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때맞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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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의 ‘때맞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09.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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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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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 가족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거실 한쪽에 두고 여러 개의 LED 꼬마전구가 전선으로 길게 연결된 조명기구로 트리를 빙 두른다. 거실 불을 모두 끄고 조명기구의 스위치를 올리면 많은 작은 전구들이 동시에 깜빡이는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내 어린 시절부터 길게 이어진 추억어린 장면이다. 남아시아와 북미에 서식하는 반딧불이 중에는 여러 마리가 함께 모여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기 조명처럼 동시에 때를 맞추어 반짝이는 장관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콘서트에서 교향악단의 연주가 끝나면, 그리고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 후의 커튼콜 때, 여러 사람의 박수가 때를 맞춰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계속 이어지는 것을 들을 때가 간혹 있다. 이처럼 여럿이 때를 맞춰 함께 박수나 빛의 깜박임 같은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동기화’(同期化), 영어로는 시간(chrono-)을 같게(syn-) 한다는 뜻을 담아 ‘synchronization’이라고 부른다. 요즘 내 주변 과학자들은 우리말로 ‘때맞음’이라고 한다. 때맞음을 보여주는 현상은 정말 많다. 여럿이 왼발 오른발, 발걸음을 맞춰 행진하듯 걸어가는 것도 때맞음이고, 반주의 박자에 맞춰 노래하는 것도,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연주자가 템포를 조절하는 것도 하나같이 때맞음이다.

당연한 것보다 신기한 것이 과학의 대상일 때가 많다.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여럿이 때를 맞추는 것은 당연해서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지휘자 없이도 때맞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 신기해서 연구자들의 주된 연구 대상이 된다. 반딧불이의 때맞음에도 지휘자가 없고, 교향악단의 연주에는 지휘자가 있지만, 연주가 끝난 후 청중 박수의 때맞음에는 따로 지휘자가 없다. 음료수 캔 두 개 위에 널빤지를 올리고 그 위에 올린 메트로놈 여럿이 만들어내는 때맞음에도 이들을 지휘하는 지휘자 메트로놈은 없다. 외부의 지휘자 없이 저절로 때맞음이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표준적인 이론 모형이 있다. 일본 물리학자 요시키 구라모토가 1975년 제안한 ‘구라모토 모형’(Kuramoto model)이다.

“모형의 목적은 측정 데이터를 정확히 맞추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 모형의 목적이다.(The purpose of models is not to fit the data but to sharpen the question,)” 미국 수학자 사무엘 카를린(Samuel Karlin)이 한 멋진 말이다. 때맞음을 설명하는 구라모토 모형도 그렇다. 오래전 구라모토 모형의 등장으로 때맞음에 대한 모든 과학적인 질문에 대한 정량적인 답변이 가능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때맞음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질문이 더 깊고 풍성해졌고, 더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질문이 구라모토 모형의 출현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도 많은 과학자가 구라모토 모형을 기반으로 한 여러 변형 모형을 가지고 활발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물리학계에도 때맞음을 연구하는 통계물리학자가 많다.

반딧불이, 메트로놈, 박수치는 사람처럼 일정한 방식으로 규칙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떨개’(oscillator)라 한다. 구라모토 모형은 여러 떨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간에 따라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현상론적으로 때맞음을 설명하는 표준 모형인 구라모토 모형의 수학적인 얼개는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고등학교 수학의 미분과 삼각함수만 알아도 왜 이 모형이 때맞음을 설명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이 자꾸 수식을 이용하는 이유는 쉬운 설명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꾸로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물리학에서 수식을 자주 이용한다. 한 개의 짧은 수식이 글로 적는 긴 설명을 대신할 수 있을 때도 많다. 딱 한 줄 수식으로 N개의 떨개를 기술하는 아래의 구라모토 모형의 수식 표현도 마찬가지다.

때맞음을 설명하는 구라모토 모형의 수식에 등장하는 중요한 변수가 떨개의 위상(phase)변수 이다. 제자리에 서서 동쪽, 남쪽, 서쪽 그리고 이어서 북쪽 방향으로 한번에 90도씩 네 번 빙글 한 바퀴 돌면 처음의 방향으로 돌아온다. 위상변수도 마찬가지로 360도 한 바퀴 돌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변수다. 예를 들어 떨개의 위상변수가 0도, 360도, 720도처럼 360도의 정수배가 될 때마다 반딧불이는 반짝이고 사람은 손뼉을 친다고 해석하면 된다. 만약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시간 주기가 짧다면, 이 반딧불이는 0도의 위상값에서 시작해 360도에 도달할 때까지 짧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빠르게 반짝이는 반딧불이의 위상값은 시간에 따라 더 빨리 늘어나고, 따라서 위상변수를 시간에 대해서 미분한 위상속도(phase velocity)의 값이 더 크다. 구라모토 모형의 수식표현은 다른 많은 떨개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떨개 하나가 자신의 위상변수를 시간에 따라 바꿔가는지를 현상론적으로 기술한다.

수식에 등장하는 K가 바로 떨개들이 얼마나 강하게 다른 떨개의 영향을 받는 지를 조절하는 변수다. 만약 떨개들이 다른 떨개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경우라면 K=0에 해당해서 수식의 등호 오른쪽의 두 번째 항이 사라진다. 이처럼 상호작용이 없는 경우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제각각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진동수 ω에 따라 위상변수가 다르게 증가해서, 떨개들이 반짝이는 순간이 뒤죽박죽된다. 즉, 상호작용이 없다면 때맞음도 없다는 결론이다. 다음에는 모형 수식 우변의 두 번째 항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삼각함수인 사인함수가 홀함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떨개 중에 위상이 다른 여러 떨개에 비해 뒤처진 떨개는 다음에는 좀 더 빠르게 자신의 위상값을 늘리게 되고, 거꾸로 위상이 다른 떨개에 비해 앞서있던 떨개는 자신의 위상속도를 줄여 다음에는 좀 느리게 깜빡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느린 떨개는 빠르게, 빠른 떨개는 느리게 하는 것이 우변 두 번째 항의 역할이다. 이 항으로 말미암아 모든 떨개가 동시에 반짝이는 때맞음이 이루어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구라모토 모형의 때맞음은 떨개들이 제각각 가진 자신만의 진동수가 얼마나 서로 다른 지, 그리고 서로 얼마나 강하게 상호작용하는지의 경쟁에 따라 정해진다. 비유하자면, 구라모토 모형의 때맞음 여부는 개성과 소통, 두 강도의 경쟁으로 정해지는 셈이다. 소통은 없고 개성만 강하면 함께 움직일 수 없어 때맞음이 없고, 크게 다르지 않은 서로가 강하게 소통하면 모두가 함께 움직여 때맞음이 일어난다.

구라모토 모형의 학계에서의 인기는 처음 제안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식을 줄을 모른다. 때맞음에 관련된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표준 모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어서, ‘구라모토 모형’이 제목과 초록에 등장하는 논문이 매년 수천 편 출판되고 있을 정도다. 내 연구그룹에서도 구라모토 변형 모형을 이용해 왜 때맞음 된 청중의 박수 박자가 조금씩 빨라지는 경향이 있는지, 왜 청중의 수가 많아지면 박수의 때맞음이 잘 일어나지 않는지를 연구해 최근 논문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구라모토 모형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떨개가 정말로 구라모토 모형의 수식을 따라 행동하는지는 치밀하게 검증된 사례가 거의 없다. 비선형동역학의 유명 교과서에도 등장해 많은 대학생이 당연한 사실처럼 배우지만, 실제 현실의 반딧불이가 정말로 구라모토 모형을 따라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얼마 전 공개된 한 논문(DOI:10.1101/2022.03.09.483608)이 바로 이 주제를 다뤘다. 모든 방향을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광각 카메라 두 대를 이용해 반딧불이 집단의 동영상을 촬영한 다음에, 삼각측량의 방법으로 동영상 속 여러 반딧불이의 3차원 위치를 논문 저자들이 개발한 영상 처리 알고리즘을 이용해 정확히 파악해서 각각의 반딧불이의 반짝임을 정량적인 데이터로 수집했다. 논문 저자들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북미에 서식하는 반딧불이 종(P. carloinus)의 행동은 구라모토 모형과 달랐다. 먼저, 상호작용이 없는 경우 구라모토 모형은 개개의 반딧불이가 자신만의 고유한 주기로 규칙적인 반짝임을 보여줄 것을 예측하지만, 현실의 P. carloinus 반딧불이는 고립된 상황에서 규칙적인 주기로 빛을 내지 않는다. 또, 현실의 P. carloinus 반딧불이는 짧은 시간 동안의 빠르고 활발한 때맞음된 반짝임 이후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반짝임이 없는 공통의 휴지기가 이어지는 버스트(burst) 현상을 보여준다.

한편, 구라모토 모형의 때맞음 상태에는 휴지기도 버스트도 없이, 모든 떨개가 딱 하나의 때맞음 주기에 맞춰 일정하게 꾸준히 반짝일 뿐이다. 구라모토 모형이 이 특정 반딧불이 종의 때맞음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에 주목한 논문 저자들은 간단한 다른 모형을 제안했다. 반딧불이 하나는 한번 빛을 낸 다음에는 특정 시간 이상의 휴지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용하고, 한 반딧불이의 반짝임은 인접한 다른 반딧불이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어서 다른 반딧불이도 거의 동시에 빛을 낸다고 가정했다. 두 가정과 함께, 한 번의 반짝임 이후에는 다음의 반짝임을 위한 일종의 충전 과정이 반딧불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술하는 현상론적인 변수도 담아 구체적인 수리 모형을 제안했다. 저자들의 새로운 모형을 컴퓨터로 수치 적분한 결과는 실제 P. carloinus 반딧불이의 때맞음 패턴과 상당히 비슷했다. 특히, 반딧불이의 개체수가 늘어나면 때맞음된 버스트가 더 잘 일어난다는 결과가 흥미롭다. 첨언하자면, 남아시아의 다른 반딧불이가 보여주는 때맞음은 이 논문에서 보고한 북미의 반딧불이 종과는 다르다고 한다. 남아시아의 반딧불이 종은 고립되면 구라모토 모형의 떨개처럼 고유 진동수로 제각각 반짝인다.

오래전 정립되어 많은 과학자가 이용하고 있는 표준적인 모형이라도 자연이라는 책이 실제로 보여주는 현상과 끊임없이 비교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소개한 논문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다. 다양한 현상에 적용될 수 있고 오랜 기간 연구되어 온 현상론적인 모형인 구라모토 모형이 일거에 폐기될 리는 없다. 하지만 어떤 때맞음에는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늘 소개한 논문의 결론이다. 아무리 이론이 멋져도 이론에 대한 최종 판관은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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