씨가 자신의 거처인 쪽방에서 책 한 권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책을 모르고 살던 지난 세월이 후회됩니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이씨는 최초의 노숙인인문학강좌(성프란시스대학)의 1기 수료생이다.

#. 2007년 봄, 일군의 중년 남성들이 강원도 홍천강 변의 펜션에 모였다. 성프란시스대학의 졸업생과 수강생이 함께 한 MT 자리였다. 깊은 밤 누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16년 만에 아내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 같이 무뚝뚝하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온 건 인문학 덕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그런 것입니다.”

#. 2009년. 노숙인 출신 작가 안승갑씨는 11년간의 노숙 생활 경험을 수기로 발간했다. <거리의 남자, 인문학을 만나다>를 펴낸 안씨는 이후 노숙인 쉼터 등을 돌며 자신의 경험담이 담긴 잔잔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 2022년, 수원의 우만복지관에서 어르신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시작했다. 강좌의 이름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동네 인문학’이다. 강좌에 참여한 70대 중반의 여성 어르신이 눈물을 훔치며 소감을 들려줬다.

“왜 이제야 왔어요. 공부하는 재미를 이제 알겠어요. 뒷방노인 취급하지 않고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고마워요. 내년에도 또 했으면 좋겠어요.”

새삼 뭉클하다. 이 밖에도 거리의 인문학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차고 넘친다. 하나같이 뭉클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어느덧 ‘거리의 인문학’은 답답하고 갈증 나는 현실 사회에 훈훈한 향기를 제공하는 옹달샘이 된 듯하다. 실제 성과를 내기도 했고 다채로운 감동 스토리도 생산하고 있다.

덕분에 거리의 인문학은 날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노숙인으로 시작해, 자활참여자, 재소자, 여성 가장, 어르신, 탈학교 청소년, 미혼모, 가난한 어르신 등 소외계층 전반을 아우르는 한편, 기업체 CEO, 임직원, 주부, 공직자 등 사회 전역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거리로 나선 인문학이 우리 사회 곳곳에 인문학의 향기를 흩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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